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열기가 어디가나 후끈거리는 6월이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스포츠를 즐기는 운동권(?)은 아니지만, 최근의 한국과 일본에 넘쳐나는 축구열기가 여기까지 밀려오고 있다.
그런 가운데, 나는 한국이 나이지라와 비기고 16강 진출에 성공한 뒤, 선수들이 그 기쁨과 감격을 누리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 특히, 이영표 선수의 눈물이 눈에 띄였는데, 후에 인터넷 신문을 보니, 그가 흘렸던 눈물의 의미를 자신이 이렇게 설명했다. 다음은 기사내용이다.
"16강행 확정 당시 이영표는 "2002년 월드컴 4강 이후로 한국의 축구선수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한국 축구가 내 세대가
요구하는 역할이 있었다. 내 세대라는 것은 2000년대 세대를
뜻하는 것이다. 우선 월드컵 본선 진출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사상 첫 원정 16강이었다. 오늘 좋은 경기를 통해
완성했다는 기쁨에서 나오는 눈물"이라며 눈물의 의미를 전했다.
그리고 다가온 16강 우루과이와의 경기. 이영표는 8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운은 우루과이 쪽으로 흘렀다. 한국은
압도적인 경기를 했지만 승리하지 못했다. 한국은 1-2로
패배했다. 한국의 2010 남아공월드컵은 끝이 났다. 그리고 이영표의 월드컵도 끝났다.
경기 후 만난 이영표는 "나의 마지막 월드컵이었다. 내 세대가 해야만 하는 역할, 부족했지만 최선을 다했다. 다음 세대에 기대를 건다. 우리 세대가 16강에 진출했으니 다음 세대는 8강, 그리고 그 이상을 해내리라 믿는다. 나는 그 중간단계에서 이어주는
역할을 한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아마 이영표선수는 다음 월드컵에 출전을 하지 않을 것이다. 올해 33세인 그에게는 마지막 월드컵이다. 그런 그는 자신의 시대를 마감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자기 시대의 시대적 요구에 응답했고, 중간단계에서 이어주는 역할, 끼인세대의 역할을 다했다. 그리고 그 시대적 요구에 응답한 기쁨, 주어진 사명을 이룬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 그의 고백이 내게는 남다르게 다가왔다. 나는 그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알아들었다. 왜냐하면, 내게도 시대적 사명감에 대한 고민이 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에 이런 말씀이 있다.
사도행전 13:26"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For when David had served Gods purpose in his own generation, he fell asleep; he was buried with his fathers and his body decayed).
다윗의 삶을 여러 가지로 정의내릴 수 있지만, 바울은 다윗은 당시에(his own generation), 하나님의 뜻(Gods purpose) 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었다고 했다.
여기에서, 두 가지가 중요한데, 첫째는 "다윗은 당시에(In his own generation)"로 기록된 시대에 대한 인식이다. 그리고, 둘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David had served Gods purpose)"로 기록된, 그 시대에 부르심 받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목적)이다.
첫째는 "다윗은 당시에(In his own generation)": 다윗은 자기 Generation을 살았다. 그 이전의 과거도, 그 이후의 미래를 산 것도 아니다. 바로 자기가 발 딛고 있는 시대와 호흡하고 그 시대를 섬겼다. 그리고 그 시대적 요구를 알았고, 그 요구를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목적에 투영하여 하나님께 부여받은 자기역할을 알았고 이를 추구하고, 이루는 삶을 살았다.
이영표선수는 2002년 꿈같은 월드컵이후에 자기에게 주어진 시대적 요구, 한국 축구의 요구는 월드컵 16강이라고했다. 그것이 자기세대의 역할이요, 후배들이 8강, 그 이상을 할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는 그 중간에 이어주는 역할을 한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참으로 훌륭한 관점이요. 멋있는 기대다.
이 시대 선교사로 부름받은 내 세대에 주어진 역할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16강은 무엇일까? 내 세대가 이어주어야할 중간역할은 무엇일까? 20대 선교사들에게 우리는 무슨 바톤을 넘겨주어야 할까?
내가 말하는, 우리세대는 현재 40대로 선교사로 살아가는 세대를 말한다. 우리 세대는 세장적으로는 흔히 얘기하는 386세대다. 80년대 대학을 다니며, 사회와 국가, 민주주의에 대한 끊없는 질문과 도전을 했던 세대다. 북방정책으로 중국과의 수교와 이웃으로써의 중국을 경험하고, 햇빛정책을 통해 북한도 사람사는 동네라는 것을 알게된 세대다.
선교적으로는, 영웅같은 선배선교사들의 도전을 들으며, 선교사역에 헌신했지만, 정작 그 사역에 들어갈때는 선교사 인플레이션을 경험해야 했던 세대다. 이제는 인플레이션을 넘어서, 선교사 끼리, 선교단체끼리의 경쟁시대로 돌입한 서글픈 느낌마저도 든다. 한국의 세계선교가 양적으로는 세계 2위의 파송대국이 되었지만, 그 양에 비하면, 한 없이 초라한 질적상태 때문에 말을 많이 하긴 하지만, 선배님들에 비하면, 너무나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그야말로 평범하기 이를때 없는 그런 선교사 세대다.
