2012년 8월 1일 수요일

중국과 한국 출장을 다녀와서

지난 몇 주간 중국과 한국에 출장을 다녀왔다. 나간 김에 이곳 저곳을 들러보고 와야 하는 상황이라, 조금은 많은 일정(두 번의 컨퍼런스와 한 번의 집회인도)을 소화해 내야하는 출장이었다. 바쁘긴 했지만 적지 않은 소득이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번 출장에 있었던 일들을 큰 덩어리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내가 속한 GP선교회의 제1권역 대회 참석했다. 3년에 한번 있는 전체 권역(일본,C국,N)의 선교사들이 함께 모이는 대회였다.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고, 함께 일하는 분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좋은 강의로 도전받는 시간이었다. 

둘째는, 내가 중국에서 유학할 때 몸 담았던 북경에 있는 한 교회 출신 사역자들의 모임에 참석했다. 이 모임은 내게 소중하고 의미가 큰 모임이다. 청년시절 함께 유학을 하다가 헌신했던 친구들이 이제는 사역자가 되어서 이곳 저곳에서 흩어져 중국인들을 섬기고 있다. 숫자만도 30 여명에 이른다. 이런 이들이 함께 모여 사역현장의 희,노,애,락을 나누며 배우는 시간이었다. 만나고 싶던 얼굴들을 봐서 기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 어디서도 맛보기 힘든 친밀감과 깊은 유대를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첫 날 북경 공항에 도착하니, 세 분의 남자 집사님들이 마중 나와계셨는데, 그 중 두 분은 나와 유학시절 같은 집에 살았던 형제들이었다. 중국의 아파트 방구석에서 함께 먹고, 자고, 공부하면서, 형 동생하던 친구들이, 이제 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고, 회사의 중간 간부들이 되어 중국에서 일하고 있었다. 간단한 자필 프랭카드까지 들고 나와서 대대적으로 환영해주는 그들을 만나니 꿈만 같았다. 오래된 친구들, 교회 어른들, 청년 간사들, 이런 저런 지인들을 만났다.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했다. 우리는 선교를 지향하는 하나의 커다란 영적인 가족 공동체(Missional Family)였다. 풀타임으로 사역하고 있는 사람들도 그렇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도전 받았다. 그야말로 이 시대는 "그 누구나  선교사이며, 그 어디나 선교지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는, 북해도에서 사역했을때 헌신하고 지금은 중국으로 돌아간 한 가정을 심방했다. 우리는 그 부부만을 만나기 위해서 북경에서 또 비행기를 타고 그곳까지 날아갔다. 그리고 하루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우리에게 그들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그것 이상으로 그들이 하나님께 소중한 사람들인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작년부터 우리를 기다렸던 형제의 어머니의 바램에 응답하고 싶었다.

이들은 신실한 가정이다. 일본에 유학와서 예수님을 만났고, 헌신해서 지금은 중국에서 주님을 섬긴다. 그들과 주변의 가족들, 친척들을 만나면서 하나님이 신실하게 이들을 인도하고 계심에 감사했다.  삶 자체가 증인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 하나님은 정말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넷째는, 모처의 사역지를 방문해서 강의를 하는 것이었다. 사실 강의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지금 중국내 사역지들은 극도의 긴장상태에 있는 것 같다. 그 곳도 그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로인해서 비록 계획된 일들은 못했지만 굉장히 의미있는 시간은 가질 수 있었다. 내 눈으로 한 헌신된 부부를 통해서 빚어진 젊은 중국 일꾼들이, 힘 차게 뻗어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중국의 각 처에서 심지어 해외에까지 나아가, 증인으로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서 선교에 있어서도 도래하고 있는 중국시대를 새삼 목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선교사는 존재의 메시지"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했다. 겸손하게 현지인을 섬기는 노선교사 부부의 존재, 그 존재가 가지는 메시지는 반향이 컸다. 사람들의 삶의 변화되었고, 그들을 통해 곳곳에서 주님 나라가 세워지고 있었다. 그 분들의 존재는 그 자체가 생명의 메시지였다. 

이번 출장을 통해서 얻게 된 좀 더 생각해보고 연구할만한 중요한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것은 선교적 가족 공동체(Missional family)에 대한 것이다. 친구들과의 모임도 그렇고, 중국인들 사이에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선교사 파송단체의 구성도 그렇고, 좀 더 창의적이고 대안적인 방향의 선교단체들이 중국인들 사이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심플한 행정과 재정 시스템을 유지하지만(심지어 함께 묶여있지 않지만), 강력한 친밀과 유대를 통해, 케어하고, 공동체적으로 창의적 사역을 펼쳐나갈 수 있는 모임 혹은 단체들에 대해서 연구를 좀 더 해야겠다.

