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0일 화요일

선교사는 " 다리(Bridge)" 다.

-  선교사란 누구인가? 에 대한 두번째 대답.
-  선교사란 누구인가? 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은 이곳에
(http://www.blogger.com/blogger.g?blogID=8449156411065876033#editor/target=post;postID=2250455572106293637)

다리는 지금 이곳과 건너편 저곳을 연결해 준다. 다리가 없던 시절, 계곡, 강, 바다의 장애물이 있던 땅들은 서로 나눠져 있어야 했다.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저 계곡 건너, 저 강 건너, 저 바다 건너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갈 수 없었다.

다리는 이 곳과 저 곳의 단절을 연결한다. 이어주고 연결해 주고 새로운 세계를 경험케 해주는데 있어서 다리처럼 유용한 도구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물론 다리가 있다고 모든 사람이 건너가는 것도,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도 아니다. 다리가 있어도 건너려는 의지가 없다면 다리는 무용지물이다. 그렇지만 없던 다리가 존재하게 될 때, 최소한 건너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이들에게 다리는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준다. 

선교사는 이런 다리와 같은 존재다. 현지인이 아직 보지 못한 곳, 가지 못한 곳, 갈 수 없는 곳에 이르는 다리가 되어 준다. 보고, 듣고, 경험케 해준다. 다리된 선교사는 현지인의 오늘의 이곳을, 내일의 저곳으로 연결해 주는 존재다.

선교사는 현지인과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살다가 현지에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가능성이 크다. 선교사가 이미 경험한 세계, 그리고 그가 알고 있는 세계가 현지인에 유용한 세계, 그들에게 생명을 주고, 더 풍성하게 주는 세계라면, 선교사는 현지인과 그것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야 한다.

선교사는 하나님을 모르는 죽음 이편에 서 있는 이들을, 하나님을 아는 생명 저편의 세계로 연결한다. 더 풍성한 생명이 있는 저편으로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야 한다. 또한 현지인의 믿음이, 그들의 신앙이 이편의 세계에만 갇히지 않고, 저편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중간에 서있는 다리가 되어 주어야 한다. 다리가 밑에 깔려줄 때, 사람들은 그 다리를 밟고, 저편의 세계로 전진할 수 있다.

다리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연결"에 있다. "이어줌"에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섬기는 재일중국인 디아스포라에게 어떤 "연결"이요, 어떤 "이어줌"의 다리여야 하는가?

나는 이 곳 사람들을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께 연결하는 다리다. 나의 모든 존재는 이 다리가 되고자 애쓴다.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한 사람 한 사람 권면하는 것은 이를 위해서다. 그들의 삶이 나를 밟고 지나가서 그 분에게 이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나는 이 곳 재일중국인들을 하나님 나라 사역의 세계로, 세계 선교로 이어주는 다리다. 이들이 다리 저편의 세계에 눈이 열리도록 접속하고, 넷 워킹하고, 코디하는 다리다.   
   
모든 다리가 다 대교(大橋) 일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작은 냇가를 가로 지르는 징검다리도 있고, 시골의 투박한 나무다리도 있다. 그 지역의 필요에 맞추어서 크기와 모양이 다듬어진 다리가 놓여진다. 크고 화려한 대교들과 비교하면, 작고 보잘 것 없는 다리도 "연결"과 "이어줌"에 있어서는 너무나 소중한 다리다.

다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외모도 규모도 아니다. 다리가 놓여져야 할 위치다. 다리가 이미 있는 곳에 또 하나의 다리를 놓을 필요가 없다. 선교사는 그 어떤 곳보다 다리가 필요하지만 아직 놓여지지 않은 곳에서 다리를 건설해야 한다. 그것이 부르심에 대한 더욱 합당한 응답이라고 믿는다. 

그 부르심에 따라 살다보면 멋진 완성품으로서의 다리로 쓰임받기 보다 "징검다리"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우리의 인생은 짧고 하나님의 일은 장구하기에  징검다리 중간 어디에 놓인 돌 하나에 불과한 존재임을 깨닫곤 한다. 내 세대에 내 역할의 돌을 놓고 나면, 누군가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돌을 하나 더 놓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하나님의 때에 이 곳 사람들을 저 곳에 이르게 해주는 다리가 생겨나는 것이다. 징검다리가 뭐 자랑할 것이 있으며, 뭐 내놓을 것이 있겠는가? 선교사는 그저 물살에 부디끼고 삭아져서 민민해진 몸둥이 하나 가지고, 여전히 그 물살 한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가 그런 내 위를 밟고 지나가 이 물살 저편에 이르러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게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존재다.


