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31일 토요일

오랜만에 감동적인 일이 있었다.

그제 세번째 목요모임이 있었다. 이 모임에서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 왔다. 대만에서 온 쪼우(周)자매가 모임에서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다.

목요모임이라 함은 목요일에 우리집에서 모이는 모임을 말한다. 간단하지만 정성껏 준비한 식사, 마음을 여는 게임, 찬양과 간증, 포커스 있는 말씀공부 혹은 복음 선포, 그리고 기도의 시간 등으로 이루어지는 모임이다. 새롭게 시작해서 얼마 안되었지만 모임을 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임이라는 확신을 얻어 가는 중이다.

7월29일 모임에 쪼우(周)자매(대만인)가 두번째로 참석했다. 쪼우자매가 오게된 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를 파송한 한국의 예수마을교회의 한 자매(이예은 자매)가 3주전에 이곳에 유학을 왔다. 예은 자매는 중국어가 안되어서 우리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석하지는 못하지만, 여러 면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즐거운 교제를 나누고 있다. 목요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석해서, 게임도 인도하고(일본어로), 우리 아이들도 돌보아 주고, 정말 큰 도움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데,  쪼우 자매는 예은자매의 아래층에 살고 있었다. 예은자매가 평소에 가까이 교제하다가 중국인 모임이 있는데 하면서 초청했는데, 흔쾌히 모임에 참석한 것이다. 첫번째 왔을 때, 쪼우자매는 마음을 많이 열고, 교제하고, 복음을 접했다. 나는 그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간단하지만 구원에 관한 확실한 얘기를 전했다. 그리고 한 주 후에 자매는 다시 목요일 모임에 왔다. 이번에도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마음이 많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자매에게 분명하게 복음을 설명했다. 그리고 쪼우자매에게 바로 당신을 위해서 죽으신, 이 예수님을 구주요,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지 않겠냐? 고 도전했다. 자매는 진지하게 그렇지만 아주 기꺼이 예수님을 구주요 주인으로 영접하겠다고 고백했다. 아멘!!  영접하는 기도를 함께 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영혼구원의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자매는 이렇게 고백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특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낄수 있다고 했다. 일본에 온 것은 바로 이 하나님을 만나려고 온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풀어 놓은 그의 이야기 주머니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감동과 은혜를 주었다.

쪼우자매의 구원과정을 섬기면서 몇 가지 느끼고 배운바가 있다.

첫째, 구원의 일은 역시 하나님이 준비하시고, 때가 차면 그 영혼을 하나님이 친히 추수하신다는 것이다.
쪼우자매는 교회는 안다녔지만, 중학교 때부터 미션스쿨에 다니면서 기독교에 대해서 낯설어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와 있으면서, 직장을을 많은 외로움과 고독, 실패를 경험하면서 마음이 가난해져 있었다. 그런 와중에 친절한 이웃(예은자매)을 만나서 마음이 많이 열려 있고, 어느정도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긍정적인 마음이 예비되어 있었다. 우리를 만나기전 하나님이 여러사람을 통해서 씨를 뿌리시고, 햇빛을 주시고, 물을 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됨에 중국인 교회에 보내사 복음을 듣고 반응하게 하신 것이었다.

둘째, 하나님의 우리가 함께 일하는 것을 기뻐하시고,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쪼우자매가 우리 모임에 오는 데에 쓰임받은 사람은 중국어를 전혀 못하는 갓 일본에 온 한국자매였다. 그리고 그가 두번째 모임에 온 날, 그 외에도 처음 온 한국자매가 또 한명 있었다.(그는 바로 옆 한인교회 청년인데) 그 자매는  중국어를 잘 하는데, 최근 대만에서 교환 유학생 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목요모임에서 그 한국자매가 외국 유학생활의 고충과 사랑에 대해서 간증을 해주었는데, 그 간증이 쪼우자매에 깊이 와 닿았던 것 같다. 특히, 간증한 자매는 마침 쪼우자매가 졸업한 대학에서 교환학생 공부를 했었다. 그래서 쪼우자매가 더욱 반갑게 의미있게 간증을 들었던 것 같다.  우리부부도 최근, 단 한번 만나는 사람이라도, 그 한번의 만남에서라도 복음을 이해하고 반응할 수 있도록 확실히 전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는데, 쪼우자매가 모임에 온 것이었다. 이번 쪼우 자매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모양의 사람들을 두루두루 사용해주셨다. 한인교회 청년, 파송교회 청년, 우리...... 참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멋진 하모니를 이루는 웅장한 교황곡 같다!

