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31일 목요일

일본 토후쿠(東北) 대지진 피해 현장을 다녀와서

지난 3월27일(주일오후)부터 3월30일(오후6시30분)까지 요도바시교회(일본인 교회)의 AGAPE-CGN 팀과 함께 토후쿠 대지진 피해 현장을 다녀왔다. 이번 구호활동의 주목적은 피해지역에 대한 구호품 전달이었다. 그렇지만, 구호품 전달뿐만 아니라, 피해 현장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 피해 지역 구호활동에 대한 현장의 필요 파악, 그리고 일본교회의 구호 활동에 대한 협력과 이해 등을 경험하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이곳에 임한 총체적인 재난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번 구호활동을 통해서, 앞으로 어떻게 동북의 재난지역을 도와야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3/27, 주일, 출발과 도착

이번 팀은 AGAPE-CGN의 제2진이었다. 이미 3/20-24일 제1진이 사역을 마쳤고, 이를 필두로 매주 주일 오후 새로운 팀이 현장으로 가서 현장을 돕고, 그 주 목요일에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는 4박5일의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이번 팀은 3/27일 주일 오후 3시30분에 출발해, 저녁 10시가 다 되어서 목적지인 센다이(仙台) 시오가마(塩釜)에 토모시비 채풀(교회)에 도착했다. 고속도로를 내내 달려야 하는 먼 길이었다. 차 안에서 산 너머로 저녁노울이 아름답게 지는 모습이 보였다. 저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산과 저녁 놀이 보이는데, 그 모든 곳에 방사능으로 뒤덮혀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우리 팀도 이런 관계로 긴장이 역력했다.

차안에서 이번 봉사와 리서치에 임하면서 몇 가지 기도제목을 정리하여 fb에 올렸다.
나의 이번 구호활동에 대한 기도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1. 아버지의 마음으로 보고 느끼게 하소서!
  2. 그들과 같이 아퍼하고 같이 희망을 보게 하소서!
  3. 예수님처럼 썩는 밀알로 섬기게 하소서(손, 발을 부지런히 움직여서)

출발 예배 -앞에 서신분들이 차량 운전자들


쓰나미 피해에 대한 1차 통계

이번 팀은 총 10명이다. 팀장은 제1진을 이끌었던 나카무라 센세(요도바시 교회 부목사), 그 외에 특이한 상항은 두 명의 중학생이 자원 봉사자로 동참한 것이다. 야마우치(중2), 요네이(중3)인데, 대단하다고 칭찬 많이 해주었다. 그리고 너희들 보다 너희 부모님들이 더 대단하다고 했다. 다들 방사능 피해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가려고 하는데, 너희들은 오히려 북쪽으로 간다. 뭐 특별한 이유가 있니? 물으니 대답 간단하다. "그냥 해야 할 일이라고 느껴서요! 센다이에 친구가 살아서! 같은 일본이니까요".그리고 활동 내내 느꼈던 것인데, 이 청소년들이 팀을 밝고 힘있고 재미있게 만들어 주었다. 어떤 가운데서도 별로 심각하지 않고 장난 끼 많은 이들의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 긴장을 녹일수 있는 웃음을 많이 주었다.

그리고 유치원 원장인 카토상, 4톤 트럭 운전자인 아오야마상(그는 하루 휴가를 얻어, 자기 트럭을 몰고 센다이까지 달려왔다 일을 돕고 그날 동경으로 돌아갔다), 여자 목사님이신 이치카와 센세이, 그리고 마타요시 센세이(이 두분이 한정된 재료로 맛있는 식사를 섬겨주셨다), 순수한 미네노 센세이, 듬직한 청년 오노상, 모두가 같이 며칠을 지내면서 정이 많이 들었다. 특히, 이런 특수한 상황 속에, 극도의 긴장된 환경 속에서의 함께 함은 우리에게 특별한 동질감을 만들어 주었다. 삼일쯤 되자 안마도 해주고, 자기 얘기도 많이 하고, 저녁에 유도, 레스링도 하고, 이런 저런 교제가 있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일본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다. 삿포로 국제교회를 떠난후 근 2년반 동안 누리지 못했던 일본 그리스도인과의 좋은 교제의 시간이었다. 이들을 만나서 함께한 것은 축복이었다.

요시네, 야마우치
아오야마상

3/28, 월요일, 구호품을 정리, 분리, 발송준비, 숙소근처 가호 방문, & 센다이항 방문

오전, 그리고 오후 내내 두 대의 트럭과 두 대의 밴에 싣고 온 물건을 내리고, 분류하고, 배송할 세 지역으로 나누고 하는 일을 했다. 오랜만에 해보는 육체 노동이었다. 하루 종일, 계속해서 구호품 박스를 내리고 쌓고, 옮기고, 정리한다.구호사역은 사실 노동(노가다)사역이다. 체력으로 하는 사역이다. 삼 일 내내, 나르고, 옮기고, 차 타고 이동하고 구호품 전달하고 그랬다. 다행히 가장 젊은 중학생 친구들이 힘을 많이 써 주고, 나도 힘을 다해서 손을 도왔다. 이번 사역의 기도 제목 중에서 하나가 손, 발을 열심히 사용해서 썩는 밀알처럼 섬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했다. 기뻤다. 나도 노동으로 쓰임 받는 날이 다 있구나! 팀원 중에 몸을 아끼거나 뒤로 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다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노동했다. 참 고마운 멤버들이다.




