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8일 일요일

잠시 Retreat을 다녀오다.

지난 3월22일,23일에 1박 2일로 잠시 리트릿을 다녀왔다.

닛포리 중국인교회가 시작되고 3개월만에 갖는 첫 수양회 프로그램이었다.이를 준비하며, 두가지 기도제목이었다. 첫째는 성령안에서의 즐거운 교제가 우리 지체들 가운데 있기를 기도했다. 교회공동체가 시작된 후, 매주일 예배와 교제의 시간을 갖긴 하지만, 하루를 자면서 같이 식사하고, 얘기하는 시간을 갖고, 좀 더 깊이 친해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오고가는 길이 안전하고 평안이 있기를 기도했다. 일본에서 운전이 1년 반만이기 때문에 조금 긴장했다. 안식년 기간동안 일본에 없었고, 동경으로 온 후로는 자가용이 없어서, 운전을 하지 않고 살았다. 운전이라곤 우리집 자전거 운전만 매일 했으니, 이 복잡하고 좁은 동경의 도로에서 운전한다는 것이 조금 걱정되었다. 더구나 렌트카를 빌릴 계획이라, 차도 익숙지 않을 것 같고 해서 더욱 그랬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이 이 두가지 기도제목 다 들어주셨고, 부차적인 보너스 축복도 많이 주셨다. 참가원은 빌린 차량 한대에 합법적을 탈 수 있는 7명이 갔는데(우리가족4명 포함), 참 좋은 교제의 시간이었다. 형제, 자매들도 학생들이라 자동차로 어디 좀 나가서 바람 쐴 기회도 없었는데, 같이 즐거운 여행을 했다. 평일(형제,자매들은 방학중)에 여행을 하니, 한적해서 좋았다. 특히, 빌렸던 숙소에는 전부를 통털어서 우리밖에 없어서 아주 여유가 있었다. 식사도, 장소 사용도, 산책도 한적하고 여유롭게 했다. 정말 숨가쁘게 달리는 동경생활에서 다들 오랜만에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정말 기초적인 것에서부터 서로를 알아갔다. 밤에 자는데 코는 고는지?  아침에 잘 일어나는지? 차멀미를 하는지? 가족들은 어떤지? 신앙생활 시작하면서 좋은지? 아주 작은 것부터 알아가고 익숙해져 가는 시간이었다. 함께 호수가를 산책도 하고, 후지산을 보기도하며 오손도손 얘기하는 기쁨도 누렸다.

우리 가족도 오랜만에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과 함께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어서 좋았다. 집에서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뛰지 마라, 떠들지 마라, 밑층 아저씨들 올라온다."(2층이라서, 그리고 일본집의 특성상 거의 모든 소리가 이웃간에 들린다. 지난번에 한번 아래층에서 문제제기를 했다.) 하면서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활동과 발산을 억제시켰었는데, 이번에 아주 마음껏 뛰고 소리지르고 놀았다.  

차량운전도 처음 빌린 차라, 익숙치 않아서 처음에는 디지탈 기아변속 계기판을 잘 몰라서 애를 먹긴 했지만, 무난하게 이틀간에 운전을 마치고, 동경과 그 주변 도로에도 익숙해졌다. 역시, 뭐든지 한번 해보면서 익숙해지고, 더욱 잘하게 되는 것 같다.

더욱 많은 형제, 자매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동참하지 못하고, 우리도 현재로서는 더 많은 사람들 데리고 갈 수 있는 차량이없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수양회로서 첫 발을 내딛은 것으로는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가 있었다.  

함께 갔던 사람들


2010년 3월 19일 금요일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기

다시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관계를 맺어가면서
아직은  서로 마주보지도 않은 상태인지라
사랑, 감사, 위로를 주고 받기에도 어색한 단계임을 느낄 때 ...

그냥 삿포로사람들이 그리워지더라구요
어떤 말이나 행동을 깊은 신뢰관계속에서 편안하게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새삼 뼈져리게 느꼈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삿포로에서도 3년은 걸렸던 것같아요.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3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구나.  인내가 필요하구나.
이후로도 정들만하면 또 개척하러 다른 곳으로 옮길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잠시 숨이 막힐 것 같았어요.

결혼하고 너무 많이 이동하며 살면서 가는 곳마다 잠시 이방인인 듯한 느낌을 받곤 했는데....
심지어 지난해 한국과 북경에서 안식년을 보내면서도 만만치 않더라구요.
여기 내고향 맞아?  하면서요. ^^
그런데 이제사 그 느낌이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좀 알 것 같아요.

