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30일 월요일

기독교의 미래(The Future of Christianity) -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

앞표지

이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다음과 같다.

# 먼저, 이 책은 다음세대 기독교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에 대한 고찰을 제대로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즉, 그는 현재 기독교가 처한 환경, 세계적인 변화, 그리고 다가올 미래가 어떤한가? 미래의 기독교란 중심테마를 가지고 정확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 이런 고찰은 내게도 도움이 된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전후좌우의 흐름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왜 그런가? 그 배후를 살펴 볼 수 있다 이는 곧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도 생각해볼 수 있다. 특히, 서구기독교의 실패의 원인 중 하나를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반응이 없었던 점을 든다. 역사의식도, 성경적이지도 않았던, 오히려 기득권적이고 이기적이고, 비겁했던 대처가 대중의 신뢰를 잃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이 지적은 현재 우리교회들이 처한 상황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서구교회 얘기를 하는데, 나는 왜 꼭 우리얘기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지 우리는 너무 빨리 그들의 사그러짐을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 결론부터 얘기하면 기독교는 살아남을 것이며, 거대한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p165). 
--> 거대한 변화는 무엇일까? 종교개혁에 버금가는 개혁이 올 것인가? 그렇다면 선교계는 어떠할까? 이 다원주의 사회에서 선교라는 급진적인 주제를 잘 담아내며 전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전진할 것인가? 거대한 변화를 얘기할 수록, 본질과 기초를 돌아보게 된다. 거대한 변화는 종교개혁처럼 본질에 대한 새로운 각성에서부터 올테니까 말이다. 

# "그리고, 기독교의 미래는 대부분 알려지지 않은 채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움트는 성장 속에 자리하고 있다."(p166)
--> 이 지적에 동감을 표한다. 기독교의 미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교회 속에 담겨져 있다. 지난 번 로잔대회에서 하루 저녁을 아프리카 교회와 중국교회의 날로 정했었다. 중국교회 대표들의 참석하지 못해서 진행되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런 흐름은 이미 대세다. 나는 그래서 아프리카 교회가 더욱 궁금하다. 앞으로 아시아를 대표하게 될 중국교회와 현재 힘 차게 발전하는 아프리카 교회가 플러스된다면, 어떻까? 이 두 기독교 성장측이 선교라는 한 가지 방향으로 모아진다면 어떻까? 이 부분이 내가 관심갖고 있고, 실제 사역적으로 인도함 받고 있는 부분이다. 재밌다. 기대가 된다. 세계선교도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움트는 그들 속에 기독교 선교의 미래를 담고 있다. 이런 지적들은 내가 하고 있고, 해야할 일들에 대한 무게감을 더욱 늘려준다. 

# 이 책은, 또 한가지 재미 있는 점은, 현대 기독교에서 성공적인 시대적응을 하고 오히려 발전하는 변화추구자로 로마카톨릭을 주목한다. 
--> 로마 카톨릭은 매우 현명해졌다. 그리고 개혁적이 되었다. 성령사역까지 받아들여 나름대로 소화해내고 있는 그들, 적극적으로 인간 사회의 중요한 사건에 개혁적이고 일반 서민의 편에 선 목소리를 내고 있는 그들을 보면, 누가 개혁파인지 헷갈린다. 이들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얼마 전 한 신부 선교사가 암으로 소천했다. 남수단에서 사역했던 이태석신부의 이야기다. 이 한 신부 선교사가 지금 수십년간 애쓰고 선교했던 개신교 2만여명의 선교사들이 할 수 있었던 대사회적 영향력을 일시에 압도해버렸다. 고맙기도하고 아쉽기도하고 배울 점도 있고 그렇다.  