셋째, 쪼우자매를 통해서 하나님께 우리에게 말씀해주시는 점이 있다는 것이다. 쪼우자매의 구원역사를 보면서, 나는 다음의 점들을 배웠고 마음에 새겼다.
  • 하나님이 구원하시려고 작정하시고 예비하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추수꾼을 기다리는 익은 곡식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익은 곡식은 앉아서 기다리는 자에게는 보이지 않고, 안테나를 높이 올리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두드리는 자에게 보인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이들에게 추의 은혜를 주신다.
  •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 생명의 복음을, 필사의 각오로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신자가 단 한번 듣더라도, 스스로 인지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판단하고 받아 들일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복음이 다윗의 물맷돌 처럼 내 몸과 마음, 입술에 착 달라붙어 있어야 한다.  
  • 늘 열려 있는 태도로, 함께 이루어나가는 사역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할수 있으면, 우리만을 써서 영혼을 구원하려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구원역사를 공동체적으로 하시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한 지체를 이루고,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공동체적으로 경험하고, 그 아무도 자랑치 못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럼으로 이 하나님께 붙들려 쓰임받으려면, 우리가 바다처럼 되어야 한다. 바다는 그 이름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물고기도 받아들인다. 모든 것에 열려 있고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다. 열림과 겸손이다.  


                       왼쪽사진: 중간이 쪼우 자매, 오른쪽은 쪼우자매를 전도해온 이예은자매



2010년 7월 24일 토요일

교회 공동체 세우기- 골짜기 행진중

교회 개척을 시작한지 6개월이 지났다. 개척이 진행중이다. 산행에 교회개척을 비유한다면 어디 쯤에 와 있는 것일까? 아마도, 골짜기를 힘겹게 지나고 있는 듯하다. 뭐 특별히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도 없고, 그렇다고 산중턱에 오른 시원함도 안보이고, 봉우리를 정하고 오르려니 갈길이 멀어 보인다.

시작하고나서 지난 반년의 시간 동안, 이벤트에 왔다 간 사람, 주일 예배에 왔던 사람들을 합하면, 한 40여명이 왔다가 간 것 같다. 그중에서 예배에 꾸준히 오는 사람이 우리 가족 빼고, 8명 정도였는데, 그중 한 명이 개인사정으로 중국으로 귀국해 버렸고, 그 중에서 최근 2명 정도가 몇 주째 예배에 결석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를 포함해 10명 정도로 3개월 정도를 지나니, 여러 우리 마음 속에 여러생각들이 드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최근 한, 두명이 새로와서 새롭게 우리 마음에 불씨를 지피고 있다.

처음부터, 그것도 복음을 처음 듣는 사람들과 교회 개척을 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고 보람찬 일이다. 선입관이 없고, 백지처럼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반면, 어려운 점은 교회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없으니, 안정적인 출석, 신실한 성장을 보장하기는 어렵다. 기복이 심하다.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  

한 반년을 지나면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몇 가지가 발견되는데,

첫째는 생각보다 인원이 속도면에서는 느리게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숫자를 얘기하는 것이 내게는 꽤 세속적인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숫자가 어느 정도 정상적인 성장을 하지 않을 경우, 개척자의 힘을 매우 많이 빠지게 하고, 의욕을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숫자로 평가하지는 않지만, 정상적인 성장이 이루어지 않을 경우, 우리로서는 심각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삼는 일을 위해서 이곳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 와 있는데, 그 일이 속도가 붙지 않으면 답답할 수밖에 없다. 선교사의 존재자체가 삶 자체가 선교라는 분들도 있는데, 특히 서양선교사님들이 자주 그런 말을 하시는데, 인정할 만한 존재로서의 선교도 있지만, 조금도 추가해야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사역자는 달란트를 받은 일꾼의 비유로 자신과 사역을 비추어서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비유를 근거로 볼 때, 판단의 주체는 주님이시고, 판단의 기준은 충성이다. 내가 최근의 느린 속도를 계기로 묻고 싶은 자신에 대한 질문도 이것이다. "너는 주인되신 그 분 앞에서, 충성하고 있는가?"

우리 맘 같아서는 오고 있는 형제, 자매들이 잘 자리잡고, 안정적으로 참석해서 자라나며, 제자들이 되어주기를 바라는데, 그게 말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시간을 요구한다. 넘어질 것 다 넘어져야 하고, 기어야할 것 다 기어야 하고, 겪어야할 홍역 다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삿포로에서 사역을 할때는 숫자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형제, 자매들이 이미 안정되어 있었고, 생각보다도 숫자가 빨리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경에서는 전도가 거의 나와 아내 손에 달려 있다보니, 시공의 제한을 받고, 속도가 제대로 붙지 않고 있다. 어떻게 이 부분을 해결해 나갈 것인가? 최근 부딪친 숙제다. 조급해하지 않으면서도, 15만에 이루는 동경중국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듣게 할 것인가? 어떻게 그들을 접촉하고, 복음을 선포할 것인가? 더 열심을 내고 길을 낼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으로,현재로서는 '목요모임'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주일예배에 올수 없는 사람들에게 모임의 기회를 주고, 주중 초청전도의 기회를 갖고, 기존의 형제, 자매들을 더 깊이 케어하기 위해서다. 가벼운 마음으로 식사하고 대화하고  게임도 하고 선물도 주고,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면서 사람들을 세워나가는 것이다. 포인트 있는 성경공부 혹은 복음선포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성경공부가 우리를 성장케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나눔과 나눔과 기도 가운데 임재하시는 성령님을 경험하는 것이 더 강력하게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한다. 우리 믿는 모든 이들 속에 임재해계신 성령님이, 그분의 말씀대로 두, 세람이 그의 이름으로 모이면 반드시 우리에게 그분의 실제로 말씀하신다. 그런 경험을 하도록, 사람들을 모으고, 환경을 예비하고, 그들을 섬겨야 한다.

