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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30일 금요일

Ho and Laura 의 "사람을 사랑함"

오늘은 우리가 아는 한 선교사 가족을 소개하고 싶다. 
이들은 캄포디아인 Ho Meas, 그의 부인 아이랜드인 Laura Jane Meas, 그리고 그들의 한 살된 아이 Joseph이다. 


Meas 가족
이 가족은 정말 사람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원래 그런 사람들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이번에 지진과 쓰나미로 고통하는 일본에 잠시지만 다시 와서 함께 사는 것을 보면서, 이들이  참 사랑을 가진 선교사 부부라는 것을 두 눈으로 보게 되었다. 이들로 인해서 하나님이 흐믓해셨을 것이며, 많은 일본인들과 선교 동역자들이 힘과 위로를 얻었을 것이다. 

Meas 부부는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지금은 휴직 상태의 선교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Meas 부부는 우리가 삿포로 국제교회에서 중국인 사역을 할 때(2004년-2008년) 만났다. 당시 Ho는 캄보디아에서 온 홋카이도대학의 박사과정 유학생이었다. 신앙 좋고, 장래가 유망한 총명한 캄보디아 인재였다. Laura는 아일랜드에서 온 감성과 열정을 지닌 싱글선교사였다.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서 이 두 사람이 결혼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형제는 박사를 마치고, 자매는 노산의 어려움을 통과해 요셉을 낳았다. 그리고 장기사역을 준비하기 위해서, 아일랜드로 돌아가서 형제가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우리 가정과 Meas 선교사 가정은 같은 사역자로서, 그리고 개인적인 친분으로 좋은 교제를 나누는 관계였다. 
2009년 동경에서 함께

그런 그들이, 이번에 6월 9일에 일본에 도착해서, 9월12일 까지, 이번 지진, 쓰나미 피해를 심하게 입은 Iwate에 들어와 세 달을 살면서, omf Iwate 프로젝트에(Iwate 프로젝트는 omf Japan이 대지진으로 고통하는 동북부 지역을 지원하고 선교하는 프로젝트다) 참여했다. Iwate 살면서 프로젝트가 잘 안착할 수 있도록, 초기 사역을 잘 수행해주었다. 그리고 가장 어려울 때, 현지인의 고통과 어려움을 함께 해주었다.  


얼마든지 안 와도 되고, 약간 피해가도 되는데, 어렵게 얻은 한 살짜리 아이와 함께 일본 땅에 왔다. 와서 살았다. 그리고 맡겨진 일을 다 하고, 시간이 되어서 자신의 본래 곳으로 돌아갔다. 이들의 선택과 결정, 행동과 삶은 참 마음에 기쁨을 준다. 그들이 지진과 방사능의 위험을 몰랐을까? 


이번 여름에 일본에는 외국에서 오는 많은 단기 팀들의 방문이 취소되었다. 이유는 지진과 방사능 문제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못 오게된 이유는 부모님들의 반대다. 그런 부모들의 반대를 보면서, 만에 하나를 생각하는 목회자들이 청년들을 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지진과 방사능 문제가 있는 곳에 자녀를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은 어떤 부모라도 동일할 것이다. 어떤 분은 일본 정부가 속이고 있다고, 진상이 담긴 자세한 웹상의 주소까지 보내주면서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주셨다. 그리고 그 분들의 주장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여전히 여진이 있고, 동경 대지진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끊임이 없고, 방사능 문제는 아직도 미해결된채 있다. 


그래서 이런 위험한 곳에 자신의 자녀를 단 한 주도 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분은 그리스도인이셨다. 다 맞는 말이요, 이해는 가는데, 참 야박하다는 느낌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Meas 가족과 너무 대조적이다. 우리가 믿는 신앙이, 헌신한 선교가, 위험한 것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단 한 주도 그 곳에 들어가서는 안되는 그런 것인가? 거기에는 우리가 섬겨야 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살고 있다면, 달리 생각해 볼 수 없나?  위험이나 손해를 조금도 보지 않고 선교가 가능할까?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가능할까? 이런 경우, 믿음, 부활, 생명의 능력, 성령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어떻게 설명하고 경험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말해주면 안될까?  "일본이 여전히 위험하고 방사능 문제도 있지만, 그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고, 도움이 필요하고, 너희의 방문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가서 위로하고, 도와주고, 기도하고 돌아와라! 거기서 1년, 10년,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뭐 한 주가면서 그러냐? 내 열심히 기도할께! 가서 한 주만 있다오는 것 미안해하면서 갔다와라! 네가 믿는 하나님은 부활의 주님이요! 생명의 주인이시다!". 그럴 때 그 자녀가 믿음, 부활을 진지하게 배우지 않을까? 