2013년 12월 6일 금요일

동역자들과 만남, 그리고 헤어짐

오늘(12월7일) 24년간 일본에서 선교사로 사역하신 한 선배 선교사님(대만인) 부부를 만나 교제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이 분들은 24년전 OMF선교사로 일본에 오셨고, 최근 십여년간은 대만의 한 교회에서 파송을 받아, 동경에서 중국인 교회를 개척하셨던 분이다. 이제 이 분들이 지난 일본 선교사 생활을 마감하고 이제 새로운 사역을 위해 대만의 파송교회로 되돌아가신다.

송선교사님 부부는 우리와 인연이 많은 분들이다. 우리 가족이 처음 일본 홋카이도에 도착해서, 막 중국어 예배를 개척하고 본격적인 중국인 사역의 첫 스타트였던 제1회 "홋카이도 중국인 수양회"에 강사로 모셨던 분들이다. 2005년 이 분들이 강사로 오셨던 수양회는 우리에게 일본에서 중국인 사역의 기대와 희망을 보게 했던 수양회였다.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왔다. 형제, 자매들이 마음이 치료되고 회복되었다. 그리고 이 분들은 부부가 함께 사역하셨다. 목사님이 명확하고 인격적인 말씀 증거를 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사모님이 부드러우면서 강한 터치가 있는 기도 인도로 사람들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다. 나는 중국인 사역자들의 이런 면이 참 좋다. 부부가 함께 조화를 이루며 모임을 인도한다. 서로 주어진 은사를 마음껏 사용하면서, 보완해 준다. 말 그대로 동역이다. 중국교회는 여성 리더쉽에 있어서 우리보다 많이 앞서 나가고 있다.  

2005년 제1회 홋카이도 중국인 수양회(송목사님 부부-중앙)
2013. 5. 동경 중국인 전도대회
2013. 12. 동경에서 송별 만남
2005년수양회 동역이 있은 후, 이 분들은 동경에서, 우리는 삿포로에서 자신의 사역에 전념했다. 2008년에 내가 동경 출장의 기회가 있어서 동경에서 한 번 뵌 적이 있긴 하지만, 거의 연락을 못드리고 지냈다. 그 후 송목사님이 심장 대수술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목사님은 심장병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몇 년을 보내셨다. 이로인해 가족들과 교회도 힘든 시기를 보내셨다.

2009년 우리 부부가 사역지를 동경으로 옮긴후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쉽게 찾아 뵙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올해 들어 중국인 연합 전도대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송선교사님 부부를 뵙게 되었다. 목사님은 여전히 겸손하시면서도 품위가 있으셨고, 사모님또한 열정적이셨다. 어려운 점들도 있어 보였다. 목사님은 몸이 많이 여위셨고 건강이 눈에 띄게 약해지셨다. 목사님은 수술 후유증을 겪고 계셨다. 그렇지만 다행히 위험한 시기를 넘기셨고 건강을 많이 회복하고 있는 중이셨다. 그리고 이 기간을 지내면서 사모님과 자녀들이 사역자로 든든히 서게 되었다.

우리는 이 대선배님들과 함께 기쁘게 2013년 5월 동경 중국인 전도대회를 섬겼다. 아픈 몸이심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열심히 겸손히 동역해 주셨는지 모른다. 나는 이런 중국인 대선배님들이 너무 좋다. 대 선배님 부부가 손수 전도대회에서 안내를 섬겨주시고, 결신자 섬김이로 봉사해 주셨다. 나이가 지긋한 대선배님이, 한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그렇게 하신다. 선교사 답고 본 받고 싶다. 대회를 전후로 아내와 함께 이 분들을 다시 찾아 뵙고 개인적인 교제와 기도의 시간도 갖을 수 있었다. 많이 배우고 도전 받고 격려 받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최근 이 분들의 일본 사역 마무리와 대만 귀국 소식을 듣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소식이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소중한 동역자요 선배 선교사님 부부 이 땅을 떠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섬기던 교회는 문을 닫고 사역을 종료하게 된다고 들었다. 우리 부부는 송선교사님 부부를 직접 찾아 뵙고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먼저는 목사님의 건강이 일본에서의 사역을 감당하기에는 버겨운 상황이었다. 이 상태로는 계속 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파송교회에서 본국에서 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역의 길을 열어주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배려가 있었다. 아쉽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감사함으로 함께 기도했다.