그리고 우리세대는 신자유주의에 깊이 지배당한 세대다. 급속한 글로벌화로 국가간의 장벽이 낮아졌지만, 그 낮아진 국경으로 퍼져나간 것은 실업과 빈곤의 전세계화다. 한국, 중국, 일본이 거의 같아 보인다. 소외되고 가난해지고, 일을 하지만 빈곤층을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 빈곤층이 너무 많다. 급격한 환경파괴로 자연재해가 늘면서, 재기를 못하는 나라와 지역이 너무 많다. 일도 하고 노력하고, 선한 의지도 갖지만 앞길이 열리지 않는 이들이 적지 지 않다. 외국에도 나오고 유학도 하지만, 결코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심한 경쟁으로 병들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몸과 마음의 병으로 고통하는 자들이 어디에나 있다. 이 시대의 화두는, 가난, 질병, 경쟁, 고통이다.
교회적 상황 어떠한가? 결코 좋은 징조가 보이지 않는다. 몇 몇 교회들이 선발하고, 산발적인 운동들이 일어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하향세다. 이런 하향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세속화다. 세속화란 교회와 선교가 세상을 닮아가는 것이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을 추구하고, 세상이 인정하는 것을 인정하고, 세상이 가치있게 여기는 것을 가치있게 여기는 교회, 선교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일본교회의 세속화도 문제지만, 장차 중국교회의 세속화가 더 큰 문제다. 우리보다 더 많고 심각한 일들이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
서구교회의 급속한 약화, 아시아 교회의 세속화, 이슬람 세력의 강화, 그 가운데 일어나는 산발적인 부흥의 소식들...... 이런 것들이 내가 아는 이 세대의 모습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David had served Gods purpose)"로 기록된, 그 시대에 부르심 받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목적)이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고, 또 부름받아 선교사로 서 있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한국사람인 나, 선교사인 나, 중국인 디아스포를 섬기는 나, 일본이라는 땅에서 사역하는 선교사인 나, 이런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이것은 좋은 선교사, 성공적인 선교사, 괜찮은 선교사, 사역 잘 하는 선교사가 되라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답을 요구하는 질문이다. 이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론에 관한 것이다. 대략 2010에서 2045년 정도까지, 이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내가 해야 할 일, 감당해야할 부분이 있다. 시대에 대한 소명인 것이다. 이 소명은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다. 소방수가 착하고 성실한 것으로 소방수의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 그 무엇보다 그 존재의 우선순위는 화재를 예방하고 진화하는데 있다. 그래야 소방수다.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역자, 나의 경우 선교사로서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소명(역할)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다 체쳐두고, "그냥 사역 잘 한다. 좋은 선교사다. (물론 이것도 제대로 못한다고 비난한다면 할말은 없습니다만) 성실하다."로 그 소명을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그 고민때문에, 신학을 마치고 바로 중국에 가서 사역하지 않았다. 중국인 사역을 한다면, 당연히 중국으로 가야하는데, 그 때 이미 중국에서 유학을 했고,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상태인 나로서는 뭔가 하나님의 다른 계획이 있다고 믿었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여러과정을 통해서, 일본의 디아스포라 중국인사역으로 인도함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에 와서 사역을 하면서, 눈이 뜨이게 된 것이 일본, 일본교회, 일본교회의 선교다. 그리고 연결되어가고 있는 것이 디아스포라 사역하는 국제단체, 사람들이다. 그래서 늘 마음에 떠오르는 화두는, 한국, 중국, 일본이라는 동북아 세 국가이고, 그리고 사역의 국제화, 중국교회의 세계 선교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살아온 과거의 궤적을 살펴볼 때, 내게 주어진 16강은 중국교회의 세계선교를 돕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이 일은 일본교회와 중국교회, 그리고 한국교회가 함께, 자신들의 약점을 상대방의 장점으로 보완해나가면서, 동역하면서 이루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이루는 툴은 창조적이고 공동체적인 새로운 교회모델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중일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영적공동체 건설을 도전하고, 어느 정도 이루어내, 새로운 운동의 동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 내 세대가, 이곳에서 해야할 일으로 생각된다.
동북아 삼개국, 그리고 성령님, 공동체, 평신도, 말씀, 선교가 주어진 키워드다.
내 세대가 다하는 것이 아니다. 내 역할을 다 하고, 다음 세대가 그것을 디딤돌로 하여, 그 다음으로 전진하도록 하는 중간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끼인 세대의 역할이 내게 있다. 부족하지만, 그 역할을 다하고 싶다. 이 시대에 나를 부르신 그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다가 잠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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