이렇게 시작한 '목요모임'은 현재 순항중이다. 어떤 날은 한명, 두명이 와서 힘빠진 맘도 들기도 하지만, 같이 나누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둘째는, 동경의 비싼 물가다. 안식년 이후, 동경으로 사역지를 옮기면서, 몇 가지 재정 수입과 지출에 변화가 생겼다. 지출이 늘었다. 사실 우리개인과 가정을 위한 지출은 삿포로보다 훨씬 줄었다. 거의 지출이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도 전체 지출은 늘었다. 이유는 비싼 집세 때문이다. 세계최고를 자랑하는 동경의 집세가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거기에 수입은 줄었다. 수입 감소의 결정적인 원인은 환율변동 때문이다. 삿포로 시절 한때, 1엔당 700원 했던 적도 있는데, 지금은 1엔당 1300-1400원에 육박한다. 거의 배로 뛰었다. 즉, 한국에서 보내는 송금이 절반 정도로 줄어든 셈이 된 것이다. 그래서 송금 받아 엔화로 돈을 찾으면 정말 속이 상한다. 매번 이런 상황을 겪으면 이런 겨우겨우 지탱하는 재정상태로 동경에 자리잡고 사역하는 것에 대한 일시적인 회의감도 들 때가 있었다. 또 이런 상황은 종종 우리의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그렇지만, 지나보면 다 은혜로 걸어 왔다고 고백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하나님이 다 먹이시고, 입히시고, 잘 곳을 주시고, 모든 것을 주셨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아멘!!

이런 가운데도,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여러 가지로 우리를 이곳에 보내셨다는 증거를 보여주셨다. 우리는 그런 증거들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이곳에 있어야할 부르심에 대해서는 흔들림이 없다. 우리가 이곳에 서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혼을 구원하고, 그들을 예수님의 제자 삼는 것이다. 더욱 충성스럽게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기를 기도한다.

                                                             목요모임 사진
목요모임 1목요모임 2










 



2010년 7월 23일 금요일

내안의 "옛 자아"가 죽는 네가지 방법!

바울이 갈라디아서 2:20에서 언급한 우리 자아의 죽음은 신앙생활의 핵심이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결국 우리의 문제는 죄의 문제이고, 죄의 문제는 내 안에 내가 살아있는 문제라는 것을 절감한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생활에서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아주 그럴싸하고 교묘하고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여간 분간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볼 필요도 없고, 그동안 내가 행한 생각, 이에 따른 언행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여하튼, 내가 철저히 십자가에 못 박혀 완전히 죽고,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실제 생활에 필요한 행동 지침이 있다. 나는 최근, 휴스톤 침례교회의 최영기 목사님의 강의를 시디로 듣다가  자아의 죽음을 초래할 수 있는, 실제 행동 지침에 대한 아주 중요한 단초를 얻었다. 그리고 그 단초에 기초해서 몇 가지 내 나름의 생각을 추가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다는 완벽한 과거 완성의 사건이 내 삶에 구현되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 힘있게 행하시려면, 다음과 같은 원칙을 갖고 살아야 한다.

첫째, "기분 나쁘다" 라는 생각, 기분을 갖지 말고, 거기에 영향받은 언행을 하지 말자!
여하튼, 내 기분이 나쁜 것이 문제다. 기분이 나쁠 일들이 적지 않는데, 기분 나쁘다는 판단이 서면, 그로 인해 각종 악이 자라나게 된다. 억울함, 미움, 분노, 적개심, 불공정...... 각종 더러운 것이 안에서 자라고 나오게 된다. 기분 나쁜일들이 없을 수 없지만, 갈2:20절을 기초로 볼 때, 기분 나빠하는 자체가 큰 문제다. 왜냐하면, 자아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기분 나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었으면 기분이 나쁠수가 없다. 어떤 얘기를 듣던, 내가 죽어 있다면, 그렇게 민감해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죽지 않고 살아서 기분 나빠하는 나의 옛 자아다. 이제 기분 나빠하는 나는 죽었다. 이제 그 어떤 가운데서도 "기분 나쁘다"라는 기분, 생각, 감정이 나의 마음, 행동을 지배하지 않토록 힘을 다해 싸우겠다.

