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6일 화요일

사랑하는 A형제의 귀국

주 안에서 사랑하는 중국형제인 A형제가 일본에서의 공부를 잘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면서, 삿포로에서 출발해  동경에 있는 우리를 만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1년 반만의 만남이었다. 우리 집에 2박3일을 머무르며, 그 동안의 얘기를 나누며, 기도하고, 예배하고, 우리 가운데 임하셨고, 임하시고, 임하실 주님을  생각하며 교제의 즐거움을 누렸다. 특히, 주일 날 A형제는 이곳 닛포리 교회 형제들에게 지난 7년간의 일본생활을 간증했다. 간증 가운데, 가난한 한 명의 중국 유학생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비싼 일본학교의 학비를 벌어서 내고, 거기에 국내의 부모님 생계까지 돌보아야 했던 지난 날의 이야기들을 했다. 그리고 유학 생활기간 동안, 국내의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고, 수 없는 밤을 학업과 아르바이트로 지새우고, 마침내 박사 학위를 받아서 돌아가는 그의 간증은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그는 특히, 구원을 베풀어주신 하나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 용서를 배우게 하신 하나님을 증거했다.

A형제는 회족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이슬람이었다. 그렇게 열성적인 이슬람은 아니었지만, 나면서부터 벗어버릴 수 없는 이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가 한 중국인의 전도로, 교회에 오게 되었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했다. 그는 우리가 삿포로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삿포로에 부임해서 사역할 때는 중국인 모임의 대표가 되어서 우리와 함께 동역했다. 참 부지런하고 성실한 동역자였다. 그 처럼 손, 발을 열심히 움직여 섬기는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유학기간 중에 부인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와서, 함께 있게 되었고, 같은 회족인 부인도 삿포로에 있는 동안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그의 부인과 내 아내는 친밀한 교제를 누렸다. 우리는 그의 부인의 처음 교회 올 때의 모습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처음에는 예배에 오는 남편을 따라, 교회 문 앞까지 왔다가, 예배에 못 들어오고, 우리와 인사만하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던 그녀였다. 그러던 그녀가 한 발, 한 발 교회 공동체에 가까워졌고, 마침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떠날 때쯤되어서는 찬양 인도자가 되어 중국어 예배를 섬겼다. 그리고 우리가 있을 때, 그 부인이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했다. 우리는 그들이 보배로운 아들을 임신하고 낳고 키우는 그 몇 년을 함께 했다.

특히, A 형제를 생각하면, 먼저는, 아내(송수아)가 둘째 아이를 삿포로에서 출산할 때, 병원으로 제일 먼저 달려와서. 씨-익 웃으면서 손수 만든 닭곰탕과 사온 음료수를 내놓던 동네 친구같은 모습이 생각난다. 그는 그렇게 바쁘고 힘든 유학생의 삶을 살면서도 주위의 사람들을 돌보고 섬겼다. 리사이클용으로 나와있는 물건을 보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혹시 필요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고를 무릎쓰고 집에 가져가 일정기간 보관했다가 나누어 주곤했다. 생각이 깊고, 배려를 알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형제는 많은 중국 형제들이 그러하듯이 요리도 잘 한다. 일본에서의 마지막날 우리에게 자신의 비법이 담긴 중국식 구운빵(烧饼) 만드는 법도 전수해주고자  함께 구운빵을 만들며 일본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즐겼다.

삿포로 형제들과 관련해서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 우리가 처음 부임해서 얼마 안되었을 때, 유학생활에 피곤해하는 교회 형제들을 데리고, 하루 온천욕, 뷔페 식사를 하러 간적이 있다. 자동차로 1시간 정도되는 해변의 온천인데, 그날 휘몰아치는 홋카이도의 눈보라를 뚫고 온천에도착해서 그 앞에서 기념사진까지 멋찌게 찍고(아래의 사진), 현관을 들어서다보니, 그 날이 마침 한달에 딱 한번 있는 정기휴일이었다. 그 문앞에서 다들 크게 한바탕 웃고, 결국 집 앞에 있는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하는 것으로 만족해야했지만  다시 생각할 때면 언제나 웃음짓고 마는 즐거운 추억을  만들게 되었다.

그런 그가 다시 우리 집을 찾아왔다. 떠나는 날 아침에 우리 집 식탁에 함께 앉아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두런 두런 나누면서 느껴지는 깊은 친밀감, 가족과 주고 받을 수있는 그런 신뢰감과 유대감이 느껴졌다. 가족에게서 전해 오는 깊은 유대감과 안정감이 밀려왔다. 감사하다. 이런 보배로운 사람을 알게 되어서! 복음을 전하고, 주 안에서 살아가고, 동역자가 되어가고, 함께 그분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나누는 것이 새삼 귀하고 엄청나게 좋은 것임을 맛 보았다.

A형제는 이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학위를 받긴 했지만, 교수직 찾기가 쉽지 않아 아직 일할 곳이 결정되지 않았다. 살아갈 집도 찾아야 하고, 새롭게 중국에 적응하고 관계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의 주변의 친척, 가족들중 그에게 기대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가운데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도 기도하며 형제를 보냈다. 축복하고, 격려하고, 기대하면서 보냈다. 그리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우리는 동경에 와서, 고려하고 있고, 또 인도함 받고 있는 사역중에 하나는 과거에 우리가 만났던, 알았던, 하나님이 허락했던 사람들과 새롭게 네트워킹하면서 좀 더 넓은 범위의 동역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함께 세워나가는 것이다. 즉,네트워킹과 연대를 통한 교회개척 사역이다. A형제와도 그런 동역이 기대된다. 함께 그렇게 기도했다. 이곳의 교회개척을 위해서 형제가 할 수 있는 동역이 있고, 우리도 형제가 귀국해서 정착할 C 도시에서 이루어질 교회개척을 위해서 동역할 부분들이 있다. 이런 상호적 연대를 통한, 새로운 형태의 교회개척이 점선처럼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고, 그 연결이 창의적으로 새로운 지역의 개척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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