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3일 화요일

중국인 선교 공동체(단체)를 꿈꾸며, 준비하며 ①

① 선교단체 존재의 이유, 사명(Mission)

선교단체는 사명(Mission)을 위해 탄생하고 존재한다. 

선교단체는 사명(Mission)을 위해 탄생한 곳이다. 사명이 약해지고, 그 소명이 시선에서 흐릿해진다면 존재 의미가 그만큼 약해지고 흐릿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선교단체는 늘 그 존재의 의미인 사명을 되새기고 곱씹어 주어야 한다. 이 본질에 대한 되새김이 경직화 되어서는 안된다. 절심함이 배어나오는 위기의식을 가진 본질적 소명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시대에 대한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시대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요동치는 세상의 역사속에서  면면히 흐르는 하나님의 뜻을 보고, 마음이 타오르고, 타오른 마음은 손과 발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도행전 13: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당시에" 자기 시대에, 나를 향한, 선교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를 따라 섬기다 가야 한다. 매 선교사 마다, 선교단체 마다 저마다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 이를 알고 순종하여 섬기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시대적 부르심에 관한 참고글:
http://diachinese.blogspot.jp/2010/06/%EC%9E%90%EA%B8%B0-%EC%84%B8%EB%8C%80%EC%97%90-%ED%95%98%EB%82%98%EB%8B%98%EC%9D%98-%EB%9C%BB%EC%9D%84-%EC%A2%87%EC%95%84-%EC%82%B4%EB%8B%A4%EA%B0%80.html)

자기의 의도가 아니더라도, 시대가 흐름고 변함으로 말미암아, 선교단체의 시대적 사명은 그 시효를 다할 수 있다. 선교단체는 로칼교회와 같은 부분이 있긴 하지만, 결코 동일할 수 없다. 선교단체는 로컬교회의 선교적 소명을 깨우는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요한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탄생했고, 그것을 하면서 성장해 왔다. 그런 선교단체와 로컬교회와 같아 진다면(이 의미를 여러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지만),  단체는 멋져 보일 수 있으나, 바람직하지 않다. 선교단체는 메뚜기와 석청을 먹을 때 오는 광야의 영성을 가지고 외쳐야 한다. 선교단체가 기득권 같은 것을 하나 둘 점점 더 많이 소유하게 되면, 더 이상 사명이 동력(動力)을 발휘하지 못한다.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모든 에너지를 먹어 치운다. 사명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선교회의 주제가 되고, 주류가 될 때가 위기다.

"진짜 문제는 교회가 너무 부유하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지하기 위한 버거운 투자와 함께 심히 제도화되었다는 데 있다. 그것은 공룡과 전함의 특징들을 갖고 있다. 그것이 감당할 수 없는 설비와 프로그램을 잔뜩 갖고 있어서, 공급에 온갖 문제를 안고,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게 된다. 

기계의 관성은 재정의 배당, 적법성, 조직의 채널, 마음 자세 같은 것들이 전부 다 현상유지를 지속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다. 만일 누가 이런 채널들을 가로지르는 항로로 가기를 원한다면, 적진에 도달하기도 전에 에너지 대부분이 소모되어 버린다"
         (존로빈슨 , 20세기 영국의 신약성서 학자, 이교에 물든 기독교 p 215)    

선교단체가 공룡과 전함의 특징을 갖게 되고, 설비와 프로그램을 잔뜩 갖고 현상유지를 강화하는데 힘을 쏟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선교단체 존재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협은 외부의 그 무엇이 아니라, 바로 내부에 원인이 있다. 내부적인 원인을 둘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는 선교단체가 자신의 사명을 잊어 가는 것이다. 이 경우는 여전히 그 사명이 필요하고 존재하지만, 선교단체가 그 사명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선교단체가 더 이상 사명의 힘이 아닌, 생존의 힘에 의해 관성이 붙어 자동적으로 움직여 간다. 두번째는 선교단체가 시대적 사명이 역사적 역할을 다하고 사라지는 경우다. 이 경우는 단체가 명예로운 퇴역을 할 수 있다.

사명이 잊혀지거나 없어질 때, 나타나는 위험은 선교단체가 "생존모드"로의 방향 전환을 하게 된다. 즉 선교단체를 "단체를위한(For), 단체에 의한(By), 단체의(of) " 모드가 고정된다. 이러면 추해진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광야의 세례 요한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낯뜨거운 몸부림이 시작된다.

선교단체는 이 사명으로 말미암아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도 아깝지 않는 헌신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정상이다. 선교단체가 구성원들에게 생존을 위한 밥그릇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는 존재적 타락을 한 것이다. 우리는 선교계의 거장 허드슨 테일러의 말을 다시 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중국선교의 획을 그었던 중국내지선교회(CIM)의 창립자다. CIM은 지금 OMF라는 이름으로 동아시아 선교에 있어서 맡은바 소임을 다하는 국제단체다. 그에게 CIM은 소중한 자식같은 존재였다.