둘째, "무시 당했다"는 생각, 기분을 갖지 말고, 거기에 영향받은 언행을 하지 말자! 
말이나 행동으로, 혹은 절차나 도리로 나를 무시했다는 생각이 들면, 별일이 다 일어난다. 사회에서는 각종 폭력과 살인의 주 원인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서 발원한다. 그리고 우리를 시험하는 많은 것들이 무시당했다는 기분, 생각이다.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어오면, 사람과의 관계가 파괴되고, 또 거기서 각종 악이 자라난다. 큰 문제다. 왜냐하면, "무시 당했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나의 옛 자아가 죽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다. 내 옛자아가 죽었다면 어떻게 "무시 당했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의 노리개가 되어서는 안된다. 혹 무시 당할수 있는데, 나는 죽었음으로 그런 것에 영향을 받을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수 많은 오해와 서로 원수됨의 죄악을 면할 수 있다.

셋째,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생각, 자기 편리주의"를 극히 경계하자!
인간의 자기 중심적 생각, 자기 편리주의적 발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 민족, 한 개인을 묵사발 만드는 식민지배나, 폭행을 저지르고도, 피해 받은 사람들을 도와줬다고 생각하는 몰지각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런 사람들은 정말 그렇게 믿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각이 지극히 자기 중심주의적이고, 자기 편리주의적이기 때문이다. 역사성, 객관성, 상대방을 고려하는 이타심이 없다. 그냥 자기 편한대로 생각하고 믿는다.

나는 이런 동일한 위험이 우리와 같은 목사, 선교사들에게 더 쉽게 더 많이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예를 종종 본다. 그런 예를 살펴보면, 그들의 마음에 자리 잡은 것은 객관적 기준, 특히 성경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 사랑, 구원, 성결......등이 아니고,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고 편리적인 발상들이다. 자기가 범죄하고 있으면서도, 그 범죄의 상황도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자기 편리주의적인 해석을 한다. 그야말로 영혼이 혼미해진 것이다. 자기가 죽었다면, 자기를 위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넷째, "그 누구도 이용하려하지 말자, 도리어 이용 당하자!"
아무리 좋은 말로, 미사어구를 동원하더라도 예수님처럼 행하는 것이 아니면 행해서는 안된다. 옛 자아는 아주 영악해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속인다. 그 흔한 속임수 중에 하나는 타인을 이용하려는 파렴치한 행동이다. 물론 아주 잘 포장되어 있어서 그렇게 파렴치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두번 세번 생각해보면, 기도해보면 알 수 있다. 이 생각, 이 행동이 나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를 이용해서 더 풍성한 생명을 얻으려는 것인지 말이다. 죽지 않은 옛자아의 특징은 이기심이다. 이기심이 발동한 생각, 행동을 통해 사람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목회자인 내가 극히 경계해야할 것은 양무리를, 교인들을 이용하려는 생각이다. 그들의 덕을 보려는 작은 언행들도 경계해야 한다. 양무리가 피와 땀을 나를 위해 흘리게 해서는 안된다. 오직 예수님을 위해서만 그들의 희생이 가치있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는 하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이용당하는 것이 낫다. 예수님처럼 말이다. 그야말로 바보같은 행동이다. 그렇지만 다 내주고, 내 버리신 그 분처럼 말이다.
 
갈2:20의 말씀이 내 삶속에 더욱 힘차게 구현되려면, 그리고 내 안에 사시는 분이 그리스도 예수이심이 확실해지려면, 나는 나를 침투해 들어오는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생각, 자기 편리주의를 극히 경계하고 극복해야 한다.










 
 
 

2010년 7월 19일 월요일

하반기 설교에 대한 구상

상반기에 설교는 
예수님에 관한 설교였다. 당연히, 복음서였지요! 복음서중에서 요한복음을 1장에서 21장까지 설교했다. 회중이 대부분 처음 교회의 예배에 나오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그분의 놀라운 사람, 섬김, 희생, 죽음, 부활, 기적, 말씀.......을 함께 나누는 시간은 복된 시간이었다.

안식년을 지나면서, 제가 설교하는 스타일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너무 세세히 쪼개고 분석해서, 깊이 나가는 것을 지양하고, 할 수 있으면 넓게 보고, 복음서의 큰 흐름 속에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살펴보는 것이었다. 좀 더 평범해지고, 심플해졌다고 자평한다.

이를 통해서 얻게된 좋은 점은 설교에서 성경을 통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많이 보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너무 길지않은 시간에 요한복음 전체를 살펴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금년도 하반기 설교는 이렇게 하고자 한다.

먼저는, 성경을 통전적으로 보면서, 핵심을 다루는 통전적 접근을 유지하려 한다.

둘째는, 심플한 접근하고, 심플한 해석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서, 성경자체가 가지고 있는 통전적 메세지가, 지협적 파헤침보다 더 크게 우리에게 다가오기를 소망한다.