나는 위험 앞에, 손해 앞에, 아주 조금도 자신과 자신이 가진 것을 손해 보지 않으려는 그런 그리스도인과 벽을 느낀다. 외국인인 나도 그런 느낌인데, 피선교지인인 일본인들의 느낌은 어떻까?  



2010년 3월 16일 화요일

사랑하는 A형제의 귀국

주 안에서 사랑하는 중국형제인 A형제가 일본에서의 공부를 잘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면서, 삿포로에서 출발해  동경에 있는 우리를 만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1년 반만의 만남이었다. 우리 집에 2박3일을 머무르며, 그 동안의 얘기를 나누며, 기도하고, 예배하고, 우리 가운데 임하셨고, 임하시고, 임하실 주님을  생각하며 교제의 즐거움을 누렸다. 특히, 주일 날 A형제는 이곳 닛포리 교회 형제들에게 지난 7년간의 일본생활을 간증했다. 간증 가운데, 가난한 한 명의 중국 유학생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비싼 일본학교의 학비를 벌어서 내고, 거기에 국내의 부모님 생계까지 돌보아야 했던 지난 날의 이야기들을 했다. 그리고 유학 생활기간 동안, 국내의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고, 수 없는 밤을 학업과 아르바이트로 지새우고, 마침내 박사 학위를 받아서 돌아가는 그의 간증은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그는 특히, 구원을 베풀어주신 하나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 용서를 배우게 하신 하나님을 증거했다.

A형제는 회족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이슬람이었다. 그렇게 열성적인 이슬람은 아니었지만, 나면서부터 벗어버릴 수 없는 이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가 한 중국인의 전도로, 교회에 오게 되었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했다. 그는 우리가 삿포로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삿포로에 부임해서 사역할 때는 중국인 모임의 대표가 되어서 우리와 함께 동역했다. 참 부지런하고 성실한 동역자였다. 그 처럼 손, 발을 열심히 움직여 섬기는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유학기간 중에 부인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와서, 함께 있게 되었고, 같은 회족인 부인도 삿포로에 있는 동안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그의 부인과 내 아내는 친밀한 교제를 누렸다. 우리는 그의 부인의 처음 교회 올 때의 모습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처음에는 예배에 오는 남편을 따라, 교회 문 앞까지 왔다가, 예배에 못 들어오고, 우리와 인사만하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던 그녀였다. 그러던 그녀가 한 발, 한 발 교회 공동체에 가까워졌고, 마침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떠날 때쯤되어서는 찬양 인도자가 되어 중국어 예배를 섬겼다. 그리고 우리가 있을 때, 그 부인이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했다. 우리는 그들이 보배로운 아들을 임신하고 낳고 키우는 그 몇 년을 함께 했다.

특히, A 형제를 생각하면, 먼저는, 아내(송수아)가 둘째 아이를 삿포로에서 출산할 때, 병원으로 제일 먼저 달려와서. 씨-익 웃으면서 손수 만든 닭곰탕과 사온 음료수를 내놓던 동네 친구같은 모습이 생각난다. 그는 그렇게 바쁘고 힘든 유학생의 삶을 살면서도 주위의 사람들을 돌보고 섬겼다. 리사이클용으로 나와있는 물건을 보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혹시 필요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고를 무릎쓰고 집에 가져가 일정기간 보관했다가 나누어 주곤했다. 생각이 깊고, 배려를 알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형제는 많은 중국 형제들이 그러하듯이 요리도 잘 한다. 일본에서의 마지막날 우리에게 자신의 비법이 담긴 중국식 구운빵(烧饼) 만드는 법도 전수해주고자  함께 구운빵을 만들며 일본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즐겼다.

삿포로 형제들과 관련해서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 우리가 처음 부임해서 얼마 안되었을 때, 유학생활에 피곤해하는 교회 형제들을 데리고, 하루 온천욕, 뷔페 식사를 하러 간적이 있다. 자동차로 1시간 정도되는 해변의 온천인데, 그날 휘몰아치는 홋카이도의 눈보라를 뚫고 온천에도착해서 그 앞에서 기념사진까지 멋찌게 찍고(아래의 사진), 현관을 들어서다보니, 그 날이 마침 한달에 딱 한번 있는 정기휴일이었다. 그 문앞에서 다들 크게 한바탕 웃고, 결국 집 앞에 있는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하는 것으로 만족해야했지만  다시 생각할 때면 언제나 웃음짓고 마는 즐거운 추억을  만들게 되었다.