그 책이 내게 말을 걸다

이곳에서는(내 블로그의 "그 책이 내게 말을 걸다"는 Lables) 주로 내가 읽었거나 읽고 있거나, 알게 된 책들과 나와의 대화를 적어보려고 한다. 나는 지금까지 독서를 해오면서 내가 읽은 책과 내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면 그 책이 내게 별 의미가 없는 책이 되버린 경험을 많이 했다. 심지어 읽었던가? 기억도 아득해진다. 어떤 분들은 잊어버려도 다 영양분이 된다고는 하지만, 그다지 동의가 되지 않는 말이다. 

반면, 내가 대화를 나눴던 책은 기억에 남을 뿐만아니라, 내게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영향은 내 삶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새로운 방향과 세계를 접하고, 판단하고 통찰하며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책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책을 읽으며, 책에 질문하는 것이고, 고민하는 것이고, 책이 제시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삶에서 끙끙거리며 적용시켜보는 것이다. 그런 책들은 그저 읽었다는 읽어서 좋았다는 것을 넘어서는 힘을 준다. 책이 나도 모르게 내 사상, 글, 방향에 체화되어간다. 그래서 시기 적절한 때에 적절한 책을 만나고, 그런 책과의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은 복된 일이다. 그리고 책과 사람을 제대로 만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나는 그 축복을 이곳에서 나누고자 한다.

2012년 1월 26일 목요일

제2회 동아시아 기독청년대회(東亞洲基督靑年大會)를 마치며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이사야2:4)

"他必在列国中施行审判 为许多国民断定是非 们要将刀打成犁头 枪打成镰刀 这国不举刀攻击那国 们也不学习战"(以赛亚书2:4)

대회에 대한 스케치

2012년 1월1일-3일까지, 2박3일의 일정으로,동경 닛포리의 동경복음교회 예배당에서, 총 인원 46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2회 동아시아 기독청년대회"(이하, 동아시아대회로 약칭)가 개최되었다. 주제는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며(85)"였다. 이 동북아시아의 세 나라, 한국, 중국, 일본에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기까지, 기독청년들이 함께 모여 기도, 찬양하고, 예배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성경공부를 같이 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게임, 교제의 시간을 누리고, 이 세 나라의 음식문화를 함께 즐겼다. 특히, 동아시아인들이 함께 즐기는 만두와 라면을 가지고 했던 요리대회 이벤트는 대회의 흥을 돋구어 주었다. 때론 재미있게, 때론 심각하게, 때론 웃으면서, 때론 울면서 동아시아 삼국의 청년들이 시간을 같이 보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 동아시아 삼국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는 것이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제2회 대회의 특징

제2회의 대회가 갖는 특징은 세 가지 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참석자들의 인식과 자세의 성장과 변화, 대회를 전후좌우에서 돕는 새로운 동역자들의 등장이다.

첫째, 참석자들의 인식과 자세에 있어서의 성장과 변화.
참석자들의 인식은 몇 몇 형제, 자매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끼고 정리하게 된 것인데, 동아시아대회가 제2회를 맞이하면서, 참석하는 각 국의 청년들에게 그저 "흥미롭다, 감동적이었다"를 넘어서는 "동아시아 기독 공동체로서의 의식 혹은 정체성"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참석했던 형제, 자매들은 참석하면서, 다른 언어, 문화, 의식을 가진 기독청년들과의 만남, 교제, 그리고 예배에서 천국을 가까이 느끼게 되고, 그 다민족(多民族)이 어우러진 천상(天上)의 교제와 예배를 맛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회에서 알게 된 개개인들이 서로의 facebook을 넘나들며 관심과 애정을 표시하는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언어와 삶의 분주함이라는 장벽이 관심과 애정을 견고히 막아섰었는데, 금년에는 이 장벽을 조금씩 넘어설 수 있게 하는, 조금 더 강한 관심과 애정의 징후들이 대회 참석했던 동아시아 청년들 가운데 나타나고 있다. 동아시아대회가 추구하는 "친구되는 공동체"로서의 출발이 눈에 띠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동아시아대회에 참석하는 각국 청년들의 서로에게 일생토록 지속되는 좋은 친구되기를 소망한다. 평생 서로를 알아가고 챙겨주고, 상대편의 입장에 서주는 그런 죽마고우()가 되기를 기도한다. 이런 작지만 끈끈한 사랑의 관계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사랑의 공동체요, 사랑의 공동체만이 정의와 평화의 공동체로 전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새로운 동역자들의 등장.
동아시아대회는 주로 한국의 예수마을교회와 닛포리화인교회가 같이 준비해 왔다. 그래서 준비가 간단하고 수월했다. 그렇지만 대회가 운동으로서의 확대 재생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 동아시아 공동체에 관심있는 분들의 새로운 참석과 등장은 이 일이 하나님이 준비하신 일이요. 기뻐하시는 일이요.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일임을 확신케 한다. 조영헌 교수(고대, 역사교육과), 정준곤 교수(일본 ONE ASIA 재단), 이 대회의 대부격이신 이승장 목사님(예수마을교회 담임), 키요마사 아카시 목사님(로고스 펠로우쉽), 조한선 감독님(리얼리티 비전) 등의 직접적인 참여, 그리고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났던 한국, 일본 분들을 챙겨보면, 동아시아 기독청년대회가 새로운 궤도 진입을 할 것 같다. 이 분들이 대부분 이 대회를 자기 일로 여기고, 주인의식을 발휘하여 적극적인 피드백을 주고 계시다. 많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힘이 붙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참여는 차기 대회를 위한 소중한 동력으로 작용할 것 같다.