올해 들어와서 동경에서 함께 일하던 세 가정의 중국교회 사역자들이 떠나갔다. 지난 6월에는 사이타마의 한 중국교회의 이목사님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홋카이도에 있을 때, 수양회에 오셔서 함께 은혜를 나누었던 분이시다. 이번 동경 중국인 전도대회 때에도 참가 하시고 지지를 아끼지 않으셨던 분이시다. 아직도 이 분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박 목사님 어떤 일이든 이야기하세요! 제가 섬기겠습니다." . 대회가 끝난 후 한 달이 조금 지나 이 분의 투병 소식과 소천 소식을 들었다. 오래전 치료되었던 암이 재발했던 것이다. 장례식에 참석해 어린 수양 딸(싱글이셨다)과 노부모님을 뵙고 가슴이 너무 아펐다.

그리고 또 한 분의 동역자가 잠시 일본을 떠나게 되었다. 사랑하는 위선교사님 부부다. 우리 부부가 동경에서 연합 중국인 사역을 시작할 때, 하나님이 가장 가까이에서 동역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분이다. 중국 상해 출신으로 일본 유학 경험이 있으시고, 캐나다에 정착해서 사시다가 부르심을 좇아 일본에 선교사로 오셨다. 요도바시 교회의 중국인 예배를 책임 맡아 섬겨 오셨다. 얼마나 겸손하게 연합사역을 섬겨 오셨는지 모른다. 옆에서 이 분의 열정과 순수함, 온유함을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받아 주시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그런데 위선교사님에게 희귀성 폐질환이 발병했다. 올 초부터 오랜 기침으로 고생했는데,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는 일이 자주 발생했고, 체중이 지속적으로 줄어 드는 가운데 병원 검사를 했다. 그리고 희귀성 폐질환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암이 아니어서 천만 다행이지만, 치료를 위해서는 장기간의 시간과 안정이 요구되었다. 이제 부득불 일단 3개월간 캐나다로 귀국 하신다. 아직 적절한 약을 찾지 못해서, 앞으로 치료에 얼마나 기간이 걸릴지,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속히 완쾌 되셔서 돌아오시기만을 바라는 맘뿐이다.

2013. 5 동경 중국인 전도대회(위선교사님-상단, 사모님-아래 중앙)
재일 중국인들을 위해, 주께 더 많은 동역자를 구했는데, 있던 소중한 분들도 한 분씩 (잠시) 일본에서 떠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착찹한 심정이다. 그렇지만 한 분 한 분 직접 만나 뵙고 이야기를 나누며, 하나님의 인도하심, 허락하심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분들을 그 옛날 허드슨 테일러를 병으로 말미암아 본국 영국으로 보내, 중국 내지 선교회를 창립케 하시고 중국선교의 새로운 지도를 그리게 하신 것처럼, 인도하고 계시다는 영감을 받았다. 한 가족은 북미 캐나다에서, 또 한 가족은 대만에서, 그리고 또 한 분은 천국에서 일본에 있는 중국인들을 응원하신다고 생각하고 믿는다.

그래도 헤어짐은 여전히 "떠나는 이들에게는 마침표, 남아 있는 이들에게는 물음표"다. 남아 있는 우리들에게 아쉬운 맘은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제 다가오는 겨울도 내년 3월쯤 되면 다 지나 간다는 것을 명제적으로 알고는 있지만, 겨울의 찬 바람을 다 맛보아야만 실제로 겨울이 가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춥다.

마음을 추스리고 기도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어다. 아멘!"


2013년 12월 3일 화요일

중국인 선교 공동체(단체)를 꿈꾸며, 준비하며 ①

① 선교단체 존재의 이유, 사명(Mission)

선교단체는 사명(Mission)을 위해 탄생하고 존재한다. 

