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7일 수요일

김 선교사님께 드리는 편지


한 선교 잡지에서 원고요청이 있어서, 
한 선배선교사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으로 써서 보낸 글을 올립니다.  여기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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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 선교사님. 동경의 박수민 선교사입니다.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작년에 동경에서 있었던 선교대회에서 잠시 뵙고 나서, 그간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지는데 잘 지내시는지요?
저희는 지난 2011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잊혀지지 않는 일은 지난 311일에 일어났던 일본동북대지진입니다. 그날은 이제 저희 가족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습니다. 진원지는 일본 동북부였지만, 그 흔들림은 동경에까지 있었습니다. 저희는 그날 집에서 자매 두 명과 식사를 마치고, 기도하고 마치려 할 때 지진을 만났습니다. 늘 있던 지진이지만, 그 날은 특별했습니다. 잠시 왔다가는 지진이 아니었습니다. 흔들림이 달랐습니다. 계속 흔들리며 물건들이 떨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해졌습니다. 모두들 공포에 떨었습니다. 잠시 후 저희는 온갖 매체를 통해서 일본에 일어난 끔직한 일의 진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도 9의 대지진, 높이 10-30미터에 이르는 쓰나미, 원자력 발전소 사고, 그리고 23천여명의 사망, 실종자...... 일본은 전쟁터 같았습니다. 비상 식료품들이 상점에서 품귀가 되고, 주유소에 휘발유가 떨어졌습니다. 방사능 공포로 출국과 피난행렬이 이어졌습니다. 끝임 없이 오는 여진과 보이지 않는 방사능 위협 앞에, 하루 하루 긴장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현실이 아닌 재난영화에나 나오는 나날이 계속되는 것 같았습니다. 과연 계속해서 이곳에서 살아 갈 수 있을까?

그렇게 1개월이 지났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일상을 회복해갔고, 9개월이 지난 지금은 거의 정상을 회복했습니다. 밖에서 볼 때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대지진 이전의 삶을 회복한 것은 아닙니다. 대지진 그 이후의 날들은,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결코 대지진 이전의 날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여전히 지진이 발생하고, 또 올지도 모를 대지진에 대한 소문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갑니다. 방사능 오염 문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의 악화로 많은 외국인들이 일본을 떠났고, 새로 오는 외국인도 급속히 줄어들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곳에서 한인을 대상으로 목회하는 분들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지진과 방사능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에, 더욱 어려워진 목회적 환경, 여기에 최근에는 엔고라는 악재까지 겹쳤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환경가운데, 몇 가지 고무적인 일들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번 대재앙은 일본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일하는 우리 선교사들에게,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쓰나미로 집을 잃고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을 수많은 해외와 국내교회들이 직접 나서서 도왔습니다. 지금까지는 너무 가진 것이 많아서 뭐 도와줄 기회도 필요도 별로 없었는데, 드디어 도와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일본 교회, 그리스도인들, 선교사들, 해외의 교회들이 나서서 직접 물건을 사서 나르기도 하고, 피난시설을 찾아가 음식을 해서 나눠주기도 하고, 피난 온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기도 하고, 바닷물로 오염된 집들을 청소해주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섬김과 희생이 곧 복음의 진보라는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냥 쏟아 붓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긍휼, 사랑, 그리고 지속적인 사랑의 행동은 내리사랑처럼, 가랑비처럼 일본인들의 마음을 적시며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난주에 코오리야마(郡山市)라는 곳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방사능 누출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입니다. 도시 곳곳이 기준 방사능 허용치를 넘겨 생활환경이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동료선교사님들과 함께 이곳에서 사역하고 계신 한 한인선교사님을 방문하고 저희 단체를 통해 모금된 지진구호금을 전달했습니다. 저희는 그곳에서 선교사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이 어떻게 선교사들을 쓰셔서 재난가운데서 일하시는가? 볼 수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생활전체가 방사능 오염에 계속 노출되어 있는데도 이곳에 있는 이유는 함께 있는 교인들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교인들이 삶의 터전인 그 곳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한 자신도 남겠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님은 지금 교인들과 함께 지내며 이 시기를 지내 것이 자신을 이곳에 부르신 하나님의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 선교사님의 자리 지킴은 울림이 되어 함께 하는 교인들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성령의 역사가 있었고, 전도의 문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일을 다 마친 후 다시 동경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날의 만남을 되새겨 보며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그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내는 것입니다. 잠잠히 우리를 바라보며 사랑하셨던 주님처럼, 잠잠히 그들을 사랑하며 함께 지내는 것입니다. 그 임마누엘의 진리가 더욱 충만하게 이곳 가운데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주십시오!

급하게 드린 편지라 두서가 없었습니다. 잘 이해하시고 읽어주셨으리라 믿습니다.
언제 여유가 되실 때, 다시 동경에서 반갑게 만나 뵈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평안하소서!

2011 126일 동경에서 박수민 선교사 올림

코오리야마 郡山市


왼쪽에서 세번째, 네번째 분들이 郡山 선교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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