셋째는, 구약(창세기12장부터) 성경을 통해서, 성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배우려고 한다. 그러면서, 매월 마지막 주에는, 요한복음에서 기록하지 않은 공관복음(마태,마가,누가)에 나타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배우려고 한다.  

이런 접근을 시도하는 가운데, 몇 가지 극복해야할 과제도 있다.

첫째, 성령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사도행전, 서신서에 나타나신 위대한 성령님의 사역들을 통해서, 성령님에 대해서 알려야 한다. 그리고 이보다 더 노력해야할 부분은, 성령님을 기도와 삶 가운데 체험하며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설교를 주로 창세기와 복음서를 다루면서 이 성령님의 부분을 놓치지 않고 잘 안고가는 것이 숙제다.

둘째, 중국어의 진보다. 하반기 설교도 계속해서 중국어로 진행된다. 현재 중국어 설교 5년차다(안식년 1년 제외하면). 목회사역의 특성상, 매주 설교를 해야 한다. 이 덕에 중국어로 설교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발음도 안식년 기간동안의 북경연수(?)를 통해서 좀 더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중국어 전체의 수준향상의 문제에 걸려 있다. 좀 더 높은 수준의 중국어로 표현되어지는 설교, 중국인의 마음을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터치할 수 있는 언어구사력이 절실한 습득 과제다. 이를 위해서 하고자 하는 것은 중국어를 수준 있게 구사하면서도, 회중에 터치하는 힘이 있는 중국인 설교자들의 설교를 듣고, 익히는 것이다. 이는 전에도 시도해 본 적이 있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별로 진전이 안보이는 투자다. 그렇지만 꾸준히 장기적으로 해 나갈 경우, 나의 중국어 설교 수준의 근본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2010년 7월 15일 목요일

잊혀지지 않는 재미있는 에피소드 몇 가지

## 에피소드 1

선교지인 일본에서 지내다가 한국에 잠시 귀국할 일이 생겼다. 오랜만에 접하는 한국이었다. 오랜만에 가족들, 친척들을 만났다. 하루는, 누님과 조카들이 와서 즐겁게 만나고,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마침 집에 동생 차가 있어서, 오랜만이긴 하지만, 면허증도 있고, 일본에서도 계속 운전하던 터라, 차로 역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간만의 한국에서의 운전이고 해서 긴장된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고, 집을 나섰다.

도로로 잘 진입해서 사거리를 지나는데 저 앞에 경찰차가 서 있고, 교통경찰들이 도로를 점하고 뭔가를 하고 있었다. 가까이가서 보니, 음주운전 여부를 측정하는 음주단속이었다. 앞의 차들이 지나가고 점점 내 순서가 다가오는데, 순간 음주단속에는 어떻게 응하나? 하는 당혹스러운 문제가 생겼다. 일본에서 운전할 때, 내가 살던 곳에서는, 한번도 음주단속을 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음주단속을 받을 때, 어떻게 해야할지 잊어버렸다.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하더라?? 기억이 안난다. 마침내 내 차가 단속경찰 옆에 섰다. 긴장된 마음으로, 차창을 내렸다. 단속경관은 인사를 하고서는, 단속용 측정기를 내 입 가까이 들이민다. "아 이럴 때 어떻게 하더라? 생각이 안난다". 생각이 안나면, 습관대로 나간다.

일본에서 "일본에서는 뭐든지 세게하면 안된다"는 훈련을 생활에서 단단히 받고 있던 때라, 그 생각이 내 생각과 행동을 지배했다. 일본에 있으면서 형성된 내 습관은, 무엇을 하든지 할 수 있으면, 할 수 있으면 부드럽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하아 --" 하고 최대한 부드럽게 불었다. 그러자 바로 짜증섞인 단속경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후우 -- 하고 쎄게 부세요!" . "네" 하고 다시 "후--"하고 쎄게 불었다. 경관 말을 들으니 생각났다. "하--가 아니고, 후--였지". 뒤에서 누님과 조카들이 웃고 난리가 났다.


## 에피소드 2

사역지에 부임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세례를 베풀기회가 주어졌다.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장로교 목사지만, 내가 부임해서 사역하고 있는 교회는, 침례교의 영향으로 세워지고, 그 문화를 가지고 있는 국제단체의 교회였다. 그래서 세례는 꼭 침례로 행했다. 교회 일층에 침례실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경험이 없는 터라, 담임목사님으로(이분은 전체 교회와 일본인 사역을 책임지고 계셨고, 나는 중국어 예배를 섬기고 있었다) 수고하고 계신 선배선교사님으로부터 단단히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사전에 무엇을 준비해야하는지? 복장은 어떠해야하는지? 실제적으로 세례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어떻게 물 속에 잠기게 하고, 일어서게 해야하는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그 가르침의 거의 맨 마지막에, 이런 조언이 있었다. "박선교사님! 그리고 내일 우리도 하얀 색 바지와 와이셔츠를 입고, 침례탕으로 들어가니, 할 수 있으면 속옷은 색깔있는 것들은 피하고, 하얀색으로 입으세요! 다 비칠수 있으니까?". "예 잘 알겠습니다". 긴장을 늦출수 없는 일본교회라(참고로, 우리는 일본교회안의 중국어 예배였다), 배운 것을 다시 생각하고 준비했다. 물론 가르침 받은대로 나는 위아래 하얀 속 옷을 입었다.  