희주네 반(班) 엄마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으로는 위로도 하고 싶고 부조도 하고 싶었는데... 막상 다가가려니 상대가 머뭇거리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요. 가슴아파하는 사람을 안아주고 싶어도 서로 관계가 성립되어 있지 않으면 큰 부담과 결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이것은 작은 예에 불과하지만, 더 많은 예나 설명이 필요한 것 같지도 않네요.

중요한 건사랑도 할 수 있을 때 많이 표현하고 나누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좀더 인내하며 준비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야 겠다는 작은 결심도 해 보았습니다.

나는 왜 "성경이 내게 말씀하시는 교회인가?"에 관하여 글을 쓰려고 하는가?

나는 왜 "성경이 내게 말씀하시는 교회인가?"에 관하여 글을 쓰려고 하는가?

첫째, 성경이 교회에 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가장 권위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성경에는 처음의 교회, 원형의 교회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성경은 여러가지 형태로 우리가 세워나가야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마땅히 어떠해야 하는가? 그 생명의 공동체를 잘 말씀해주고 있다. 교회의 진정한 원형은 성경에 있고, 지금도 그러하다. 우리가 흔히 평가하는 성공적인 교회, 잘 되어가는 교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몸 담고 있는 교회가, 성경이 말씀하는 바로 그 교회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교회가 가장 권위있는 교회에 대한 정의다. 교회에 대해 고민하면 할 수록, 더욱 성경의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신가? 어떤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에 대해 궁금해진다. 그리고 지금 교회라는 공동체에 대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자하면 할수록 더욱 성경에 말씀하는 바로 그 교회의 본질에 대해서 집착하게 된다. 그래야 확신이 생기고, 교회 공동체의 뿌리가 든든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교회를 새롭게 개척하면서, 계속해서 사도행전을 보고 또 보고, 연구해보고, 진실로 그런 의미인가?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아! 바로 그 것이구나"하는 깨달음과 확신가운데 교회 공동체가 세워져나가는 것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둘째, 지금도 성경은 내게 교회에 관해서 말씀해주시기 때문이다.
성경은 늘 같은 진리를 말씀하지만,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반응하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다를 수 있다.시대만 다른 것이 아니고, 개개인의 배경, 생각, 가치관, 모든 것이 다르다. 그래서 인격적인 성경이 내게 말씀하시는 교회에 관한 진리는 동일한 것이지만, 나의 반응은 그 일관되고 동일한 진리의 기초 아래서 얼마든지 다른 모양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이 내게 말하는 교회인 것이다. 지금 이 시대, 이 땅, 이 사회적 공기를 마시고 있는 나에게 성경이 무엇이라고 교회를 말씀하시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그 모습이 교회가 가진 오랜 전통과 끈을 이어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더욱 견고하고 풍성한 토양의 영양분을 섭취하여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동경에서 중국인들을 위한 교회를 세우고 있는 내게, 성경이 지금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성경이 지금 이곳 일본에서 디아스포라 중국인 교회를 개척하는 나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교회"라는 화두를 붙들고, 고민하고, 기도하고, 연구하고, 생각하고, 실천하면서, 성경이 말씀하시는 "교회"가 과연 그러하구나! 고백하고 싶고, 외치고 싶은 소원이 있다.

교회개척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중국인이 있지만 교회가 없는 곳에  주의 몸된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을 하길 원하는 내게, "성경이 내게 말씀하시는 교회"는 아주 근원적이고 기초적이고 원칙적인 중요한 화두다. 이것이 내 사역의 뿌리를 이루는 "사역철학"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이 내게 말씀하시는 교회"의 출발, 진행과정, 그 가운데 주어지는 고민, 문제들, 그리고 그 고민과 문제들의 해결 등을 기록하고 싶다. 기록하다 보면, 정리가 되고, 정리하다 보면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다 보면, 연구하게 된다. 그리고 연구하다 보면 실행해 보게 된다. 그런 가운데, 한국인으로서 일본에서 디아스포라 중국인들을 위한 교회개척의 모델 하나쯤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리고 좀더 욕심을 내 본다면, 내가 가진 교회관, 선교지에서의 교회개척에 관한 이론, 생각, 실험 등이 정리되고 좀 더 내면화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본다.