셋째, 동아시아 기독청년 공동체를 위한 헌신자들이 일어섰다.
이번 대회의 마지막에는 우리는 동아시아대회의 시작에 대한 역사적 접근을 talk식으로 나눴다. 그리고 이 위대한 공동체적 과업을 위해 사람들에게 도전했다. 예상보다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헌신의 대열에 동참했다. 이들이 제2회 대회의 열매다. 이들 헌신자들을 주측으로 지금 대회 후속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료 정리, 비전 북, 영상 제작...등으로 시작한 헌신자 그룹의 이러한 봉사는 이제 대회의 준비와 진행으로까지 확대될 것이다.

남겨진 과제와 비전

이번 대회는 숙제같이 풀고 넘어가야 할 과제도 남겨주었다.


먼저는, 부족한 일본 청년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이번 제2회대회 때에는 일찍부터 일본측의 참여를 위해 여기저기 줄을 대보았지만, 개교회 차원의 접근의 한계, 일본인 특유의 신중한 태도, 대회기간이 일본의 신정연휴와 겹치는 점들로 올해도 일본인 참여가 저조했다. 특히, 대표성 있는 청년들의 참여가 부족했다. 이 점은 내년 3차 대회부터는 반드시 풀어야할 과제다. 우선 내년 대회부터는 대회일정을 조정해 일본의 명절과 겹치지 않게 한다는 점, 한국에서 개최되어 참석자들에게 매력이 있다는 점,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한 일본측 창구를 더욱 개발하고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등의 방법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둘째는,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와 현재의 삶이 하나님의 빛으로 조명되는 일이다
진정한 자신에 대한 발견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보는 것이다.(이사야6:5). 우리 삼국의 청년들이 모여 성경공부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과정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역사와 삶에 대한 하늘로부터 오는 조명을 받아야 한다. 그 거룩하고 절대적이고 완벽하시고 찬란한 그 분의 빛 앞으로 함께 나아가 우리를 적나라하게 보게 되고, 다시 무너진 관계의 벽돌을 쌓아 올리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성령의 감동으로 말미암은 자발적 의지의 결연한 발동으로 말이다. 우리는 지난 두 번의 대회를 치르면서 이를 위한 좋은 사전 작업들을 해왔다. 이제 다음 대회를 준비하는 남은 일년간 차근 차근 이 일을 해야  한다.