구호품 정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잠시 숨을 돌린 뒤, 일부 구호품을 비닐 주머니에 하나 하나 담고 거기에 예수마을에서 온 격려 카드를 한 장씩 넣어서 숙소(토모시비 채플) 근처의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100% 전달 성공! 일본에서 가호 방문해서 뭔가 주는데 100%  전달 성공은 처음이다.토모시비 채플의 담임목사님 사모님이 격려 카드 많이 강조하심이 잘 먹힌듯 !

처음에는 몰랐는데, 도착 이틀날 토모시비 교회의 노리꼬 사모님은 한국어가 아주 능숙한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연히 지나가다가 사모님이 한국말 한 마디를 하셨는데, 나는 그 말이 너무 완벽한 한국말이라 내가 피곤해서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이 시골에서 이 난리 와중에 한국말이 능숙한 일본인 사모님?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노리꼬 사모님은 아버님이 한국에서 30년째 서울 일본인 교회를 담임하시는 요시다 센세의 장녀로, 한국에서 자라나고 한국의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오신 분이었다. 이 분의 능숙한 한국어로 현지 상황을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후 늦게 쓰나미 피해가 컸던 센다이항으로 향했다. 센다이항에서 보여진 모습은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도저히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센다이항은 내가 2년전에 홋카이도 토마코마이로 가는 페리호를 탔던 곳이다. 아름답고 세련되고 현대화된 항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그 항구가 거대한 폐차장, 거대한 재난 영화의 셋트장처럼 쓰나미에 할켜져 있었다. 현지 목사님의 말처럼 도무지 실제있었던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무서운 재난의 현장이었다.






3/29, 화요일, 이시노마키(石巻) 노인센타에 구호품 전달, 
        그리고 쓰나미 재난 지역 방문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6시30분 기상, 아침 예배, 아침 식사, 그리고 구호품 집하장으로 이동, 트럭 한대, 밴 두대에 1차분 짐을 가득 싣고, 바로 이시노마키로 출발이다. 지금 현장에서 가장 힘든 것은 차의 기름을 구하는 일이다. 현재 센다이 지역과 그 인근은 휘발유 구하기 전쟁이다. 현지 목사님은 그제 8시간 기다려서 차에 기름을 넣어다고 하셨다. 지진으로 유통이 무너지고 대중교통망이 마비되면서 사람들이 자기 차로 더 많이 움직이게 되었다. 그런 반면 주유소는 공급물량이 대폭 줄었다. 그래서 휘발유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 다행히 구호차량 가운데 긴급차량 마크가 있는 경우, 주유 우선권이 있어서, 우리 팀은 이동에 필요한 휘발유를 구할 수 있었다.

차는 센다이에서 50분쯤 달려서 이번 쓰나미 피해지역 중 하나인 이시노마키(石巻市)에 도착했다. 이시노마키는 인구 16만명의 큰 시인데, 지역의 13%, 즉 73km 가 쓰나미에 피해를 입고 물에 잠겼다. 시의 모든 상가는 문을 닫았고, 당장 생필품 공급이 어렵운 상황이다. 우리는 이 지역의 지역교회인 이시노미나토 교회를 통해 지역 노인센타에 구호품 1차분을 전달했다. 알고보니 이시노미나토 교회의 마사오 목사님은 재일교포 3세였다. 지역 노인센타에는 시립병원이 쓰나미피해로 폐쇄된 이후 이동되어서 온 노인환자들, 그리고 기존의 노인들이 있었다. 그런데 노인센타는 이 많은 사람들을 매일 매일 먹이고 케어할 힘이 부족했다. 현지의 많은 차량들이 쓰나미로 파괴되었고, 휘발유를 구할 수 없어서 구호품이 꼭 필요한 곳까지 전달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필요한 곳에 구호품이 전달되 감사하다.