 



2010년 3월 16일 화요일

사랑하는 A형제의 귀국

주 안에서 사랑하는 중국형제인 A형제가 일본에서의 공부를 잘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면서, 삿포로에서 출발해  동경에 있는 우리를 만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1년 반만의 만남이었다. 우리 집에 2박3일을 머무르며, 그 동안의 얘기를 나누며, 기도하고, 예배하고, 우리 가운데 임하셨고, 임하시고, 임하실 주님을  생각하며 교제의 즐거움을 누렸다. 특히, 주일 날 A형제는 이곳 닛포리 교회 형제들에게 지난 7년간의 일본생활을 간증했다. 간증 가운데, 가난한 한 명의 중국 유학생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비싼 일본학교의 학비를 벌어서 내고, 거기에 국내의 부모님 생계까지 돌보아야 했던 지난 날의 이야기들을 했다. 그리고 유학 생활기간 동안, 국내의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고, 수 없는 밤을 학업과 아르바이트로 지새우고, 마침내 박사 학위를 받아서 돌아가는 그의 간증은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그는 특히, 구원을 베풀어주신 하나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 용서를 배우게 하신 하나님을 증거했다.

A형제는 회족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이슬람이었다. 그렇게 열성적인 이슬람은 아니었지만, 나면서부터 벗어버릴 수 없는 이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가 한 중국인의 전도로, 교회에 오게 되었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했다. 그는 우리가 삿포로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삿포로에 부임해서 사역할 때는 중국인 모임의 대표가 되어서 우리와 함께 동역했다. 참 부지런하고 성실한 동역자였다. 그 처럼 손, 발을 열심히 움직여 섬기는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유학기간 중에 부인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와서, 함께 있게 되었고, 같은 회족인 부인도 삿포로에 있는 동안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그의 부인과 내 아내는 친밀한 교제를 누렸다. 우리는 그의 부인의 처음 교회 올 때의 모습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처음에는 예배에 오는 남편을 따라, 교회 문 앞까지 왔다가, 예배에 못 들어오고, 우리와 인사만하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던 그녀였다. 그러던 그녀가 한 발, 한 발 교회 공동체에 가까워졌고, 마침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떠날 때쯤되어서는 찬양 인도자가 되어 중국어 예배를 섬겼다. 그리고 우리가 있을 때, 그 부인이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했다. 우리는 그들이 보배로운 아들을 임신하고 낳고 키우는 그 몇 년을 함께 했다.

특히, A 형제를 생각하면, 먼저는, 아내(송수아)가 둘째 아이를 삿포로에서 출산할 때, 병원으로 제일 먼저 달려와서. 씨-익 웃으면서 손수 만든 닭곰탕과 사온 음료수를 내놓던 동네 친구같은 모습이 생각난다. 그는 그렇게 바쁘고 힘든 유학생의 삶을 살면서도 주위의 사람들을 돌보고 섬겼다. 리사이클용으로 나와있는 물건을 보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혹시 필요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고를 무릎쓰고 집에 가져가 일정기간 보관했다가 나누어 주곤했다. 생각이 깊고, 배려를 알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형제는 많은 중국 형제들이 그러하듯이 요리도 잘 한다. 일본에서의 마지막날 우리에게 자신의 비법이 담긴 중국식 구운빵(烧饼) 만드는 법도 전수해주고자  함께 구운빵을 만들며 일본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즐겼다.

삿포로 형제들과 관련해서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 우리가 처음 부임해서 얼마 안되었을 때, 유학생활에 피곤해하는 교회 형제들을 데리고, 하루 온천욕, 뷔페 식사를 하러 간적이 있다. 자동차로 1시간 정도되는 해변의 온천인데, 그날 휘몰아치는 홋카이도의 눈보라를 뚫고 온천에도착해서 그 앞에서 기념사진까지 멋찌게 찍고(아래의 사진), 현관을 들어서다보니, 그 날이 마침 한달에 딱 한번 있는 정기휴일이었다. 그 문앞에서 다들 크게 한바탕 웃고, 결국 집 앞에 있는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하는 것으로 만족해야했지만  다시 생각할 때면 언제나 웃음짓고 마는 즐거운 추억을  만들게 되었다.