2012년 5월 22일 화요일

"동경 중국인 Camp(东京华人野营大会)"를 마치며

제2회 "동경 중국인Camp(东京华人野营大会)"를 마치며

5월4일-6일(2박3일)까지 동경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닛꼬 올리브사토 기도원(日光オリブ里)에서, 동경의 중국인을 대상으로, 강사로 위엔즈밍(远志明)목사님을  모시고, 69명이 참석한 제2회 동경 중국인 캠프가 열렸다. 

2박3일간의 캠프는 우리 모두에게 놀라운 은혜의 시간이었다. 구도자들에게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계기, 형제 자매들에게는 복음에 굳게 서고 ,영육간에 쉼과 힘을 얻는 계기, 교회 전체적으로는 새로운 사역의 장이 열리는 계기가 되었다. 형제, 자매 함께 지냈던 2박3일이 어찌그리 아름답고 행복했던지!!

이번 캠프는 예년과 다른 몇 가지 점이 눈에 띈다. 우선 프로그램을 대폭 구도자들에 마추어서 여유있게 운영된 점이다. 저녁에는 조금 일찍 프로그램을 종료하고, 온천(올리브 사토 기도원에는 노천탕을 갖춘 자체 운영 온천이 있다. )과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식사시간을 길게 잡아 충분히 숨을 돌릴 수 있게 하고, 캠프 파이어와 외부 관광을 통해서 자연 속에서의 쉼을 즐길 수 있게 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이들이 돌아와서 소감이 진짜 "수양(修養)"을 하고 돌아온 느낌이라고 했다. 일본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들을 하면서 하루의 쉼도 제대로 못 챙기고 살아가는 중국 형제 자매들이 잠시라도 쉬고 새 힘을 얻었다니 얼마나 감사한지!! 충분히 영육간에 쉼을 얻고, 새롭게 충전되고, 은혜 받아 새 살이 돋는 그들을 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리고 많은 부분을 작년에 단기 선교 팀을 의지했던 데어서 자립해 형제 자매들이 직접 리드할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찬양 팀, 소그룹 인도, 여러가지 행정처리 등인데, 이를 통해서 형제 자매들이 가지고 있던 재능들이 놀랍게 발견되었고 멋지게 쓰임 받았다. 특히, 자발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 지 생각해보고, 자기가 해야하는 부담으로 느껴지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섬기면서 전체에 협력하는 모습이 많이 보여진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대강의 방향을 잡아주면 스스로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할지? 결정해서 신이나서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많이 감사했다. 그렇게 할 때 열정이 더 생기고 일이 일로 다가 오지 않고 즐거운 사명으로 다가 온다.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그 성령께서 동일하게 그들 가운데 역사하심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면서 동기를 유발시키시고 지혜를 주시고 주인으로 세워주셨다. 그럴때 더 지혜롭고 더 자유로우며 실제로 일도 더 잘 했다. 역시 다들 나보다 잘한다.

찬양, 간증, 특별 찬양, 단막 극, 설교 등의 메인 프로그램은 참 은혜로웠다. 우리가 생각하것이상을 누리는 시간이었다. 이제 6개월 밖에 안된 찬양 팀이었지만, 아주 익숙하게 그러면서도 신선하고 은혜롭게 찬양시간을 인도해주었다. 매번 한 곡만 더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정도였다. 말씀은 힘 있고, 은혜로왔다. 역시 중국 대륙의 문화와 철학을 배경으로 하는 강사의 배경과 간증이, 성령의 기름부음 가운데 말씀을 더욱 힘 있게 했다. 큰 감동과 영접, 변화가 결단이 있었다. 처음 참석한 사람들이 거의 다 예수님을 믿었고, 그중 8명이 결신하고 세례를 받았다.(이번 캠프에서는 온천 세례식이 진행되었다.) 예상보다 많이 참석한 아이들로 인해 프로그램이 걱정이었는데, 북경에서 단기 선교팀 청년들의 활약으로 무난히 그리고 즐겁게 넘어갔다. 단기팀은 이런 저런 곳에서 보이지 않게 많은 수고를 해주었고, 시원한 생수처럼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다.

