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삿포로에서 4년3개월간(2004년 5월부터-2008년 9월까지) 삿포로 국제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중국어 예배를 개척하고 섬겼다. 이 기간은 정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기간이었다. 전혀 모르는 일본이라는 땅에 적응하고, 일본교회를 알아가고, 처음으로 해보는 단독사역을 훈련하고...... 이런 저런 면에서 너무나 유익하고 복된 시간이었다. 만일 ,SIC(삿포로 국제교회, 이하 모두 SIC로 칭함)에서의 사역이 없었다면 우리는 일본에 적응 못하고 말았을 것이다. SIC에서의 사역에 관한 얘기는 '주인장 글 모음' 폴더 안의 '수민아의 중국선교 이야기3' 파일에 잘 정리되어 있음으로 그것을 읽어보면 많이 알 수 있음으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요지는 이것이다. 왜 한참 진행될 수 있는 SIC에서의 사역을 마감하고, 동경에서 새롭게 개척을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이유다. 이 이유에 대한 설명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선교사역을 하는 '사역적 철학'이다. 또한, 이 점은 우리가 추구하는 교회관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각설하고, 우리가 동경에서 새롭게 교회를 개척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선교사로의 선교원칙 때문이다.
처음 한국을 떠나 선교지로 나올 때의 이유는 분명하고 간단했다. 한국은 내가 아니어도 대신할 사역자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디아스포라 중국인들은 많은 경우, 아직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너무 없었다. 그야말로 듣지 못해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중국인은 있으나 사역하는 이가 없는 일본의 삿포로까지 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삿포로에서 동경으로 오게 되었다. 삿포로에는 이제 중국인 모임이 존재하게 되었다. 복음을 증거하고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가 세워지게 된 것이다. 바로 그 시기에 나는 잠시 일본남쪽을 여행하면서, 복음을 듣지 못한 수 많은 중국인들이 일본남쪽에 있다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 복음전파의 필요성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삿포로에서 일본남쪽으로 부르시는 부르심의 음성을 듣게 된 것이다.
둘째, 디아스포라 중국인들을 위한 새로운 교회(Emerging Church)에 대한 부르심 때문이다.
우리는 삿포로에서 전통적인 교회 모델을 중심으로 교회개척에 임했다. 그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중국인모임이 교회의 한 지체로 속해 있었고, 교회의 전체 지향점이 있었다. 우리는 이를 존중했고, 그 안에서 배우고 섬겼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교회는 일본인 및 국제인을 대상으로 하는데, 그 지향점은 일본에 정주(定住)하는 사람들이었다. 사역의 대상도, 미래도 지역(local)에 있었다.
그렇지만 디아스포라 사역은 정주하는 사람들을 넘어서, 귀국하는 사람(海归Haigui)을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디아스포라 사역은 모이기도 하지만, 흩어짐(Diaspora)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흩어짐을 염두에 둔 훈련, 준비가 없으면, 안개와 같은 사역이 되기 싶다. 대략 디아스포라 교회 참석자들의 절반 이상이 5년내에 학업, 직장관계로 타지로 이주하게 되는데, 이주 이후가 준비 안된다면 그들의 신앙은 이주하면 사라지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이 일본을 떠나 일시적이긴 하지만, 중국으로 귀국했을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여러번 목격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은 일본의 교회에 익숙해져 있었고, 중국내에서는 그런 교회를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귀국후 많은 경우 침체된 신앙생활을 하거나 신앙을 접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거기에 우리의 사역적 고민이 있다. 귀국한 사람들이 각자 알아서 살아 남도록 해야하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기도의 도움을 넘어서는 도움은 없는가? 이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복음은 '안개'가 아니라 '생명'이다. '생명'은 민들레 씨앗처럼 흩어지면, 그 떨어진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서 열매를 맺고, 토양을 바꾸고, 숲을 이루어 간다. 그게 우리가 받은 '복음적 신앙'이다. 귀국 이후의 사람들의 신앙이 안개가 아니라, 파송된 '빛'과 '소금'이 되도록 도울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사도행전의 흩어진 사도들이 또 다른 디아스포라 교회 공동체를 이루었듯이 말이다. 바로 그곳에 디아스포라 사역의 가치가 있다. 흩어져 돌아갔을 때, 생명의 씨앗이 고국의 땅에 떨어졌을 때, 바로 그곳에 뿌리를 박고, 자라나서, 때가되면 열매를 거두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는 디아스포라 중국인 사역을 위해서 '새로운 모습의 교회(Emerging Church)'가 세워질 수 있도록 도전해야 한다. 지금 예수를 믿은 이곳과 귀국한 그곳이 연결되는 교회, 이곳에서 받아들인 생명의 씨앗이 그곳에서 심겨 자라나 열매 맺을 수 있도로 도울 수 있는 교회가 존재해야 한다.