센다이 시오가마에서 이시노마키 이동경로
이시노 마키 노인센타 구호품 전달
한국구호품, 위로 카드 전달

구호품 1차분 전달을 마치고 이시노미나토 교회로 이동해서 자체 준비한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구호팀 식사는 언제나 인스탄트 식품이다. 조리할 시간, 물, 전기가 부족하고, 현지 분들께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한 방법이다. 이번 며칠간 일본의 각종 통조림과 인스탄트 식품을 먹어보는 경험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각종 오니기리(주먹밥)도 만들어 먹고 있다. 그런데 참 맛있었다. 일을 하고, 보람도 있고, 같이 먹는 사람도 많으니 식사 시간이 즐겁고 소화도 잘 되었다. 아주 간다하고 신속하게 먹으니 시간도 많이 절약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팀은 바로 내일 전달할 2차 구호품 배송지와 현장 상황을 체크하러 떠났다. 피해지의 필요가 날마다 바뀌기 때문에 적절한 대처를 못하면 정성껏 이곳까지 가지고 온 소중한 구호품이 별 쓸모 없는 물품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현장 체크를 하는 것이다. 꼭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물품이 전달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시노마키에서 오나카와시로 향했다. 가는 길 양 옆으로 쓰나미 피해현장이 계속해서 펼쳐졌다. 모든 곳이 폐허였다. 그 폐허 한 가운데 한 폐쇄된 편이점 앞에 차가 멈추었다. 편의점 앞에 넓은 주차장에 임시 배급소가 차려져 있었다. 아직 집이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 혹은 피난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 자기 집에 남아 있는데 그들에게 구호품을 공급하는 곳이다. 자위대의 물차, 트럭이 자리 잡고 구호품을 나눠주고 있었다. 21세기 일본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시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고, 외부에서 물자공급, 전기 수도 공급이 안되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구호품 외에는 살아갈 방법이 없다. 우리 팀도 내일 이곳에서 구호품을 직접 나누어줄 예정이다. 이 곳은 아사이가우라(旭ケ浦)라는 지역인데, 당분간 지속적인 구호품 지원이 필요한 지역이다.


잠시 구호품 배급 현장을 체크하고, 차량은 다시 오나카와시로 향했다. 오나카와시(女川町)는 인구 1만명의 작고 조용한 시골 어촌이었다. 풍경도 아름답고, 물고기가 맛이 있어 사람들이 가끔 여행으로 찾는 그런 마을이었다. 그런 마을이 쓰나미로 3km2, 시의 4% 가 침수되었다. 침수된 4% 지역은 피해정도가 심했다. 마치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는 폭격 맞은 마을 같았다. 17m의 쓰나미가 좁은 호리병 처럼 된 만으로 밀려 들어오면서, 양 옆의 산과 만나면서 산과 산사이 계곡에 자리 잡은 마을을 푹탄같은 힘으로 할키고 지나갔다. 한 20여미터되는 산 위에 오나카와병원이 있는데, 그 병원의 1층까지 바다 물이 밀려 들어 왔다고 한다. 병원은 폐허의 바다위에 떠 있는 작은 섬 같았다. 전기, 수도, 가스 모든 공급이 차단되었다. 지원물자가 병원까지 수송이 안되, 개개인 봉사자들이 차로 실어다 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날마다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일로 비상 상태였다. 오나카와는 가장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는 듯 하다. 센다이의 경우 조금씩 정리되고 있음이 보였는데, 오나카와는 거의 손도 못 대고 있었다. 이제 인명구조 작업을과 차량 통행을 위한 길 정리만 겨우 마친 상태였다. 복구까지는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지금 오나카와는 긴급물자 공급, 청소와 정리를 위한 자원봉사 인력 지원, 물자보급을 위한 차량 봉사 등이 긴급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병원물자 공급
        
실종자를 찾는 모습




팀은 오나카와 병원을 빠져나와 다시 이시노마키, 그리고 히가시마츠시마(東松山市)로 갔다. 일반국도를 타고가는 이 길은 주변이 다 쓰나미 피해 현장이었다. 목적지는 히가시마츠시의 피난소인 히가스마츠시마 커뮤니티센타다.



히가시마츠시마(東松山市) 역시 쓰나미의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피해지역 36 km2, 시 전체의 37% 지역이 침수됐다.인구 42000 여명의 시가 힘든 상황 가운데 있었다. 팀이 방문한 피한소에는 200여명의 피난민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피난소의 필요를 살펴보았다. 이 곳 피난소의 경우 어렵긴 하지만, 생필품이 공급되고 있고, 이곳까지는 물자유통이 아직 살아 있었다. 히사시마츠시마 커뮤니티센타 피난소의 경우 물자공급보다는 피난소 주민들을 위로하고 힘을 주는 그런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봉사가 더욱 요긴할 것 같다.

우리 팀은 이곳에서 반가운 다른 팀을 만났다. 바로 한국인 물리치료사(마사지 치료)로 구성된 구호팀을 만난 것이다. 6명으로 구성된 이 팀은 동경에서 물리치료사 일을 하는 분들 중에서, 뜻 있는 분들(그리스도인 + 비그리스도인)이 자원해서 구성한 팀이었다. 일명 마사지팀은 피난소에서 대환영을 받았다. 두 주간 지진과 쓰나미의 위협으로 초긴장 상태에 있는 그들에게, 마사지를 통해 그들의 경직된 몸과 마음을 많이 풀어주었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가슴 뿌듯한 순간이었다.


팀은 히사시마츠시마 피난소의 필요를 살핀 후, 곧 바로 전체 구호품이 보관된 시오가마의 교회로 향했다. 다시 내일 배송할 구호품을 차에 쟁기고, 숙소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했다.