이번 캠프를 준비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은 캠프 참석 초청에 대한 어려움이었다. 불과 2주를 앞두고도 참석 신청자가 30명도 되지 않아서 마음 고생을 했다. 전단지를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다. 그렇지만 참석하겠다는 사람은 늘지 않았다. 그래서 긴급하게 카카오톡 기도요청 메시지를 지인들에게 돌리기까지 했다. 마음이 타서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비용이 들어가고, 마음 고생을 하는데, 참석자도 적고 효과가 없는 사역이라면 과연 내년에 또 다시 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들었다.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이래서 많은 일본 사역자들이 뭔가 한, 두번 하고 중단하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그런데 마지막 한 주를 남겨두고, 강사가 예정된 날짜보다 동경에 일찍오게 되었다. 그러면서 강사에 대한 소식이 동경의 중국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신청자 수가 갑자기 쇄도하기 시작했다. 결국 마지막에는 우리가 교통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최대치인 69명에서 마감하고, 몇 몇 신청자의 신청은 거절해야 할 상황까지 되었다. 며칠 끝없이 들어오는 신청자들의 전화에 얼마나 신이 나던지!

개인적으로 이번 캠프를 통해서 몇 가지 배운 점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신다는 점이다. 우리가 발로 뛰어서 참석시킨 사람들은 많지 않다. 바람처럼 마음이 움직이고 소원이 생겨서 참석한 사람들이 많았다. 강사가 생각보다 일찍 온 것이나 두루두루 소문이 난 것들 모두 우리가 계획 못 했던 일들이다. 그분께서 그분의 계획을 가지고 우리 가운데 행하셨다. 아멘!
  2. 형제, 자매들을 믿고 맡겨주고, 그렇게 사역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줄 때, 놀랍게사역하고 그 가운데 자라난다는 것이다. 그들 안에 계신 성령님은 위대하신 창조주이시고, 그들의 주인이시다. 13명의 형제, 자매들이 빠짐없이 사역에 투입되고, 자기 몫을 해냈다. 그러면서 자신들 나름의 사역에 대한 안목과 경험이 생겼다. 역시, 내 잔소리보다 성령님의 감동이 백배는 낫다. 
  3. 형제, 자매들이 재일중국인들의 필요에 대한 눈이 뜨고 이를 위해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선한부담을 갖게 된 것이다. 형제, 자매들이 이번 캠프에 왔던 동경의 기독중국인들, 그리고 구도자들을 섬기면서, 우리 교회만이 아닌 또 다른 재일 중국인들의 삶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과 대화하고 교제하고 기도하면서 그들 가운데 있는 수 많은 영적, 삶적 필요를 보게 되었다. 동경의 작디 작은 신앙 공동체의 눈에 80만명이라는 거대한 재일중국인이라는 산(山)이 보이게 된 것이다. 어떻께 해야할 지 기도하고 있다.   
주님께서 이번 캠프를 통해, 다시한번 우리가운데 어떻게 일하시는 분이신지, 어떤 기대와 계획을 갖고 계신지, 무엇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많이 가르쳐 주셨다. 이제 이 주님이 주신 사인을 가지고 어떻게 내년을 준비하고, 다음 스텝을 내딛을지 고민하며 기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여러 모양으로 동참해준 분들께 감사하다. 정말 누군가 널(우릴)위해 기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느끼며 지낸 몇 주간이었다. 아멘!



                                    Video by Li Wen Ge






























2012년 5월 19일 토요일

2012 Tokyo Chinese Camp Video 东京华人野营大会

2012 Tokyo Chinese Camp Video 东京华人野营大会

Video 1


Video 2



                                                                      Video by: Li Wen Ge(李文革)



2012년 5월 16일 수요일

사역자의 기쁨, 선교사의 기쁨


사역자의 기쁨, 선교사의 기쁨

  " 신부를 차지하는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크게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 (요한복음3:29,30 새번역)

두 주전에 어떤 모임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선교사로서 나는 어떤 기쁨을 가져야하는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이 든 까닭은 다음과 같다. 당일 모임에 참여한 이들은 대부분 일본사회에서 자리를 잘 잡은 중국인들이었다. 나만 한국인이었다. 늘 중국인 사이에 나만, 혹은 우리 가족만 외국인이었지만, 그날은 낯선사람들을 만나서 그런지 더욱 긴장되었다. 중국어 발음도 더 신경쓰이고 그랬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친철하고 예의바르고 세련되었다. 그리고 모두들 좋은 말을 내게 해주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이 사람들중에(중국인들이) 누군가 작정하고 내게 적대적으로 대한다면 내 마음은 어떻까?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 그 언젠가 내가 사역하는 중국인 사역현장에서 독한 중국인 한 명이 나와 내게 험하게 공격한다면 나는 감당해낼 수 있을까? 그로 인해서 내게 주신 중국인에 대한 애정이 사그러지고 무정(無情)해지면 어떻게 하지? 다행히 중국인 사역을 한지 근 10년이되는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며 잘 대처해 낼 수 있을까? 

