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는 등대(燈臺)다.
- 선교사란 누구인가? 에 대한 첫 번째 대답
- 선교사란 누구인가? 에 대한 두 번째 대답은 이곳에(http://www.blogger.com/blogger.g?blogID=8449156411065876033#editor/target=post;postID=4941769777601447219;onPublishedMenu=posts;onClosedMenu=posts;postNum=1;src=postname)
내가 생각하는 선교사는 이런 사람이다.
- 선교사란 누구인가? 에 대한 첫 번째 대답
- 선교사란 누구인가? 에 대한 두 번째 대답은 이곳에(http://www.blogger.com/blogger.g?blogID=8449156411065876033#editor/target=post;postID=4941769777601447219;onPublishedMenu=posts;onClosedMenu=posts;postNum=1;src=postname)
내가 생각하는 선교사는 이런 사람이다.
선교사는 존재가 메시지(Message)가 되는 사람이다.
그가 그곳에 존재함으로 존재가 드러내는(보여지게 되는) 메시지가 있다.
이 메시지는 입술의 말로, 주장의 논리로 드러나는 그런 메시지가 아니다.
그가 그 자리에 서 있음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그런 파장과 같은 메시지다.
공간적 존재로서의 메시지
이는 마치 등대와 같다.
등대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등대가 자리잡은 위치와 환히 빛나는 빛이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선상의 빛나는 등대의 빛은 바다의 길을 보여주고, 수 많은 배들의 무사 운항과귀환을 지켜준다. 등대는 육지와 바다의 경계선상에 위치한다. 육지의 끝이나 육지에 가까운 암초같은 섬들 위에 존재한다. 외롭고 고독한 곳이지만 그런 곳에 있어야 등대로서의 가치가 있다. 등대가 거기 그렇게 서 있음으로, 존재함으로 메시지가 있는 것이다. 등대의 크기, 설비, 기술 능력..... 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중요할 수 있겠지만, 그런 것들은 본질이 아니다. 등대는 지리적 위치가 가지는 중대한 메시지가 있다. 등대가 자리잡은 그 바다와 육지의 경계선 그 자체가 등대 존재의 메시지다.
선교사는 선교주체 세력이라는 육지와 피선교 세력이라는 바다의 경계선상에 서 있는 등대다. 이 경계선을 넘어 바다로 나가면, 바다가 알아서 할 일이고, 한 발 뒤로 물러나 육지로 들어가면 육지가 알아서 할 일이다. 등대같은 선교사는 절묘한 그 경계선상에 있기에 위치로서의 메시지를 지니는 것이다. 육지(선교주체 세력)의 설비, 자원, 인력을 지원 받지만, 그것으로 바다(피선교 세력)를 비추는 것이다. 등대처럼 선교사는 바다의 길을 보여주고, 바다와 육지 사이를 오가는 수 많은 선교라는 배들의 안전 운항과 귀환을 돕는다.
그래서 선교사는 존재의 메시지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선교사가 지니는 존재의 메시지는 선각자적인 메시지가 될 수 밖에 없다. 육지의 맨 앞에 서 있어야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선교사에게는 그 무엇보다 선지자적인 역할, 선각자적인 역할이 비중있게 주어지는 것이다. 현지인보다 더 잘 하고, 더 많이 하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아직 못 본 것을 보고, 경험하지 못한 것을 느끼고, 내일 저 너머의 것들을 향해 빛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자기의 눈으로 직접 넓고 환하게 볼 수 있도록 등대의 빛을 비추어야 한다. 피선교지 세력의 배들이 그 넓은 바다를 항해해 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모진 풍파를 견디어 내며, 그 자리를 지켜내는 등대처럼, 자리를 지켜낼 뿐 아니라, 빛을 비추는 등대처럼 빛(Message)으로 바다를 비추어 내야한다.
왜 그래야 하나? 우리는 바다와 육지의 경계에 서 있는 등대니까. 바다를 비추어 주어야 하니까! 그래서 등대를 거기에 세운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 선교사들을 거기에 두셨음을 믿는다. 등대를 폼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어찌 등대가 눈 앞이 길만 비추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같을 수 있겠는가? 어찌 등대가 화려한 한 여름밤의 불꽃놀이 불꽃 같을 수 있겠는가? 화려함이 없어도, 태양처럼 강력하지 못해도, 오늘도 내일도 모래도, 밤 마다 성실하게 불을 밝히고 육지와 바라의 경계를 비추어야 한다.
바다를 해쳐나가는 것은 배들의 몫이다. 등대는 그들의 등 뒤에서 말없이 그러나 신실하게 선각자적(先覺者的)인 시야(視野)를 가지고 힘차게 비추어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험한 바다를 향하는 배들에 대한 예의요 배려이며 응원이다.
나는 한국선교, 일본선교, 서양선교, 그리고 세계선교와 중국선교가 교차하는 지대에 서 있는 작은등대다. 서양선교가 석양처럼 저물어 가는 이 시점에, 동양선교가 어떻게 "함께"라는 "선단(船團)"을 만들어 "세계선교"라는 우리에게 주어진 "대양(大洋)"을 잘 항해해 나갈수 있도록 빛을 비추어 나갈 것인가? 그것이 내게 주어진 지금 여기서의 "공간적 존재로서의 메시지"다. 이제 대양(大洋)을 향해 나가는 이들에게, 나는 어떻게 좀 더 예의로우며 사려 깊고 힘찬 응원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 주님 긍휼을 베푸소서!
삶의 존재로서의 메시지
등대는 빛을 비추어야 한다. 불꺼진 등대는 더 이상 등대가 아니다. 선교사라는 등대는 어떤 빛을 비추어야 할까? 삶의 존재로서의 메시지라는 빛을 비추어야 한다. 그냥 그가 거기서 살아감 자체가 메시지가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긴 장마 끝에 해가 나면, 해 자체가 뭐라 설명안해도 강력하게 부어주는 축복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구름으로 가득찬 날과 다른 것들이다. 삶의 존재로서의 메시지를 지닌 분들이 딱 그렇다. 그가 존재함이 현지인에게는 따스하고 환한 햇빛 같다. 긴 항해가운데, 반갑게 육지의 존재를 알려주는 등대처럼 든든하고 반갑고 고맙다. 등대처럼 그냥 그 자리에 있기만 해도 말이다.
삶의 존재로서의 메시지는, 그가 지닌 능력과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현지어를 무지무지 잘 하는 선교사도 만나봤고, 정말 현지어를 못하는 선교사도 만나봤다. 그런데 현지어를 잘 못하는 분들 가운데도, 현지인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선하고 강한 영향력을 미치며 살아가는 분들을 보았다. 그분들 안에는 그 무엇으로도 바꿀수 없는 존재로서의 메시지가 있었다. 인격이라고 할까? 예수님을 닮음이라고 할까?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라고 할까? 예수의 흔적이라 할까? 그런 것이다.
더욱 더 내가 무슨 메시지에 집중해야 하는가? 명확해진다. 삶의 존재로서의 메시지, 공간적 존재로서의 메시지를 지닌 등대같은 선교사가 되는 것이다. 주님의 긍휼을 구한다.
목사님의 존재가 동경 땅 가운데 너무나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음을 봅니다. 화이팅이요!!
답글삭제저희는 그저 동경 땅 몇 평 비추는 작은 등대일뿐입니다. 격려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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