오늘은 내가 팀과 같이 하는 마지막 날, 삼일을 같이 지내자 팀원들 간에 정이 많이 들었다. 사람들이 장난도 많아졌다. 팀원들 끼리 반 장난의 유도도 벌어지고, 대화도 많아졌다. 저녁에는 중학생 3년생 요네이가 내게 안마도 해주었다. 지진이 많은 사람들과 헤어지게 했지만, 동시에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지진이 아니었다면 평생 만나지 못할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선한 섭리가 느껴지고 이제 후로 더 있게 될 그들과의 교제가 기대된다.


나카무라 센세이와 요네이의 유도 한 판

3/30, 수요일 후쿠시마(福島市) 고오리야마(郡山市)를 거쳐 동경으로 돌아오다.

오늘은 동경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팀원들은 하루 더 일정을 갖게 되고, 나는 이런 저런 일이 있어서 동경으로 하루 먼저 동경으로 오게 되었다. 나는 일이 있어 29일(화요일)에 돌아 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하루라도 좀 더 돕고 싶은 마음도 있고, 마침 30일에 돌아갈 수 있는 교통편도 생겨서 하루 더 있을 수 있었다. 30일 아침, 아쉬운 맘을 뒤로하고 정들었던 사람들과 헤어져 동경으로오는 마사지 치료 팀의 차량에 합류했다. 헤어질 때, 오노상(청년)이 해준 "다시 함께 일할 수 있는 날 기대합니다." 라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30일, 오전 9시30분에 센다이의 시오가와를 출발해서, 먼저 후크시마시(福島市)로 향했다. 후크시마시에 장인댁이 있는 한 자원봉사를 내려주기 위해서였다. 후크시마시는 방사능 누출 사고가 있는 원자력 발전소로 부터 50km 떨어진 도시다. 그 어떤 지역보다 방사능 오염이 걱정되는 도시다. 그렇지만, 도시는 생각보다 평온하고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왠만한 가계들도 다 영업을 하고 있었고, 사람들도 생활하고 있었다. 눈에 뜨이는 도시 공동화나 주민 탈출이 보이지는 않았다.

후쿠시마시 자체는 이번 지진과 쓰나미 피해가 그렇게 심하지 않은 편이지만, 원전사고로 인해서 앞날이 아주 어두운 시가 되었다. 후쿠시마는 원래 사과, 복숭아, 쌀 등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지역이었다. 그렇기때문에 원자력 발전소를 유치해서 정부지원을 많이 받았던 것이다. 그런 곳에 방사능 누출 사고가 생겨서 그나마 지역경제를 유지했던 농업은 앞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원전폐쇄가 결정되었음으로 원전사업이 가져다 주는 원전경제도 이젠 더 이상 기댈 수 없게 되었다. 어려운 시기에는 가난한 사람들, 가난한 지방은 더욱 곤경에 처하게 된다.



후크시마를 떠나 우리는 우리중 한 봉사자가 운영하는 가계가 있는 후쿠시마 가까운 고오리야마(郡山市)로 향했다. 이분의 가계는 지진으로 내부 시설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깨지고 쓰러진 것들을 치우고, 늦은 점심을 먹은 우리는 동경으로 향했다. 오후 6:00분쯤 동경에 도착한 후 전철로 집으로 돌아왔다. 지진과 쓰나미 피해가 심했던 동북지역에서 동경으로 오니, 동경이 당한 어려움은 상대적으로 그렇게 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 가솔린, 생필품 구입자체가 어려운 지역들, 아예 하루 하루 생계 자체가 어려운 지역들, 모든 것이 날아간 허탈한 곳에서 힘겹게 피난소의 삶을 이어가는 이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긴장된 삼일간의 봉사를 마치고 동경으로 돌아오자 긴장이 풀리면서 오는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왔다.




일본 대지진 피해현장 봉사를 마치면서

이번 봉사는 내게 다음과 같은 것들을 알게 해주었다.

첫째, 인간의 문명의 무력감, 죽음의 현실성이다. 인간이라는 존재, 그리고 우리가 만든 문명이라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모래위에 지은 성과 같다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 일본은 그 어떤 나라보다 지진, 쓰나미 대비가 철저했던 나라다. 세계 최고의 쓰나미 경보 시스템을 동네마다 갖춘 나라이며, 평소 쓰나미 대피 훈련도 철저한 나라다. 그리고 일본은 엄청난 재정을 쏟아부어 재난을 대비했다. 그중 한 지역은 쓰나미에 대비해서 높이 10m의 시멘트 방조벽 2km를, 30년에 걸쳐서 완공해 놓았다. 그러나 그것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인간의 생명, 인간이 가진 기술, 문명, 시스템, 자랑들이, 단 몇 분의 지진 앞에 모두 무너져 내렸다. 우리가 자랑하던 모든 문명이라는 것이, 한순간에 보기 흉칙하고, 냄새나고, 거추장스럽고, 무섭기까지한 쓰레기더미가 되어버렸다. 일순간 거대한 쓰레기가 되버릴 수 있는 것들이, 바로 우리가 날마다 딛고 서있는, 그렇게 자랑하는 현대문명이라는 것이다. 나는 내가 누리고 즐거워하고 언제까지나 발전할줄로 알았던 것들이 다 모래성이라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죽음의 현재성을 보게 되었다. 쓰나미 피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죽음이 단 몇 초간 사이에 갈려졌다. 든든하게 믿고 지냈던 일상의 삶이 한 순간에 죽음의 바다가 되었다. 우리 인간에게 죽음은 가장 정확한 현실이며,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림자다. 생명과 죽음은 그야말로 백지장 한 장 사이였다.