자신을 왕따시키는 학교에 정이 떨어지고, 자신을 무시하는 직장을 관두고 싶고,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 곳을 사임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특히, 나는 마음이 약한 것이 약점이다. 상처를 쉽게 입는 편이다. 맞서 싸우지 못하고 뒤돌아가서 신음하는 스타일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약하다. 어떻게 이런 약한 기질을 극복하면서, 중국인 사역에 대한 부르심을 다하고 이 길을 끝까지 다 달려갈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있을 때, 읽고 있던 요한복음 3:29,30이 새롭게 와 닿았다. 

1. "신부를 차지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신랑이다." 

중국인들을 차지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신랑되신 주님이시다. 나는 이 신부된 양무리들을 신랑에게 소개하는 자이다. 요한처럼말이다. 내가 신부된 양무리들의 마음을 얻는 기쁨, 그들의 인정을 받는 기쁨, 사랑을 받는 기쁨도 내려 놓아야 한다. 이런 기쁨들은 내가 신부를 차지하는 신랑이라도 된 듯한 착각을 갖게 한다. 이 착각이 비극의 시작이다. "신부를 차지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신랑이다". 신랑이 신부를 차지하는 것을 보는 것이 기쁨이다. 행복이다. 

2.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크게 기
     뻐한다."

사역자 된 나, 선교사된 나는 무엇으로 기뻐해야하는가?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면,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크게 기뻐한다. 그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신랑의 소리다. 결코 신부나, 그 주변인이 아니다. 기타 사람들의 소리가 아니라, 신랑의 음성이다. 이게 사역자를 선교사를 크게 기뻐할 수 있게 한다. 신랑과의 인격적인 관계, 신뢰, 기대에서 오는 기쁨이다. 신랑을 만나는 기쁨이다. 신랑의 음성은 하늘의 소리요. 땅의 양식이다. 신랑의 음성만이 진정성 있는 기쁨이다. 사역도, 사역의 열매도 큰 기쁨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이런 일들이 기쁨과 보람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기쁨을 사탕처럼 하나 하나 즐기다며 보면, 신랑의 음성은 들리지 않는다. 아니 신랑의 음성을 듣고 싶어지지 않는다. 듣고도 못들은 척 하는 수준에 이를수도 있다. 그리고 점점 자신이 신랑인듯이 착각하고는 신랑의 기쁨에 한다리 걸쳐놓고 신랑행세를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거짓 기쁨이다. 불의한 기쁨이다. 

요한은 신랑의 음성으로 크게 기뻐했다.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크게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차 있다"(요3:29). 나는 신랑의 음성을 듣는 기쁨을 맛보고, 맛보고, 또 맛보면서 여기에 인이 배기고 중독이 되어야 한다. 신랑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대로 행하는 기쁨으로 가득차야 한다. 이 기쁨이 내 안을 채워나가고, 내 삶을 채워가날 때, 나는 선교사로서의 진정한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 기쁨이 동기가되고 수단이 되고 목적이 될 때, 그 어떠한 혹독한 공격앞에서도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신랑이 있고, 신랑의 음성이 있는데 그 무엇이 더 필요하랴! 

며칠 전, 동경 기독 중국인 펠로우쉽을 섬기면서 아주 작지만 이 기쁨을 다시한번 맛 보았다. 거의 처음으로 오십여명의 사람들이 자기교회 사람들이 아닌 동료 크리스천들을 만나며,  서로 인사하고, 이름을 주고 받고, 교제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아무도 나를 안 찾아 준다할지라도 그 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기뻤다. 그들이 흥해가는 것이 얼마나 흐믓하든지!

3. "그는 흥하여야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선교사만큼 이 쇠하는 기쁨, 흥하는 이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기쁨을 누리는 소명으로서의 직업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우리는 정말 직업적으로(?) 떠남이 전제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현지인이 흥해지면 차츰 쇠해져야하는 것이 외국인 전도자다. 이 점이 내 개인적으로는 지역교회 목회와 많이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흥하고 나도 흥하는 케이스가 있긴 하다. 그렇지만 선교지에 그런 케이스는 결국 건강하고 자립적인 현지인 공동체 건립을 지체시키는 주 원인이 된다. 내 존재의 필요성이 갈수록 작아질만큼 현지인의 자립성이 높아지는 것이 사역자로서의 성공이다. "그는 흥하여야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아멘!!

그들이 서로 친해지고 흥해가는 것이 내 기쁨이다
(5월13일, 동경 기독 중국인 연합 Fellowsh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