선교단체는 사명(Mission)을 위해 탄생한 곳이다. 사명이 약해지고, 그 소명이 시선에서 흐릿해진다면 존재 의미가 그만큼 약해지고 흐릿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선교단체는 늘 그 존재의 의미인 사명을 되새기고 곱씹어 주어야 한다. 이 본질에 대한 되새김이 경직화 되어서는 안된다. 절심함이 배어나오는 위기의식을 가진 본질적 소명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시대에 대한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시대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요동치는 세상의 역사속에서  면면히 흐르는 하나님의 뜻을 보고, 마음이 타오르고, 타오른 마음은 손과 발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도행전 13: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당시에" 자기 시대에, 나를 향한, 선교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를 따라 섬기다 가야 한다. 매 선교사 마다, 선교단체 마다 저마다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 이를 알고 순종하여 섬기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시대적 부르심에 관한 참고글:
http://diachinese.blogspot.jp/2010/06/%EC%9E%90%EA%B8%B0-%EC%84%B8%EB%8C%80%EC%97%90-%ED%95%98%EB%82%98%EB%8B%98%EC%9D%98-%EB%9C%BB%EC%9D%84-%EC%A2%87%EC%95%84-%EC%82%B4%EB%8B%A4%EA%B0%80.html)

자기의 의도가 아니더라도, 시대가 흐름고 변함으로 말미암아, 선교단체의 시대적 사명은 그 시효를 다할 수 있다. 선교단체는 로칼교회와 같은 부분이 있긴 하지만, 결코 동일할 수 없다. 선교단체는 로컬교회의 선교적 소명을 깨우는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요한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탄생했고, 그것을 하면서 성장해 왔다. 그런 선교단체와 로컬교회와 같아 진다면(이 의미를 여러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지만),  단체는 멋져 보일 수 있으나, 바람직하지 않다. 선교단체는 메뚜기와 석청을 먹을 때 오는 광야의 영성을 가지고 외쳐야 한다. 선교단체가 기득권 같은 것을 하나 둘 점점 더 많이 소유하게 되면, 더 이상 사명이 동력(動力)을 발휘하지 못한다.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모든 에너지를 먹어 치운다. 사명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선교회의 주제가 되고, 주류가 될 때가 위기다.

"진짜 문제는 교회가 너무 부유하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지하기 위한 버거운 투자와 함께 심히 제도화되었다는 데 있다. 그것은 공룡과 전함의 특징들을 갖고 있다. 그것이 감당할 수 없는 설비와 프로그램을 잔뜩 갖고 있어서, 공급에 온갖 문제를 안고,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게 된다. 

기계의 관성은 재정의 배당, 적법성, 조직의 채널, 마음 자세 같은 것들이 전부 다 현상유지를 지속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다. 만일 누가 이런 채널들을 가로지르는 항로로 가기를 원한다면, 적진에 도달하기도 전에 에너지 대부분이 소모되어 버린다"
         (존로빈슨 , 20세기 영국의 신약성서 학자, 이교에 물든 기독교 p 215)    

선교단체가 공룡과 전함의 특징을 갖게 되고, 설비와 프로그램을 잔뜩 갖고 현상유지를 강화하는데 힘을 쏟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선교단체 존재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협은 외부의 그 무엇이 아니라, 바로 내부에 원인이 있다. 내부적인 원인을 둘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는 선교단체가 자신의 사명을 잊어 가는 것이다. 이 경우는 여전히 그 사명이 필요하고 존재하지만, 선교단체가 그 사명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선교단체가 더 이상 사명의 힘이 아닌, 생존의 힘에 의해 관성이 붙어 자동적으로 움직여 간다. 두번째는 선교단체가 시대적 사명이 역사적 역할을 다하고 사라지는 경우다. 이 경우는 단체가 명예로운 퇴역을 할 수 있다.

사명이 잊혀지거나 없어질 때, 나타나는 위험은 선교단체가 "생존모드"로의 방향 전환을 하게 된다. 즉 선교단체를 "단체를위한(For), 단체에 의한(By), 단체의(of) " 모드가 고정된다. 이러면 추해진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광야의 세례 요한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낯뜨거운 몸부림이 시작된다.