둘째, 이번 땅(지진)과 바다(쓰나미)와 하늘(방사능)에 임한 재난의 땅과 백성에 대한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쓰나미로 할퀴어진 대지처럼 할퀴어지고, 부서지고 두 동간 난 집들처럼 두 동강나고, 만신창이되버린 저 차들처럼 되버렸다. 이 땅과 이 백성을 보시며 하나님은 그런 마음으로 울고 계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아직 좌우를 분별할 수 없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서 고통하신다.(요나서4:11) 그들에 향한 타는 듯한 긍휼(Compassion)을 갖고 계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시는 아들을 주시지 않았는가? 대지진이 있은지 며칠이 지난 후 한 선교사 친구로부터 그의 아주 일상적인 기도편지를 받았다. 친구는 지금 파푸아뉴기니에서 성경번역선교사로 일한다. 그의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얼마 전에 일본에서 큰 해일과 지진이 있던 날 저녁 밤, 그 여파로 이곳에서도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큰 비가 내렸습니다. 전기가 끊어짐과 동시에 창을 때리는 천둥 번개소리에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다행이 아이들은 깊이 잠이 들었기에 무서움을 모르고 지나 갔지만 다음 날 와스파파로부터 마을의 몇몇 집이 쓰러졌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이 편지를 받고, 하나님이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마치 요셉이 형들을 피해서 운 것처럼) 울고 계셨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 천국에 이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외침, 울음은 하늘을 가르고, 땅을 진동했던 것이다. 그분의 울음은 큰 비가 되어 이 땅 어딘가를 적시고 있었던 것이다. 그분의 울움은 들리는 자에게는 심장이 터질 듯하게 만드는 울음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곳에서 눈앞의 우리 자신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눈과 귀가 가려서 아무 것도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 곳에서 울고 계셨다. 내게 보여진 동북지역의 지진과 쓰나미 재난피해의 현장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 찢겨지고 상한 마음이 드러난 현장이었다.


셋째, 그들 가운데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에 대한 희망이다. 희망은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의 희망은 이 때에 그 분이 세우는 사람들을 통해서 보여진다. 위험이 있는 곳이지만, 몸사리지 않고 달려와 힘을 다해  온 야마우치, 요네이 두 명의 중학생, 생업을 뒤로 하고 자신의 4톤 트럭을 몰고 온 트럭 운전사 아오야마 상, 트럭이라도 운전해주려고 달려온 유치원 원장님 카토상, 10일간이나 비지니스를 제쳐두고 저 먼 나고야에서 달려와 힘에 지나도록 섬긴 다케시 콘도상, 자신의 생명의 위협 가운데도 주변 사람들을 탈출을 돕고는 정작 자신은 3일 간 물 한가운데 갇혀 있다가 자위대 헬기로 구조된 미야기세이쇼우 교회의 다나카 목사님, 자기에게 온 구호품용 물 두 박스를 조용히 다른 피난민용으로 내놓고 자신과 가족은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있는 수도물을 그냥 사용하시는 한 목사님...... 하나님은 이들 가운데 이미 계셨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일본 가운데, 일본의 교회 가운데, 일본의 형제, 자매들 가운데 행하고 계신, 새 일에 대한 희망을 보게 하셨다. 이제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일이 일어날 것이다. 아멘!

넷째, 이제 우리가 어떻게 이 땅과 이 사람들을 도울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구력 있는 사랑의 실천"이다. 이번 지진의 피해는 넓고 깊이 이 땅가운데 새겨졌다. 최소한 10년의 세월이 지나야 이 상처가 회복될 것이다. 바로 그 긴 10년의 시간은 사랑을 나누고, 아픔을 보듬고 가야 할 시간이다. 우리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은 매우 신속하게 지진피해 현장에 도움의 손길을 주고 있다. 이 순발력은 이제 지구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지구력을 가지고 함께 가야 한다. 추측컨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앞으로도 한 달에서 두 달은 구호품 전달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앞으로 이 일은 일본정부가 상당부분 담당할 것이다. 그리고 느리긴 하지만, 피해지역에 도로복구, 전기,수도,가스복구가 이루어져 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지역이 구호품 보다는 "돕는 일손"을 필요로 할 것이다. 차량을 가지고 와서 스스로 먹고 자는 문제, 차량 휘발유 문제를 해결하면서, 폐허더미를 치우고, 집을 짓고, 같이 땀을 흘려 일해 줄 사람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정신적인 케어부분에 도움을 줄 사람이 필요하다. 지금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느라 이미 받은 충격을 느끼지도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지진과 쓰나미의 쇼크, 자신의 골육친척 가족을 잃은 고통으로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게 될 것이다. 이들에게 새로운 가족들, 친구들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누리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이다. 그리고 그 새롭게 재건되는 지역에 사랑의 가족 공동체가 세워지도록 돕고 지원해야 한다. 이것이 일본을 새롭게 하는 풀뿌리가 될 것이다.