세례일이 되었다. 주일 예배후에 세례는 세례실에에 은혜롭게 진행되었다. 하나 하나 잘 마무리 되었다. 처음 섬겨보는 세례라, 담임목사님이신 선배님이 직접 세례탕에서 인도도 하시고, 도우시고 했다. 무사히 잘 마치고, 회중들이 앉아 있는 홀과 통하는 세례실 창문을 닫고(이 창문을 통해서 회중은 침례상황을 지켜 본다), 선배님이 먼저 나가시고, 그 뒤를 이어 내가 나갔다. 세례통(작은 목욕탕의 욕조처럼 넓고 깊어 계단으로 진입하고 나가게 되어 있다)의 계단으로 밖으로 나오는데, 아! 선배님의 하얀 젖은 집례복 속으로 선명하게 드러나는 " 땡땡이 무늬 속옷......"r그토록 주의를 주셨던 선배님께서 땡땡이를 입으셨다니...."하하하! 이래서 땡땡이는 안되는 구나!".  그 날의 땡땡이 잊혀지지 않는다.


## 에피소드 3

이 일은 내가 겪은 것이 아니라, 본인에게 직접들은 것이다. 지금은 20여년 가까이 사역한 선임 선교사의 이야기다. 그는 미국출신으로 현재는 한 국제기관의 한 지역을 책임 지는 베테랑 선교사가 되었다. 그가 갖 일본에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처음에 일본에 와서, 모르는 것이 많으니, 선임선교사가 사역하는 교회에 임명되 이런 저런 일을 도우면서 일본어를 배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성찬주일이었다. 선배 선교사는 성찬주일을 준비하며, 이 신임 선교사가 일본어도 잘 못하고, 특별히 시킬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성찬용 빵을 사오라고 시켰다. 신임 선교사는 빵집에 가서 적절한 빵을 골라서 사왔다.

성찬주일이 되었다. 선임선교사는 성찬식을 진행했다. 엄숙하고 진지하게 그리고 은혜롭게 말이다. 찬양하고, 기도하고, 설명하고, 선임 선교사는 예수님의 몸인 빵을 사람들 앞에서 높이 들고,  " 예수님은 이렇게 몸을
찢기셨습니다" 하고 빵을 뜯었다. 아 불싸! 빵이 맨빵이 아니라, 쨈 빵이었다. 쨈이 터지고, 흐르고..... 신임 선교사는 몸둘 바를 모르고, 선임선교사는 수습하느라 바쁘고, 그렇게 그렇게 은혜로운 성찬식은 끝났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그 주인공 신임선교사는 이제 책임자가 되어서 그때의 일을 즐거이 사람들에게 얘기한다.  

 




2010년 7월 10일 토요일

유학생들의 아르바이트 찾기 전쟁

일본의 경기가 벌써 십수년째 지속적으로 나빠지면서 사람들이 생활이 많이 어려워졌다. 정말 일본 경제상황이 좋지 않다. 그중에 가장 피부로 느껴지는 어려움은 학생들의 아르바이트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듣기로는 불과 5,6년전의 동경은 원하면 얼마든지 할만한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 우리는 홋카이도에 있었는데, 홋카이도의 중국학생들은 다들 언어학교만 졸업하면, 동경 등 대도시로 가려고 했다. 거기에 가면 일할 기회가 있으니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안그렇다. 동경에도 일자리가 없다. 더욱이, 일본말이 쉽지 않은  외국학생이 아르바이트 자리 찾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어 학교에서 유학생들을 만나보면, 일본에 온지 3달이 지나도 아르바이트를 못 얻은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심지어 반년, 9개월이 되도록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일본에서 외국학생에게 아르바이트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중국같이 일본과 경제 격차가 심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의 경우, 국비가 아닌 이상, 대부분 생활비, 더 나아가 학비까지도 자신의 아르바이트로 벌어야 하는데,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게 되면, 유학생활을 해나갈 수 없고, 가까이는 생계 자체를 위협 당한다.  

그래서 나도 그런 학생들을 자주 만나다보니, 아르바이트에 관련된 문의를 많이 받게 된다. 전에 상점에서 알게되 명함을 주었던 한 학생은, 내게 전화를 해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좀 찾아 줄 수 있는지 적극적으로 문의를 해오기도 했다. 어떤 학생은 아르바이트를 찾다 찾다 겨우 찾은 곳이, 하루 4시간 정도 하는 아르바이트인데, 오고가는 시간만 3시간이다. 차비도 주지 않고, 그럼에도 갔다. 현재 상황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기회가 온게 호사다. 다른 한 학생은 겨우 괜찮은 아르바이트를 찾았는데, 아는 사람에게 한달치 아르바이트 수입을 소개비로 주고 얻었단다. 그야말로 아르바이트 자리 찾기 전쟁이다.  