그런 그가 다시 우리 집을 찾아왔다. 떠나는 날 아침에 우리 집 식탁에 함께 앉아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두런 두런 나누면서 느껴지는 깊은 친밀감, 가족과 주고 받을 수있는 그런 신뢰감과 유대감이 느껴졌다. 가족에게서 전해 오는 깊은 유대감과 안정감이 밀려왔다. 감사하다. 이런 보배로운 사람을 알게 되어서! 복음을 전하고, 주 안에서 살아가고, 동역자가 되어가고, 함께 그분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나누는 것이 새삼 귀하고 엄청나게 좋은 것임을 맛 보았다.

A형제는 이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학위를 받긴 했지만, 교수직 찾기가 쉽지 않아 아직 일할 곳이 결정되지 않았다. 살아갈 집도 찾아야 하고, 새롭게 중국에 적응하고 관계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의 주변의 친척, 가족들중 그에게 기대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가운데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도 기도하며 형제를 보냈다. 축복하고, 격려하고, 기대하면서 보냈다. 그리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우리는 동경에 와서, 고려하고 있고, 또 인도함 받고 있는 사역중에 하나는 과거에 우리가 만났던, 알았던, 하나님이 허락했던 사람들과 새롭게 네트워킹하면서 좀 더 넓은 범위의 동역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함께 세워나가는 것이다. 즉,네트워킹과 연대를 통한 교회개척 사역이다. A형제와도 그런 동역이 기대된다. 함께 그렇게 기도했다. 이곳의 교회개척을 위해서 형제가 할 수 있는 동역이 있고, 우리도 형제가 귀국해서 정착할 C 도시에서 이루어질 교회개척을 위해서 동역할 부분들이 있다. 이런 상호적 연대를 통한, 새로운 형태의 교회개척이 점선처럼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고, 그 연결이 창의적으로 새로운 지역의 개척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2010년 3월 1일 월요일

日本의 아픔, 日本人의 눈물

주님께서 일본을 향해 어떤 마음을 갖고 계실까? 일본, 일본인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일본은 한국에게 있어서 매우 가까운 나라다. 한해에 200만명의 한국인이 일본을 방문한다. 그리고 300만명의 일본인 한국을 방문한다. 너무나 가까워서, 요즘 동경같은 곳은 외국으로 생각도 않는 한국사람들이 많은 것같다. 일본은 전에없이 가까워졌지만, 일본인이 우리에게 가까운 이웃이 되었을까? 한국인에게 일본은 복잡한 생각을 하게 하는 나라다. 이웃나라지만, 좋고 반가운 이웃이라기보다는 아주 먼 이웃이었다. 특히,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가 배운 교육과 늘 들어온 얘기들을 생각해보면, 일본은 달갑지 않고, 그들과 가까워지면 질수록, 왠지 민족과 나라를 배반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에서 "나는 일본을 사랑합니다!" "일본영혼을 사랑합니다!" "일본은 내 사랑!" 이런 사랑을 고백하는 선교사님들을 별로 만난 적이 없다. 반면에, "일본은 사마리아 땅입니다! 꼭 선교해야 합니다." "일본은 니느웨입니다! 요나처럼 심판의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사명감을 고백하는 선교사님들을 많이 만난 편이다. 중국주재 LG 직원과 가족들이 LG의 광고 카피를 본따 "사랑해요 중국"이라는 책을 낸 것을 본적이 있다. 그런데, 그 제목을 "사대주의적이다. 매국적이다" 비난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만일 일본에서 일본 주재 한국 주재원들이 그런 책을 내면, 구설수에 오를 것이 분명하다. 그 만큼 우리는 일본을 대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어려운 역사적, 태생적 어려움을 갖고 있다. 역사적 배경과 이를 제대로 사과하고 해결하지 않은 일본의 태도가 일본이라는 나라를 보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못 읽게 한다.

