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10일 토요일

선교사와 글쓰기

선교사가 글을 써야하는 몇 가지 생각되는 이유다.

먼저는 선교사이기 때문에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첫째, 선교사는 공공의 재화로 사역하는 공인임으로, 그 사역의 과정, 그 가운데 얻게된 것들을 글로 기록하여, 그 자신과 타인의 유익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른바, 공공의 재화로 획득된 경험과 지식에 대한 공유(Share in)다.

둘째, 선교사가 경험하게 되는 상황, 부딪치는 여러 상황들은, 특수한 것들이 많다. 살고 있는 곳, 접하는 사람들, 문화, 언어, 일상생활....등이 본국의 상황과 많이 다르다. 이런 일반적이지 않은 것들은 더욱 기록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며, 글 쓰기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을 풍성케 해주어야 한다. 선교사 개인의 선교적 경험이 본국의 형제, 자매들의 생각, 생활, 신앙을 풍성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또한 선교사의 독특한 환경은 독특한 관점과 통찰력을 배양시켜줄 수 있는 환경이다. 그래서 그런지 선교사출신중에 좋은 퉁찰력으로 걸출한 책들을 남긴 분들이 적지 않다. 강해설교로 유명한 데니스 레인,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의 레슬리 뉴비긴, 바울의 선교 그리고 우리의 선교의 롤런드 앨런 등은 모두 선교사 출신이다. 그래서 선교사는 글을 씀으로서 더욱 선교사다운 공헌을 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선교사는 글쓰기와 그 획득된 경험의 공유를 통해서, 고립된 섬의 상황을 탈피해야 한다. 선교사의 최대 약점 중의 하나는 지나친 독립이다. 독립을 넘어선 독선이다. 현장에 나온 선교사가 되기까지 뚝심으로, 믿음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라, 자기의 생각이 강한 편이다. 글과 그 글의 공유는 그 강한 독립심에 균형잡힌 다리를 달아 줄 수 있다. 특히, 생각을 담은 글은, 주변이들의 공유 과정을 거치면서, 너무 독선적인 되는 것을 방지하는 있는 조언을 들을 수 있게 해준다.


다음은 글쓰기가 주는 일반적인 유익때문이다.
김기현 목사님의 '글쓰는 그리스도인'(성서유니온)이라는 책에서는 글쓰기의 유익을 이렇게 말한다. " 첫째, 글쓰기는 영성을 훈련한다. 둘째, 글쓰기는 내면을 치유한다. 셋째, 글쓰기는 사고를 계발한다. 넷째, 글씨기는 관계를 소통한다. 다섯째, 글쓰기는 세상을 변화시킨다." 나는 김목사님의 언급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이중에서, 나는 글쓰기가 주는 '사고의 계발'과 '관계의 소통'에 대해서 조금 더 언급하고 싶다. 글쓰기는 본국과 같은 연구환경이 없는 선교사들에게 매우 중요한 사고 계발의 방법이 된다. 글을 쓰려면 독서해야하고, 경험해야하고, 연구해야하고, 좀더 정확해져야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사고의 운동능력을 배양시킨다. 사고에 근력이 생겨나고, 지구력도 생겨나고, 훈련으로 다져진 사고가 된다. 따라서, 나는 글쓰기가 선교사에게 주어진 사고계발의 더없는 기회라고 믿는다.

글쓰기의 유익중에 '관계소통'면에서 기여도 적지 않다. 갈수록 소통의 도구는 발달하지만 소통의 부재를 호소하는 세상이다. 선교사는 늘 소통하는 사역이다. 하나님과 사람과 그리고 나 자신과 말이다. 이 세가지 소통의 영역중에서 선교사들의 소통이 취약한 부분이 사람과의 소통이 아닐까? 싶다. 말이 안통하는 선교사들이 많다. 본국의 언어 감각을 많이 잊어버려서도 그렇고, 고집이 강해져서도 그렇고, 다른 공기 마시며, 다른 말을 쓰고, 다른 땅에 살다보니 그렇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 소통의 부재가 가져다 주는 폐해가 만만치 않다. 오해, 편견, 다툼, 포기.....좀 더 나은 소통을 위해서 글을 써보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좀 써보려고 한다.

글쓰려할 때, 시간에 쫓기는 어려움이 있고, 괜사리 일을 안하고 한량 같이 앉아서 글이나 쓰는 사람으로 오해받을 것 같은 걱정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저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글쓰기도 선교사로서의 사역의 한 부분이라는 소신이 생겼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글쓰기를 통해서 조금 더 소통하고 조금 더 공유하고, 조금 더 다듬는 선교사가 되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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