셋째는, 이제 우리는  "동아시아 기독공동체"라는 물고기를 얻기 위한 좀 더 조밀한 그물 망을 짜내는 일을 해야 한다. 이번 대회를 통해서 헌신한 청년들을 준비과정과 진행과정에 중심으로 가져와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일년간 준비의 기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유지하고 있는 개인적 네트워킹에 의한 대회 준비와 대회 개최의 틀이, 조금 더 한,중,일 청년들(대만, 홍콩을 포함한)의 대표적인 성격을 담은 네트워킹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른바 대표적인 기독청년 단체들(일본의 KGK, 한국의 학복협...등)과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외협력은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이 대회가 이벤트성 대회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참석자를 발굴할 때,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해 생각과 관심이 있는 사람들 위주로 초청해야 한다. 자료의 정리 뿐아니라, 차기 대회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도 이루어져야하고, 이 그림을 토대로 프로그램과 강사, 대회 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날실과 씨실이 촘촘히 이어지면 좋은 그물이 나올 것 같다.       


새롭게 보게되는 비전은 다음과 같다.

비전은 한 개인의 비전이 아니라 전체의 비전이어야 마땅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을 취합해서 이곳에 정리하는 것은 별로 이 작은 글에 합당치 않기에, 여기서는 내 개인이 이 대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행하실 일들에 대해서 바라보고 꿈꾸는 비전을 적어본다.

나는 이번 대회에서 이사야 6장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전하면서 이 동아시아대회라는 사역은 그루터기 사역이요 거룩한 씨를 뿌리는 사역임을 깨닫게 되었다.(이사야6:13). 나무가 베임을 당해도 남아 있는 그루터기 처럼, 뿌려진 씨앗처럼 감당해야 할 사역이다. 인내와 믿음으로 감당할 때, 때가 되면 이사야2:4에서 언급한 무기를 바꾸어 생명을 살리는 도구를 만드는 일들을 능히 감당해 낼, 공의와 평화의 도구를 만들어내는데 일생을 걸, 늠늠한 동아시아 기독인들이 이 모임을 통해서 배출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들은 생명을 해하는 학문, 비지니스, 연구, 생업에서 돌이켜, 생명을 살리는 학문, 비지니스, 연구, 생업을 해 낼 것이다. 즉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어 낼 것이다. 내가 꿈꾸는 것은 칼을 든 전쟁의 영웅이 아니라, 그 칼을 쳐서 농기구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의 먹거리를 생산해 내는 농부같은 동아시아 기독청년들이다. 영웅도 전쟁도 칼도 필요 없는 정의와 평화의 동아시아를 열어 나갈, 쟁기든 농사꾼들이다. 생산적이고 창조적으로 함께 대지()를 일구어 생명을 생산해낼, 호미 든 21세기 농사꾼들이다. 자기가 든 스마트 폰, 아이패드를 전쟁의 무기처럼 쓰지 않고, 대지를 일구는 농기구로 사용해, 함께 동아시아 대지에 생명 가득한 열매 맺고, 세계의 대지에 정의와 평화의 초장을 일굴 농부들이다.

내가 매일 우리 두 아이들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며 기도하는 기도제목 중 한 가지는 이것이다. "하나님 희주가, 희원이가, 동북 아시아 리더쉽을 가지고 세계를 섬기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요!". 어려서 부터 한국, 중국, 일본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며 살아 갈수 밖에 없는 우리 아이들을 향해,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마음이다. 나는 이 기도를 이제 이 대회를 참석했고, 함께 헌신한 한국, 중국, 일본의 청년들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한다. "동아시아 리더쉽을 가지고 세계를 섬기는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나는 이 일을 섬기는 자리에 부름 받았다. 서구기독교이 점진적 몰락과 아시아 기독교의 점진적 부흥의 교차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동아시아 출신 선교사로서, 우리 다음 세대인 지금의 동아시아 기독청년들이 "동아시아 기독 공동체"라는 한 몸을 이루어서 "세계를 섬기는" 역사적 소명을 다 하기를 기도한다.