나도 동일하다. 한 사람의 한국사람으로서, 일본에 대한 수 많은 얘기를 듣고 자라왔다. 그리고 사실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특별한 마음이 있어서 온 것도 아니고, "중국인이 있는 곳,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없는 곳"을 따라, 이곳까지 온 나로서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런 나에게, 일본 교회 안에서 중국어 예배를 섬기면서, 수 많은 일본형제들, 자매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얘기를 듣게 되고, 그들의 삶을 보게 되면서, 아주 조금만이지만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계기는 홋카이도 아버지 학교에 참석하면서다. 마침 그때 우리 옆 교회의 한 일본인 전도사님이 참석했다. 그 분이 우리 그룹에서 간증을 하셨다. 조금 무거워보이는 분위기셨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는가? 하는 부분에서, 자신의 자살 얘기를 하셨다. 삶을 포기해, 건물에서 뛰어내렸는데, 살아나 병원에서 치료 받다가 지금의 부인을 만났고, 부인을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헌신까지 하게 되어서, 전도사로 사역까지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분의 간증은 전체 간증으로 채택되어서, 전체 앞에서 발표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발표를 마치면서, 끝에 잠깐의 인터뷰가 있었다. 사회를 보시는 장로님(아버지학교 일본지부 대표, 일본인)이 가족들에 관해서 가벼운 질문을 던지셨는데, 무거운 대답이 흘러나왔다. "형제들은? 형님은 자살했습니다. 아버님은? 돌아 가셨습니다. 어떻께? 자살하셨습니다." 아버님이 자살하셨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사회 보시는 분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얘기를 듣고 있는 우리 모두 울기시작했다.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안고 있는 깊고 깊은 아픔이 건드려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견고하게 존재하는 사회! 누구에게도 자신의 얘기를 하지 않는 사람과 사람들의 관계! 가족이지만, 대화를 잃어가고 남남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자신을 뒤 덮는 스트레스를 참다 참다, 정신과 약을 먹고 견디다 견디다 마지막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 이것이 이 시대 이 땅을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의 아픔이었다. 나도 같이 울었다. 참 마음이 아펐다. 많은 경우 착하고,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인데, 마음이 모질지 못하고 부드러운 사람인데, 그렇게 혼자 끙끙 앓다가 가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자신의 아이들이 이렇게 고통하고, 고통 가운데 죽어가는 것에 아버지되신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 나는 그때야 비로써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느꼈다. 그리고 모든 영혼을 향한 그 마음, 특히 아프고 병들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영혼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보게 되었다.

작년 9월에 일본으로 돌아온 후에 삿포로에서 전해진 슬픈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우리가 사랑하고, 아끼고 함께 했던 일본 자매님 아들의 자살 소식이었다. 이 분은 중국인을 사랑하고, 중국어도 잘 하시고, 믿음으로 많은 분들을 섬기고 몸된 교회를 섬겼다. 아들이 정신적인 병으로 고통하자, 남편은 직업까지 바꿔가면서, 아들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남편은 아직 신앙이 없었지만, 참 인간적으로 좋으신 분이었다. 인격적이고 희생적이고,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장남이 마음에 병을 얻었고, 갈수록 심해졌다. 재작년 연말에는 많이 좋아져서 병원에서 퇴원까지해서 가족들이 얼마나 기뻐하고 힘을 얻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한 순간 이런 일이 벌어졌다. 자매님은 충격을 크게 받았고, 우리 모두도 충격에  빠졌다. 마음이 아프고, 믿겨지지가 않고, 어째서 이런 일들이 이렇게 가깝게, 이렇게 자주 이 땅에서 벌어지는가? 수 많은 질문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위로할 방법도, 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물론 당사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아픔이요, 눈물이지만, 한 일본 자매의 슬픈 사건은 나로 하여금, 바로 이 일본의 아픔, 일본인의 눈물이 그리스도안에서 나의 아픔이요, 눈물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의 고통에 연대감을 느껴가고, 흐느낌을 같이 나누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일본인이든,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구별이 없어야 한다.  

일본에서 한 해 3만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우리나라에 한 집 건너 한 집에 카드 빚 문제가 있었듯이, 일본에는 한 집 건너 한 집에 자살의 문제, 정신병의 문제가 있다.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 그런 문제로 병원치료와 약을 먹는 사람들이 흔히 보인다. 일본 형제, 자매들의 간증을 듣다보면, 웬만한 사람들은 정신적인 문제로 병원을 찾거나, 약을 먹거나, 한번쯤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 직전까지 갔다가 가 돌아온 얘기들이 나오곤 한다. 사실, 이제 정신적인 병이나, 자살의 문제는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급속하게 발전을 하고 있는 한국, 중국사회도 동일하게 이런 문제를 안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은 이 병이 다른 나라보다 좀 더 오래되었고, 깊은 것 같다. 그래서, 일본은 하나님의 긍휼의 사랑, 약하고 병든 자들을 향한 주님의 연민이 더욱 많이 필요한 땅이다. 우리는 한국인이지만,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고 일본의 아픔을, 일본의 눈물을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