그런 그가 다시 우리 집을 찾아왔다. 떠나는 날 아침에 우리 집 식탁에 함께 앉아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두런 두런 나누면서 느껴지는 깊은 친밀감, 가족과 주고 받을 수있는 그런 신뢰감과 유대감이 느껴졌다. 가족에게서 전해 오는 깊은 유대감과 안정감이 밀려왔다. 감사하다. 이런 보배로운 사람을 알게 되어서! 복음을 전하고, 주 안에서 살아가고, 동역자가 되어가고, 함께 그분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나누는 것이 새삼 귀하고 엄청나게 좋은 것임을 맛 보았다.

A형제는 이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학위를 받긴 했지만, 교수직 찾기가 쉽지 않아 아직 일할 곳이 결정되지 않았다. 살아갈 집도 찾아야 하고, 새롭게 중국에 적응하고 관계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의 주변의 친척, 가족들중 그에게 기대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가운데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도 기도하며 형제를 보냈다. 축복하고, 격려하고, 기대하면서 보냈다. 그리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우리는 동경에 와서, 고려하고 있고, 또 인도함 받고 있는 사역중에 하나는 과거에 우리가 만났던, 알았던, 하나님이 허락했던 사람들과 새롭게 네트워킹하면서 좀 더 넓은 범위의 동역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함께 세워나가는 것이다. 즉,네트워킹과 연대를 통한 교회개척 사역이다. A형제와도 그런 동역이 기대된다. 함께 그렇게 기도했다. 이곳의 교회개척을 위해서 형제가 할 수 있는 동역이 있고, 우리도 형제가 귀국해서 정착할 C 도시에서 이루어질 교회개척을 위해서 동역할 부분들이 있다. 이런 상호적 연대를 통한, 새로운 형태의 교회개척이 점선처럼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고, 그 연결이 창의적으로 새로운 지역의 개척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2009년 12월 11일 금요일

기도의 사람


기도의 사람




내가 이만열 목사님이  기도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것은 이만열 목사님과의 개인적 만남을 통해서다. 이목사님을 알게 것은 1999 북경에서 있었던 3 KOSTA CHINA에서였다. 이목사님은 중국유학의 대선배로, 현역 중국선교사로 강의를 위해 오셨다. 나는 당시 한국에서 신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후배들의 KOSTA CHINA 진행을 돕기 위해서 북경에 있었다. 그렇게 이목사님을 알게 되었다. 이후(아마도 2000 겨울) 나는 일본에서 중국유학생을 선교하기 위한 단기 사역을 준비할 기회가 있었고, 그때 이만열 목사님을 강사로 모시고 갔다. 그곳에서 며칠을 지내면서 이목사님을 처음으로 인격적으로 만나고 교제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목사님은 참석한 멤버 사람 사람을 귀하게 여겨주시고 인격적으로 교제해주셨다. 그때 목사님이 모임을 이루면서, 사람 사람 이름을 물어보면서 메모지에 적으셨다. 그렇게 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앞으로 날마다 기도해주시겠노라고……
그리고 1 후로 기억한다. 이목사님이 잠시 한국에 오시게 되어서 나는 인사차, 교토에 갔던 단기팀 멤버들과 함께 홍은동에 있는 삼덕교회 원로 목사관으로 찾아 뵈었다. 목사님은 반갑게 우리를  맞이 해주셨다. 그리고 사람 사람 안부를 물어보셨다. 그리고는 놀랍게도 자리에 오지 못한, 그렇지만 함께 교토에 갔던 멤버들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안부를 물으셨다. 우리는 놀라서, 어떻게 여기에 있지는 않은 그들의 이름을, 일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계신지 여쭤보았다. 이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1 전에 기도해주겠다고 하지 않았냐며, 후로 날마다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한다고 하셨다. 약속대로 기도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것도 매일 매일 이름을 불러가면서 말이다. 함께 같던 친구들은 감동을 많이 받았다. 노종이(당시 84) 매일 매일 우리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해주셨다. 신실하게 말이다.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하셨기에, 이름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계셨던 것이다.
,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목사님이 사역하고 계신 사이판 華人교회(Chinese Christian Church of Saipan)에서 2002 3월부터 1년간 사역중국어 훈련을 받으시면서 목사님을 가까이서 뵙고 지낼 기회가 있었다. 목사님은 사모님 소천 후에 혼자이셨기 때문에, 아내와 나는 목사님과 집에서 살게 되었다. 집에 살면서, 나는 목사님이 어떻게 기도하시는지 알게 되었다. 목사님은 매일 새벽 1시간 반정도 기도하시는데, 1500여명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기도하셨다. 얘기는 1500여명의 이름을 매일 외워서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1500여명은 목사님이 일생 동안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이다. 목사님은 그들을 마음에 새기고 매일 기도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렇기에 동안, 아니 동안 만난 사람들의 이름도 외우고 계셨던 것이었다. 한번은 목사님이 거의 10여년 만에 만난, 필리핀 중국인 교회 장로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인사를 하셨더니, 장로님이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이름을 아시지요? 하셨다. 그랬더니 이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하셨다. “ 내가 매일 기도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매일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 동안 평안하신지요?”.
    나는 이목사님에게 어떻게 해서 이런 기도를 하게 되셨는지 여쭈어보았다. 이목사님이 서울 삼덕 교회를 개척하실 , 요한복음 10장을 읽던 어느 , 3 “……그가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말씀에 은혜를 받으시고, 후로 지금까지 매일 섬기던 교회의 교인들, 기도가 필요한 지인들을 위해서 날마다 이름을 불러가면서 기도하셨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많지 않았는데, 갈수록 늘어 지금은 이렇게 많은 이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받은 은혜의 말씀을 성실하게 순종하면서 일생을 살아오신 것이었다. 그리고 작은 순종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은혜를 끼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실하게 순종하는 좋은 예를 남긴 것이다.
          이만열 목사님의 기도의 모범은 오늘도 내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이목사님을 배우려면, 멀긴 하지만 목사님의 선한 영향력으로 사람 사람 이름을 부르며나와 만나게 해주신 사람들을 마음으로 품고 기도하는 기도의 세계가 새롭게 열리게 되었다. 나의 경우 200여명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습관이 조금씩 자리잡아가고 있다.