내년 2013년의 동아시아 대회는 한국의 제주도에서 치뤄진다. 두 번의 동아시아대회가 일본에서 열렸다. 동아시아 대회는 그 다음은 한국에서, 그 다음은 중국(중국이 사정상 어려우면 홍콩)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렇게 삼국을 돌면서 이웃에 대한 이해와 경험의 폭을 넓혀 갈 것이다. 특히, 제주도인 이유는 제주도가 관광특구로 중국 형제, 자매들이 비자문제 걱정없이 참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의 대회 개최는 참석한 형제, 자매들의 대회 집중도를 높여줄 수 있다. 그리고 한 층 더 깊게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아침에 시작해 늦은 저녁에 마치고,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출, 퇴근식으로 진행했던 프로그램에 변화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숙박을 같이하는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내년 대회는 여러 면에서 대회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조한선 감독님 제작, 대회 Video1


조한선 감독님 제작, 대회 Video 2

2012년 1월 19일 목요일

"영원한 청년 이승장 목사님 내외분" 과 함께한 열하루

1월1일-3일까지 2박3일간의 일정으로 제2회 동아시아 기독청년 대회가 동경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 참석하시기 위해서 이승장 목사님 내외분이 동경을 방문하셨다. 그리고 오신 김에 우리 가족에 대한 케어와 위로, 그리고 당신들의 휴가를 겸해 1월11일까지 열하루의 특별한 시간을 함께 보내주셨다. 

이승장 목사님 내외분을 개인적으로 알게 된 것은, 1998년 8월인가 북경에서 있었던 제3회 Kosta China에서로 기억한다. 당시 중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 신학교에 갓 입학했던 나는 후배들의 요청으로 북경에서 열리는 Kosta를  돕기위해서 잠시 북경에 갔다. 그때 이승장 목사님도 Kosta 강사로 북경에 와계셨다. 대회기간중에 하루 저녁 기도회를 내가 인도하게 되었다. 기도회가 인상적이었나(?), 목사님은 한국에 오면 꼭 한번 본인이 막 개척을 시작하신 교회에서 한번 방문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이승장목사님과의 개인적인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렇게해서 나는 예수마을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98년에 신학대학원 1학년 때 부터 시작해서 졸업하고, 풀타임을 겸한 강도사 생활 일년까지 합쳐서 총 4년을 예수마을교회에 있었다. 청년부의 청년으로 시작해, 전도사, 강도사, 선교사까지 되었다. 예수마을에 있는 동안 초기개척교혁의 희노애락 (喜怒哀樂)을 목사님과 함께 경험했다.

선교지로 나온후, 이승장목사님을 중심으로한 예수마을 교회는 힘껏 선교에 동참해주셨다. 일본에서 사역을 시작한 후, 첫 텀 사역지였던 삿포로에 한 번 다녀가셨고, 이번에 근 4년만에 다시 우리 사역현장을 방문해 주신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 스스로 생각하는 스승같은 분이 세 분 계시다. 사이판 중국인교회의 이만열목사님, 북경 21세기 한인교회의 박태윤목사님, 그리고 예수마을교회의 이승장 목사님이다. 이 세 분 다 사역의 현장에서, 인생의 전환점에서 만나뵈었던 분들이다. 이만열 목사님의 예수님의 모습을 닮음, 성경과 기도에 대한 사모함, 절제되고 경건한 삶은 지금도 거울을 보듯 나를 돌아보게 하는 모범답안이다. 박태윤목사님은 넓은 포용과 용서, 소탈함과 겸손함, 비전이 인도하는 삶, 즐겁게 사역하는 삶을 보여주셨다. 이승장 목사님은 개척과 비전, 학구적이고 지적인 자세, 캠퍼스와 지성인에 대한 부담, 품위 있고 격조있는 목회자의 삶 그리고 평생 야전에서 싸우는 장군 같은 모습을 보여주셨다.