日本大地震后已经经过了一周

日本大地震后已经经过了一周,Salom!平安!我是东京的朴树民。大家都还好吗?我在这里度过了真正平安的一周,体会了从神而来的沙龙。

正如各位同工所知311日下午246分在日本东北地区发生了日本历史上最强,震级为90的地震。此次地震一起了超过15米的海啸、其后还有多次的余震、并导致了核能电站的核泄漏。
所谓的「地震、海啸、核泄漏」三大灾害在同一时间发生了。

今天319日、已有 6900人死亡、 10,354人失踪。 50万以上的人在避难当中。而确定的死亡人数每天都在增加当中。若失踪人口被确认为已死亡,死亡人数将达到2万人以上。
这次大地震是日本战后经历的最大灾难。人们每天生活在核能泄露和每天34次余震的恐怖当中。
现在,东京的外国人都急于离开日本。在入管局的办公室,拥挤着申请再入国许可的外国人,办公处于胶着状态。317日去机场送朋友的时候,机场如同菜市场般混杂。甚至有人为了第一时间买到机票带着睡袋在机场等待。机票票价上涨了4-5倍。很多国家都把本国的在日职员和家属带领回国。我们日暮里华人教会也有4-5人的弟兄姐妹回国。

已有一部分的东京人向南方撤离。在我女儿喜珠的班级已有23人离开东京。但是,虽然大部分的东京人表现比较镇定,心里还是害怕余震和核泄漏。表面虽然平静,没有人知道什么时候会崩溃。

因惧怕核辐射、大家都计量避免外出,在家时也禁止使用换气扇,外出时佩戴口罩。虽大部分的职场都已恢复正常工作,食品、汽油却严格的限量供应。大部分商店的大米、面包、水等日常食品都被抢购一空。大家为避免核辐射,大量购买食品备用。

现在、东京23(东京市内)、的供电、煤气、自来水、网络的连接还在正常运作当中。邮政服务也没有问题。但是因为计划停电的原因,地铁的运行非常不便,有一部分的道路完全无法使用。且因不知什么时候会停水电,为确保生活使用水,不得不储存水。

在过去的一周,地震和核电站核泄漏的消息极其所造成的震惊席卷了东京。原先东北地区的人所面临的问题,已无法再隔岸观火。恐惧震惊慢慢 的蔓延到东京。东京的住民也担心自己会不会遭遇到东北地区人们的困境。

我们带着各样的祷告在主面前呼求祷告,度过了一周。每当夜晚余震的袭击更加恐怖。在我的家里,有时让孩子们到桌子下面睡觉,有时就让他们穿着袜子睡。甚至有时让孩子们穿着衣服直接躺到被子里。这一周就这样重复着度过去。

在这个大灾难当中我感到了一个急切的需要。那就是我们应当同心为日本和日本人来祷告。我们应与这些灾难中痛苦、恐惧、受伤的人们一起流泪,为他们祷告。

情爱的同工们!请为日本祷告!

  1)  因着神的恩典,更新这地!
  2)  在这地兴起极大的救恩和拯救而祷告。

  3)  为着灾难中的人们得到从天而来的安慰、希望、及天父的赦免而祷告。
4)  为了在这痛苦的邻国日本,充满全世界神子民的爱,充满教会的爱,充满神的爱而祷告。


然后为灾难中的日本,在神的面前我们来决定能为日本所做的三件事,然后去执行吧。
在下面的三个项目里,将祷告、思考、决定的事分别写下,并付诸行动。

  1)

  2)
  3) 


在大家的决定当中若有什么是我所能做的,请不要客气跟我联系。我会尽力做到。

在主里的平安传递给大家。

2011 319日 东京 朴树民
PS: 今后关于日本大地震的状况将登在Facebook上。请参照

2011년 3월 30일 수요일

日本大地震その一週間を過ごして(3月19日)

日本大地震その一週間を過ごして
シャーロム!
 東京のパク・スミンです。
皆さん、お元気ですか。本当にシャーロム(平安)という言葉の意味が心に沁みてくる一週間を過ごしました。

動労者の皆様もご存じのように過ぎた 311日午後 246分、日本の東北地方に大きな地震がありました。震度9.0のもので日本地震歴史上もっとも大きなものでした。この地震は、高さ 15mを超える津波、数多くの余震、原子力発電所の放射能漏れをもたらしました。
 「地震、津波、原子力発電所の放射能漏れ」という3第災難が一つのところで同時的に起こったのです。そして、二日前からは被害地域に厳しい寒さまで大変なところです。 