"CIM동료들이 만약에 경건하고 지혜로우며, 하나됨과 사랑으로 행한다면, 중요한 일이나 결정적인 시기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분별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무엇도 선교회를 구제할 수 없고 구제할 가치도 없다. CIM은 반드시 주님과 동행하는 살아있는 공동체가 되어야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주께 쓰임받을 수 없고 존재할 가치도 없다" 
선교단체는 존재하기 위해서 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체가 싸워야 할 대상, 즉 투쟁의 대상은 좀 더 안정적으로 기득권 단체로의 진입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 아니라, 사명을 붙들기 위한 몸부림이다. 사명을 놓치지 않고, 사명을 부여잡고, 그 하늘로부터의 부르심(Calling)을 더 잘 듣고 순종하기 위해, 오히려 기득권을 버리고, 안전밸트를 풀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명은 종종 안전밸트 반대편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로부터 온 사명은 자력(磁力)과 같다. 끌어 당기는 힘이 있다. 이 사명의 자력은 원심력(遠心力)과 구심력(求心力)을 갖는다. 사람을 끌어 당기고(선교동원), 사람을 밖으로 내보낸다(파송). 자체의 힘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붙게 되어 있다. 그리고 붙을 수 있는 자력을 가진 사람만 붙어야 한다. 그래야 기존의 사명과 사람을 맞지도 않는데 억지로 붙이려고 하는데서 오는 쓸데없는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선교단체가 사명의 N극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명에 부르심이 있는 S극의 사람이 붙는다. N극, S극 중 어느 하나를 갖는 것은 하나님이 부어주신 자유요 은사다. 어느 쪽이든 비교할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그냥 맞는 곳에서 맞는 사역을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관계의 선교동원이 되어야, 잘 해봐야 0점(영점) 투쟁인 내부 분쟁을 예방할 수 있다. 선교단체 스스로가 어느 N극인지, S극인지 모른다거나, 아예 자력을 분출해내지 못하고 있다면 불행이다. 

선교단체의 생명은 "사명"이다. 시대적 사명, 하늘로부터의 사명이다.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시대적, 하늘로부터의 사명은 무엇일까? 나는 중국인 사역에 부름받았고, 이를 위해 준비되어가는 청년시절을 보냈고 지금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해외(일본필드)에서 중국인 디아스포라 사역"에 부름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 부르심은  "중국 교회의 세계 선교"를 돕는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중국교회가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로 걸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선교 지도자 그룹을 해외의 선교현장에서 만나 동원하고, 돕고, 파송하여, 장래 중국교회의 선교지도자들이 될 수 있도록 다리(Bridge)와 등대(Light House)가 되어 주는 것이다.
 (등대에 관한 참고 글:http://diachinese.blogspot.jp/2012/08/blog-post_2.html ,
   다리에 관한 참고 글:http://diachinese.blogspot.jp/2013/12/bridge.html  ). 

이제 얼마지나지 않으면 중국교회가 선교단체들을 구성할 것이다. 그리고 수 많은 선교단체들일 출현할 것이다. 우리의 소망은 그런 단체들이 조금이라도 더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합당하며, 피선교지에 축복된 사역을 할 수 있는 단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 좋은 단체들의 비율이 전체적으로 높아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려면 좋은 선교 리더들이 나와야 한다. 지난 세월의 선교 역사를 이해하고, 그 한계를 인식하고, 서구교회와 아시아 교회가 행하고 있는 선교의 약점을 넘어설 수 있는 리더들이 한 사람이라도 더 나와야 한다. 우리가 부름받은 사역은 바로 여기에 촛점이 있다.


<사족>
이 글은 시리즈 글중의 하나이며, 중국인 선교단체의 전체 스케치를 해나가는 작업을 알리는 글입니다. 여전히 진행중인 작업입니다.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다양한 의견과 코멘트를 원하고 환영합니다. 이를 통해서 함께 지어져 가는 중국선교가 되기를 원합니다. 밑에 댓글을 통해 동참해 주시면, 함께 이 일을 해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샬롬!

댓글 2개:

  1. 일본의 디아스포라 중국인들이 뜨거운 마음으로 선교를 향하여 내딛는 발걸음을 보며 도전을 받고, 이 글을 통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직은 도움이 더 많이 필요한 아프리카의 중국인교회가 또한 잘 세워져 함께 세계선교를 감당할 날들을 소망할 때에 지금 다리와 등대로써 서 있는 선교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한 번 실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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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답신 고맙습니다. 아프리카 이야기기 궁금해집니다. 잘 지내시지요! 그 곳 이야기, 사람들 이야기, 하나님의 이야기 기회되면 들려주세요! 원래는 저는 금년 10월 방문 계획이 있었는데, OMF Dispora Team 팀장의 건강 이상으로 전체 일정이 일단 연기 되었습니다. 내년에 한 번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건강하게 잘 감당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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