엊그제는 우리교회에 나온지 한달쯤 지난 한 자매가 전화가 왔다. 이미 중국에서 예수님을 믿고, 세례도 받은 신실한 자매다. 울면서 아내에게 현재 당한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일본에 온지 세달이 지났는데, 아직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못해 생계자체가 위협당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아르바이트자리 찾기가 어려울지 일본에 오기전에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그는 긴급한 도움이 필요했다.

현재, 우리가 섬기는 주대상은 일본에 온지 1년 미만의 일본어 학교 학생들이 주류다. 이들의 현실적인 필요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다. 이 점이 내게 주어진 새로운 기도제목이요 숙제다. 이들의 현실적인 필요를 도와줄 수 있도록,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그러면서도 그저 일자리 소개와 도움으로 끝나지 않고, 영혼을 돕는 목자로 설 수 있도록 기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2010년 7월 1일 목요일

개척 6개월의 ing

닛포리 화인(중국인) 교회가 개척된지 6개월이 되었다.
지난 1월10일에 첫 예배를 드리고, 꾸준히 함께 예배하는 공동체로. 반년 정도가 지났다.
이 시점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그동안의 일들을 간단히 정리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어떻게 섬길 것인지 생각해 본다.

먼저 지난 반년의 시간을 돌아보면 다음과 같다.

#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람들을,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내주셨다. 지난 기간동안 우리 닛포리 중국인 교회에 왔던 사람은 대략하면 35명에서 40여명 정도가 된다. 그중에 매주 예배드리고 말씀을 배우는 자리잡은 사람이 8명이다. 그중 한명이 지난주 개인사정으로 귀국했다. 따라서 7명이 남아 있는데, 이들은 영적인 소원이 있고, 웬만하면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인데, 예수님을 알아온지 반년정도 되었다. 대부분이 일본에 온지 1년쯤 되는 일본어 학교 학생들이다. 앞으로 대학,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할 예정이다.

# 신실하게 나오는 7명중, 3명은 이미 세례받은 이들이고, 나머지 4명은 현재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더욱 구체적으로 진리를 알아가는 중이다. 이들 가운데 영적인 변화가 있고, 소원도 있고, 소망도 보인다.

# 이들을 섬기는 일은, 늘 식사를 섬기면서 시작된다. 처음 초청한 것도 만두파티이었고, 주일 준비도 식사준비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모두가 처음 예수님을 알아가는 과정인데, 식사 외에는 이들을 향한 우리의 관심과 사랑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방법이 별로 없다.

# 이들은 대부분 아내와 내가 다니던 일본어 학교에서 알게되고 전도해서 오게 되었다. 멀리가 아닌 바로 옆자리의 친구들을 초청하게 된 것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람들이 있었다.

# 동경 사역가운데, 하나님께서 자주장사 루디아 같은 분들을 붙여신다. 정말 아는 이 한 명도 없이 동경에 왔는데, 하나님께서 한 명 한명 붙여주셨다. 그 중에 우리 옆 골목에 사시는 한국인 최집사님은 자주장사 루디아가 바울을 도왔던 것처럼 우리를 도우신다. 우연치 않은 기회에 알게 되었는데, 이 분은 우리 사역을 알게 되고는, 매번 김치, 빵 기타 여러가지 식품으로(식품점을 하신다) 우리 공동체에 먹을 것을 공급해 준다. 이분 덕분에 우리 공동체가 더욱 풍성해졌고, 은혜를 많이 경험했다.