319日、現在、 6900人死亡、行方不明 10,354人です。 50万名余りが避難しています。また、死亡者の数は毎日どんどん増えています。もし、行方不明になっている人が死亡者として確認される場合、死亡者の数は20,000人に上るでしょう。今回の大地震は、 2次世界大戦以降、日本に起こった最も大きい災いです。また、原子力発電所事故による放射能漏れの恐怖と毎日3,4度揺れる余震を感じながら、人々は不安におびえています。

現在、東京は外国人脱出ラッシュです。外国人出入国管理局の事務所は、再入国のビザをもらおうとする人々のためパニック状態です。317日には、知り合いを見送るため、空港へ行きましたが、空港はまるで市場のように混雑していました。空港では、チケットを得るため、寝袋を持って寝泊りをしている人々の姿も見えました。飛行機の運賃は45倍上がりました。そして、多くの国が自国の支店の職員と家族を引き上げていました。私たちの日暮里華人教会の4-5人の兄弟、姉妹たちももう帰国してしまいました。

一部の日本人も東京から離れて南側に移動しています。娘のヒジュのクラスにおいても2-3人が地震後、学校に来ていません。もう東京から離れたようです。しかし、大体の東京の人々は今のところ落ち着いています。しかし、続いている余震と放射能漏れの恐怖はみんな意識しています。表では静かで落ち着いていますが、これもいつ壊れるかわかりません。

放射能漏れの恐怖で、皆、外出を避け、家では喚風機の使用を禁じ、外出時は、マスクを使用しています。大体の職場は通常のように動いていますが、食料品、ガソリンなどの購入は非常に制限されています。そして、ほとんどのお店でお米、パン、お水などの日常食料品はもう品切れです。放射能漏れにより、人々が食料品をたくさん買い求めておき、出かけないつもりであるからです。

現在、東京23(東京市内)の場合、まだ電気、ガス、水道、インターネットの事情は正常です。また、郵便サービスも問題ありません。しかし、計画停電を実施しているため、地下鉄利用が不便であり、一部の道路を利用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また、電気や水道がいつ切れるかわからないので、使う水を確保しておいたり、ご飯を炊いておくなどできる準備をしております。

すぎた一週間は、地震と原子力発電所の放射能漏れのニュースとそのショックがこの地を覆いました。他人のことのような東北地域の恐怖がだんだん東京地域まで移されました。 また、東京の人々も、東北避難所で生活している人々の姿が自分の姿になるかもしれないと感じはじめています。

いろいろな祈りの課題を持って主に叫びながら一週間を過ごしました。夜になると余震の恐怖は一層深まりました。家では子供たちを大きいテーブルの中に入れさせたり、靴下を履かせたままに寝かせたりしました。 何かあったらすぐ外へ出れるようにコートをかけて布団に入ったこともあります。そういうことを繰り返した一週間を過ごしました。

この大きな災難の中で、私は一つの必要を深く感じています。それは たちがつのって日本日本人のためにる時であることです。災いの中で苦しみ、恐れ、傷んでいる人々のために、共に涙を流すべき時であるのです。

愛する動労者の皆様!
日本のためにこのようにお祈りください!

  1)  神様の恵みにより、この地を新しくしてください!

  2)  この地において大きな救いと命を得ることがたくさんありますように。

  3)  災難の中で苦しみ、悲しんでいる人たちに天からの慰め、天からの希望、天からの命をゆるしてくださいますように。
  
  4) 苦しんでいる隣国日本に、イエスの愛で満たされている全世界のクリスチャンと教会の愛があらわれますように  

そして、災いの中にいる日本のために、神様の御前で自分ができることを三つ決断し、行ってください!
以下の番号に自分が祈り、考え、決断した内容を三つずつ書いてみてください! そして、行動に移ってください

  1)
  2)
  3)  

そして、皆さんが決心した内容の中、私の助けが必要なものがあったらいつでも遠慮なくご連絡ください。ベストを尽くして共にやらせていただきます。 

主によって平安をお伝えします。

2011 319日 東京にてパク・スミン
PS: 日本大地震に関するニュースは今後 Facebookによりアップします。ご参照ください。 

2011년 3월 26일 토요일

일본 대지진, 그가 우리에게 주는 변화들 1 - 헤어짐

오늘 우리에게는 특별한 한 형제가 저녁 7:00 비행기로 일본을 떠났다. 잠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일본 생활을 접고 중국으로의 귀국 길에 오른 것이다.

이번 일본 대지진은, 많은 사람들, 특히 외국인들이 일본을 떠나는 계기가 되게 했다. 우리 닛포리 화인교회에서도 형제, 자매들 중에 남쪽으로 피난을 가거나, 이 참에 일본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지금 일본을 떠나는 사람들 중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한 종류는 잠시 어지럽고 위험한 동경을 떠나 추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일본에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기에, 이번 사태가 안정되면 다시 돌아와서 지속적으로 일본에서 생활을 할 사람들이다. 또 한 종류는 이번 지진을 계기로 아예 짐을 싸는 케이스다. 꼭 일본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치엔허 형제는 후자에 속한다. 취엔허 형제가 일본을 아예 떠나리라고는 우리 중에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왜냐하면 형제는 누구보다도 이 난국에 침착했고, 동요가 없었다. 그가 지속적으로 해오던 새벽과 저녁 아르바이트도 성실하게 지속했고, 이미 전문대학에 합격해서, 막 입학금도 납부한 상태였다. 주변의 형제 자매들이 피난 갈 때도 형제는 요동함이 없었다. 마침 그 때 우리 집에 손님이 있어서, 내가 형제 방에서 같이 잤는데, 지진후 첫 날이라 여진이 너무 많아서 나는 거희 한 숨도 제대로 못 잤다. 그런데 치엔허 형제는 코까지 골며 잠을 잘 잤다.