선교단체는 이 사명으로 말미암아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도 아깝지 않는 헌신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정상이다. 선교단체가 구성원들에게 생존을 위한 밥그릇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는 존재적 타락을 한 것이다. 우리는 선교계의 거장 허드슨 테일러의 말을 다시 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중국선교의 획을 그었던 중국내지선교회(CIM)의 창립자다. CIM은 지금 OMF라는 이름으로 동아시아 선교에 있어서 맡은바 소임을 다하는 국제단체다. 그에게 CIM은 소중한 자식같은 존재였다.

"CIM동료들이 만약에 경건하고 지혜로우며, 하나됨과 사랑으로 행한다면, 중요한 일이나 결정적인 시기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분별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무엇도 선교회를 구제할 수 없고 구제할 가치도 없다. CIM은 반드시 주님과 동행하는 살아있는 공동체가 되어야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주께 쓰임받을 수 없고 존재할 가치도 없다" 
선교단체는 존재하기 위해서 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체가 싸워야 할 대상, 즉 투쟁의 대상은 좀 더 안정적으로 기득권 단체로의 진입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 아니라, 사명을 붙들기 위한 몸부림이다. 사명을 놓치지 않고, 사명을 부여잡고, 그 하늘로부터의 부르심(Calling)을 더 잘 듣고 순종하기 위해, 오히려 기득권을 버리고, 안전밸트를 풀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명은 종종 안전밸트 반대편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로부터 온 사명은 자력(磁力)과 같다. 끌어 당기는 힘이 있다. 이 사명의 자력은 원심력(遠心力)과 구심력(求心力)을 갖는다. 사람을 끌어 당기고(선교동원), 사람을 밖으로 내보낸다(파송). 자체의 힘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붙게 되어 있다. 그리고 붙을 수 있는 자력을 가진 사람만 붙어야 한다. 그래야 기존의 사명과 사람을 맞지도 않는데 억지로 붙이려고 하는데서 오는 쓸데없는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선교단체가 사명의 N극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명에 부르심이 있는 S극의 사람이 붙는다. N극, S극 중 어느 하나를 갖는 것은 하나님이 부어주신 자유요 은사다. 어느 쪽이든 비교할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그냥 맞는 곳에서 맞는 사역을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관계의 선교동원이 되어야, 잘 해봐야 0점(영점) 투쟁인 내부 분쟁을 예방할 수 있다. 선교단체 스스로가 어느 N극인지, S극인지 모른다거나, 아예 자력을 분출해내지 못하고 있다면 불행이다. 

선교단체의 생명은 "사명"이다. 시대적 사명, 하늘로부터의 사명이다.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시대적, 하늘로부터의 사명은 무엇일까? 나는 중국인 사역에 부름받았고, 이를 위해 준비되어가는 청년시절을 보냈고 지금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해외(일본필드)에서 중국인 디아스포라 사역"에 부름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 부르심은  "중국 교회의 세계 선교"를 돕는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중국교회가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로 걸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선교 지도자 그룹을 해외의 선교현장에서 만나 동원하고, 돕고, 파송하여, 장래 중국교회의 선교지도자들이 될 수 있도록 다리(Bridge)와 등대(Light House)가 되어 주는 것이다.
 (등대에 관한 참고 글:http://diachinese.blogspot.jp/2012/08/blog-post_2.html ,
   다리에 관한 참고 글:http://diachinese.blogspot.jp/2013/12/bridge.html  ). 

이제 얼마지나지 않으면 중국교회가 선교단체들을 구성할 것이다. 그리고 수 많은 선교단체들일 출현할 것이다. 우리의 소망은 그런 단체들이 조금이라도 더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합당하며, 피선교지에 축복된 사역을 할 수 있는 단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 좋은 단체들의 비율이 전체적으로 높아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려면 좋은 선교 리더들이 나와야 한다. 지난 세월의 선교 역사를 이해하고, 그 한계를 인식하고, 서구교회와 아시아 교회가 행하고 있는 선교의 약점을 넘어설 수 있는 리더들이 한 사람이라도 더 나와야 한다. 우리가 부름받은 사역은 바로 여기에 촛점이 있다.


<사족>
이 글은 시리즈 글중의 하나이며, 중국인 선교단체의 전체 스케치를 해나가는 작업을 알리는 글입니다. 여전히 진행중인 작업입니다.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다양한 의견과 코멘트를 원하고 환영합니다. 이를 통해서 함께 지어져 가는 중국선교가 되기를 원합니다. 밑에 댓글을 통해 동참해 주시면, 함께 이 일을 해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