2009년 9월 9일 수요일

왜 이만열 목사님을 글로 남기려 하는가?



2007年 査經會(Sapporo)

왜 내가 이만열 목사님을 글로 남기려 하는가?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책임감이다. 부지부식간에 계속 다가오고 커져가는 책임감!

자신을 남에게 잘 알리지 않는 이만열 목사님!
그분에게서 흘러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을 많이 봐온 나로서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그 향기를,
나만 맡고 끝내는 것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갈수록 부쩍 부쩍 커져만 가고 있다.

그렇다고 책을 쓸 수 있는 자료 여력도 없고, 그래서 중간단계를 선택했다.

그분에게서 듣고, 내가 보고, 느꼈던 것들을 토막 글로 정리해 나가는 것이다.
200자 원고지 쓰는 힘을 믿고 느껴보는 것이다. 200자 원고지 열장을 한개씩 써가는 것이다.
시간을 내어서, 마음을 모아서, 그런 10장의 퍼즐들이 모아지면, 그러다보면, 이만열 목사님을 통해서, 받았던 은혜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아나갈 수 있으리라!

이분의 이야기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많은 이들에게 은혜가 되기를 소망한다.



2009년 9월 7일 월요일

"사람, 그리고 만남" 을 시작하며

왜 "사람, 그리고 만남"을 쓰려고 하는가?

하나님은 사람을 쓰셔서 자신의 일을 이루시고, 그의 영광을 이 땅가운데 나타내신다.
물론, 사람은 종종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하나님의 일을 가로막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감사한 것은 사람은 그런 연약한 질그릇임이 드러남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안에 계신 주님이 얼마나 놀라우신가 역설적으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 간섭하시고 인도하실때, 늘 사람과 책의 만남을 쓰셨다.
사람을 통해, 사람의 언어로 내게 말씀해주셨고, 소중한 책들과 적절한 시기에 만나, 인생의 적절한 방향전환을 했었다. 그래서 "사람, 책과의 만남"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다.

이곳에서는 바로 그런 사람의 얘기를 하려고 한다.
내 인생중에 만났던 사람들, 그 중에서 인상적이고 소중한 사람들을 위주로 기록하고자 한다.
물론, 공개적인 것임으로 다분히 긍정적인 것 위주로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최대한 그 사람을 존중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주님의 향기를 맡고, 그 가운데 계신 그분의 형상을 보려고 할 것이다.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 모든 사람을 기록할 수는 없고, 인상적이고 영향력이 컸던 사람, 내가 보기에 하나님이 보내셨던 사람들을 글로 남기려고 한다.

그러면, "사람, 그리고 만남"은 어떻게 쓸 것인가?
      첫째, 인상적이고 영향력이 컸던 분들에 관해서 쓸 것이다. 그것은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어떠한 평가의 기준을 갖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기억과 우리를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 나라에서 잊혀지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사람들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쓸 것 같다.
      둘째, 대부분의 기록은 나와 우리 가족과 관련되어서, 그 사람이 갖는 관계와 영향을 중심으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
      셋째, 한 사람, 한 사람의 전기의 기록이 아니라, 그 분에 대한 인상과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주로 쓰게 될 것이다.
      넷째, 국적, 민족에 관계없이 하나님이 주신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할 것이다.

이를 통해서 바라는 바가 있다면, 하나님이 주신 사람을 통해서,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 이들과 우리 모두에게 지속적인 선한 영향력과 축복으로 남기를 소망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