# 집에서 교회를 시작하면서, 가정교회를 많이 염두에 두었다. 어디가든 집이 있으니, 이들이 이곳을 떠나는 그 날에도 자기 집에서 교회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맘에서다. 목사가 없어도, 예배당이 없어서도 자기 집에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이들의 모임이 그들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큰 바램이다. 그래서 우리의 사역은 여기에 포커스가 있다. 지난번에 선교회의 일로 온 가족이 주일에 동경에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여러가지로 고민하다가 잘 됐다 싶었다. 내가 없어도 이들 스스로 주인 의식을 가지고, 예배하고, 스스로 섬기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을 믿고, 이들의 손에 맡기고,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돕고, 맡기도 떠났다. 결과적으로는 참 좋았다. 이들 스스로 모여서 식사를 준비하고, 예배를 드리고, 좋은 교제를 나누면서 예배했다. 좋은 도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점을 앞으로 잘 살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 지난 6개월간 요한복음을 설교했다. 처음 예수님을 알아가는 형제, 자매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번째 텀부터 설교의 방향은 한 마디, 한 구절 깊이 다루는 것보다는 전체적인 스토리를 넓고 의미있게 조망하는 방향으로 잡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반년만에 비교적 빨리 요한복음을 마루리하게 된 것 같다. 이를 통해서 나 자신이 예수님을 좀 더 깊이 알게되고 만나게 된 것이 중요한 수확이다. 앞으로는 무엇을 강의할까? 고민중이다. 다시 복음서를 하기에는 부담되고, 구약의 창세기를 하면서, 요한복음에 기록되지 않은 스토리들을 다루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을 더 균형있게 인식하게 될 것 같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 전도대상과 장소를 넓혀라!
우리가 전도하는 범위가 가장 가까운데에서 시작되는 것은 좋은 점이다. 그러나 이 출발점은 계속 번져나가야 한다. 현재, 우리가 다니는 일본어 학교 전도를 넘어서, 다른 일본어학교, 대학, 대학원, 기타 장기체류 가족들, 영주권을 가진 중국인들...... 왜냐하면, 그런 전도가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을때, 모임이 정체되고, 우리 자신이 섬기는 방향과 힘을 상실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람이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데, 우리가 그물질 하는 어장은 아직 너무 좁다. 좀 더 많은 곳에, 더 많이 그물질 해야 한다. 동경은 그런 조건이 잘 되 있는 곳이다. 등록된 인원만해도15만 7천여명의 중국인이 동경에 산다. 잘 된 것은, 이번 달부터 나의 경우 일본어 학원을 그만두고 더 많은 시간을 교회 섬김에 투자하고, 여기 저기 그물질을 하려고 한다. 아내는 계속해서 학원전도, 나는 캠퍼스, 장기 체류자들을 향한 전도, 그리고 우리 형제 자매들을 통한 전도 등을 통해서 전도의 대상과 장소를 확대해나가야 한다.

# 주중 가정모임을 시작하라!
주일에 모이면, 예배드리고, 나눔과 성경공부를 주로했다. 그런 가운데, 좀더 심도있게 나누고, 함께 기도하고, 기도를 체험하고, 체험한 것을 간증하는 자리의 필요성을 많이 느꼈다. 그리고 우리 형제, 자매들을 리더로 자라게 할 수 있는 실제 훈련의 장도 필요함을 느꼈다. 또한, 예배를 주일이라 오지 못하는 이들과 예배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방문자들을 위한 모임이 필요했다. 주중에 자유롭게 그들을 초청해 함께 식사하며, 얘기하며, 그리스도를 알아 갈 수 있는 시간 말이다. 이런 필요에 의해서, 주중의 가정모임이 시작된다. 7월 첫 주인, 금주부터 매주 목요일에 우선은 우리 집에 모여서 모임을 시작한다. 간단한 성경공부, 그리고 공동체를 세울 수 있는, 서로를 잘 알고, 가까이되고, 나눌 수 있는 분위기로 모임을 섬기려고 한다. 특히, 이 모임이 장기적으로는 우리 형제, 자매들의 손에 의해 인도되고 퍼져나가면서, 이를통해서, 이들이 작은 가정교회를 섬기는 제자들로 훈련되어가기를 소망한다.

# 좀 더 폭넓게 사역하라!
나 개인적으로는, 일본어 학교를 그만두고, 사역에 더욱 뛰어들 생각이다. 그리고 그동안 뒤로 밀어두었던 동경의 여러 교회, 선교사님들, 일본교회, 중국인 네트워크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교제할 생각이다. 때가 된 것 같다. 그동안은 이런 저런 이유로 만나야할 사람, 연결해야할 사람들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올 7월부터는 가까운 일본교회에 주중에 출석해서 일본교회, 사역자들과 교제를 시작하고, 일본가정교회네트워크에도 출석하고, 동경의 중국인교회 사역자들과도 만날 생각이다. 이를 통해서, 사역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교제의 범위 안에서 함께 해나가는 사역의 기초를 놓기를 소망한다.  


6개월은 어떻게 보면 짧고, 어떻게 보면 긴 시간이다.

그 반년간, 우리는 하나님이 이곳에 우리를 보내셨구나! 확신했다. 여러 일들과 사람들을 통해서, 이 곳에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시구나! 눈으로복, 입으로 고백했다.
그리고, 그 반년간, 우리는 동경에서 사역을 시작하면서, 종종 조급해졌다. 특히, 예배에 어떤 날에는 정말 적은 수가 모이면, 본의 아니게 힘이 빠지고, 어두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반년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우선적으로 일하시고 계심을 경험했다. 내 안에서, 우리 가족 안에서,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 쉬지 않고 신실하게 일하시는 그분을 목도했다. 그리고 다시 그분의 행하심을 기대한다. "지으신 이도 여호와! 택하신 이도 여호와! 보내신 이도 여호와!"

우리를 통하여 행하실 "하나님의 큰일!"을 기대한다. 아멘!!!


첫 송별회(귀국 형제)예배장소(2층의 집)생일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