이승장 목사님은 스스로를 소개할 때, 늘 "청년 이승장"이라고 소개하신다. 올해 일흔이 다 되셨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소개하시는 것 만큼, 청년을 향한 열정에 불타신다. 사실 목사님은 젊은이의 특징인 열정과 도전을 지금도 갖고 살아가신다. 이번에 열하루를 같이 지내면서 더욱 그렇게 살고 계신 목사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얘기, 바닥에서부터 산정상까지의 얘기, 산책에서 온천까지의 교제, 나는 지적으로, 영적으로 흠뻑 자극을 받았다. 오랜만에 받은 자극이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친구처럼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한국교회에서 세계선교에 이른 다양한 이야기들, 의문과 궁금증을 질문하면서 듣고 배우는 시간이었다. 지난번 삿포로에 오셨을 때, 글을 쓰라고 자극을 주셔서,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뭔가 새롭게 한 가지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정마리아 사모님과의 대화도 나와 아내에게, 가정, 자녀, 교회에 대한 많은 배움과 나눔의 시간을 안겨다 주었다. 어머니처럼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편들어주시고, 자신의 이야기도 해주셨다.

이번에 몇 가지 해프닝도 벌어졌다. 목사님 내외분과 2박3일 후지산 근처로 여행갔는데, 숙소가 대략 해발 900미터 정도의 위치에 있었다. 하루일정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눈을 만났다. 인적이 드물고, 기온이 낮은 산길이라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조심해서 커브 길을 돌아 언덕으로 오르는데, 속도를 늦쳐서 방향전환을 했기 때문에, 타이어가 눈에 미끄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차가 언덕에서 미끄러져 멈추어 서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다. 동경인근이라 전혀 눈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었다.(동경은 거의 눈이 내리지 않고 와도 바로 녹는다). 이승장 목사님의 지도하에 모두 차에서 내려 차를 밀어서 언덕을 넘었다. 야밤에 노목사님 부부, 특히 사모님은 무릎이 않좋으신데 눈길에 차를 밀게 했다(?). 나 이래도 되나! 해프님으로 끝나서 다행이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다른 하나는 즐거운 일이었는데, 우리 가족은 목사님의 특별공연을 관람하는 기회도 있었다. 희원이가 저녁에 모두에게 개다리 춤 공연을 했는데, 영 분위기가 안나자, 목사님이 직접 무대에 오르사, 희원이와 함께 합동공연을 해주셨다. 목사님의 특별 개다리 춤 공연을 본 것이다. 아! 정말 충격이었다.(좋은 의미에서). 요즘 목사님이 재미있게 사시려고 집에서 사모님에게만 특별공연을 하곤 하신다면서 해주신 공연이었다.

사람은 언제 어떻게 자라나고 성장할까? 자극과 영향을 받을 때이다. 이를 통해서 깨달음이 오고, 깨달음은 의지를 발동시킨다. 의지의 발동이 나와 세상을 향한 최소한의 첫 번째 발디듬이다. 그런데, 의지는 깨달음 만으로는 발동되지 않는다. 일종의 거대한 불만족, 혹은 분노가 의지를 더욱 격발시킨다. 불만족과 분노는 자신이나 현상황, 현실에 대한 거룩한 불만족에서 온다. 불만족은 하늘로부터 오는 깨달음에 가장 크게 자극 받는다. 이 하늘로부터 오는 깨달음은 사람을 통해서 올때 매우 인격적이고 자극적이다. 나와 아내는 지난 11일간 이런 인격적이고 자극적인 교제 가운데 있었다. 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30여년 앞서 사시고, 다양한 경험을 하시고, 일생을 투사적으로 개척해오신 노사역자 부부에게서 이런 시간을 선물받다니!  

나는 행복한 선교사다. 하나님께서 인생과 신앙의 스승을 이곳까지 보내주셔서 11일간의 온 삶으로 배우는 특강을 듣게 하시고, 위로와 격려를 해주시니 말이다. 우리 부부는 목사님내외분이 가신 후, 허전한 마음이 있긴 했으나, 분명 새 힘이 생겨 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에 뭔가 의욕이 자꾸 생겨났다. 이것은 좋은 휴식에서 오는 새로와짐이다.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