셋째, 중국교회를 위한 새로운 교회개척 모델제시를 위해서다.
앞으로 중국교회는 본의든 본의아니든 세계 선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중국교회가 더욱 더 성경적이고,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중국교회의 모습은 그렇게 낙관적인 기대만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신생아시아교회들이 겪고 있는 동일한 문제인, 세속주의, 물질주의에 중국교회도 급속히 노출되어가고 있다. 이제 조금만지나면 중국교회가 부딪칠 중요한 문제는 정부의 핍박과 압력이 아니라, 물질주의 거센 유혹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가운데, 어떻게 중국교회가 좀 좋은 방향으로 전진할수 있도록 섬길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좀 더 성경적인 교회, 건강한 교회, 선교적인 교회로 전진할 수 있도록 일조할 수 있을까? 여기에 나는 중국교회를 섬기는 한명의 선교사로서 피할 수 없는 고민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고민에 대한 나름대로의 응답이 '새로운 교회'에 대한 도전이다. 아마도 그 새로운 교회는 이런 특징을 갖게 될 것이다. 첫째 지나친 선교사(목회자) 의존을 넘어설 것이다. 모든 성도들이 교회 개척자요 사역자일 것이다. 둘째, 예배당 중심적 사역의 틀을 넘어설 것이다. 마이클 프로스트가 '새로운 교회가 온다'에서 언급했듯이 건물은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건물이 이 새로운 교회개척자들(성도들)에게 쓸데없는 메시지를 주지 않토록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에서 교회를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있는 가정에서 말이다. 사실, 중국교회는 이미 가정교회의 원형을 가지고 있다. 또한 역사적 이유로 평신도 사역자들이 교회를 개척하고 섬겼다. 따라서 이러한 도전은 사실 중국교회에게 새로울 것도 없다. 그렇지만 중국교회가 역사적 상활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가정교회와 평신도 중심이라는 틀이, 이제는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한다. 과거의 핍박을 견뎌내는 가정교회, 평신도 사역자 중심의 옛날의 옷에서, 세속주의, 물질주의, 지나친 교권주의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중국과 세계를 섬길 수 있는 중국교회가 되기위한, 새로운 옷으로써의 가정교회, 평심도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런 생각들이 있다고 해서 뭔가 거창한 것을 우리가 할 수 있거나 하고 있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하는 것은 아주 작고, 평범한 개척교회를 일본 동경의 닛포리에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죤스토트가 그의 책 "살아 있는 교회"에서 언급한 로버트 벨라의 말처럼 "......한 문화의 질은 그 구성원의 2%가 새로운 비전을 가질 때 변화될 수 있다"라는 말을 신뢰한다. 우리는 중국교회의 미래 모델에 새로운 비전을 가진 2%가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도 하고 글도 쓰고, 몸 부림을 쳐보는 것이다. 그렇게 안하면, 우리는 그 새로운 비전을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중국교회의 미래에 있게 수 많은 교회모델중에서 하나쯤은 우리의 사역의 부대낌 속에서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그 모델이 미래의 중국교회가 하나님과 세상을 섬기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