그런 치엔허 형제가 귀국을 결심하게 된 것은 중국에 있는 가족들의 걱정 때문이었다. 형제는 매일 같이 전화해서 위험한 일본을 떠나라는 가족들의 사랑과 매달림에 손을 들어 버렸다. 그래서 자신이 귀국함으로 가족들이 더 이상 걱정 안한다면 귀국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입학금을 냈던 학교에 가서 자퇴서를 쓰고, 입학금 반환을 신청했다. 그리고 바로 비행기표를 구해서 결심한지 10여일 안에 떠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형제의 결정을 막거나 반대하지 않았다. 너무나 아쉽고 헤어짐은 싫었지만, 그의 결정을 존중했다. 그리고 그 결정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음을 느끼고 있었기에 아쉬운 마음을 빨리 정리했다. 그리고 축복해 주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든 형제가 신앙적이나 생활 면에서도 중국에 잘 정척할 수 있도록 중국내  지인을 찾아 연결해 주고 교회도 소개시켜 주었다. 여기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그의 삶과 생명 주님의 것이고, 주님이 인도하심의 우리의 인도하심보다 확실하고, 그의 손이 우리 손보다 안전하니 믿음으로 보냈다.

지금은 인간적으로 아쉽지만, 후에 아름답게 그리고 놀랍게 복음 전하는 동역자로 만날 날을 기대하며 보냈다. 우리 생각보다 더 빨리 그를 선교의 현장으로 파송한다고 생각했다.

취엔허 형제는 우리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아내의 일본어 학교 클래스메이트였는데, 전도해서 우리교회에 왔고, 작년 10월 우리 교회의 첫 세례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10월부터 우리 집에 들어와서 같이 살았다. 반년을 한 지붕, 한 솥밥을 먹으면서 지냈다. 아이들에게는 삼촌이었고 우리에게는 아들과 같았다. 같이 웃고 울고 행복하게 지냈던 반년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형제를 보면서 많은 위로와 보람을 느꼈다. 희망도 가졌다. 무럭 무럭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선교사가 될 것을 기대하고 기도하고 여러 모양으로 비전을 심으려 노력했다. 형제도 이에 반응하고 많이 자라났다. 형제는 우리에게 있어서, 동경에서 가정교회 형태로 사역을 시작한 것과 공동체적 제자훈련을 시작하게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올바른 결정이었음을 증명해주는 증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안식년에는 치엔허 형제와 함께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가서, 함께 아프리카 중국인 교회를 개척할 꿈을 나누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대지진으로 그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생각지 못한 것이긴 하지만, 마지막에는 선을 이룰 것을 깊이 신뢰한다.

이번 일본 대지진은 많은 사람들의 인생 항로를 바꾸어 놓았다. 단단한 바위를 만나 방향을 예측할 수 없게 튀오 오르는 공처럼, 지금 사람들의 인생이라는 공은 대지진을 만나 이리 저리 인생의 방향을 예측할 수 없게 튀어 오르고 있다. 아무도 내일 일을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내일 여기에 있을지, 다른 곳에 있을지, 돌아 올지 떠날 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몇 년에 거쳐서 해야 할 신중한 결정들이, 지진 후 두 주라는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지고 있다.

아주 중요한 헤어짐인데도, 지금 동경상황이 긴급한지라, 변변하게 송별회도 못해주고 조촐한 점심을 함께 하고, 몇 몇 형제, 자매들과 함께 기도해서 보냈다.

먼저는 땅이 요동했고, 이에 바다도 하늘도 요동했다.
그리고 지금은 사람들의 마음이 요동치고 있다.
아무도 내일 일을 얘기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이 곳에는  땅도, 바다도, 하늘도, 사람들의 마음도 굳게 서지 못하고 있다.

골로새서 2:6,7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떠남과 남음, 헤어짐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다 조금 앞당겨졌을 뿐이지, 언제가 올 것들이었다. 문제는 우리가 지금 흔들리며, 요동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땅, 바다, 하늘이 흔들려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이미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2: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 

지금은 굳게 서는 믿음, 영원한 반석되신 주님 안에서 믿음에 굳게 섬이 절실한 시기다.
진동치 않는 나를 받은자답게 감사를 넘치게 하며,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할 때이다.

주님! 우리로 믿음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감사로 넘치며,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주님께 예배케 하소서!

헤어지는 자리에 함께 해준 형제, 자매들과 함께(중앙이 치엔허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