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3일 화요일

103세 동포 할머님 심방

지난 7월20일에 올해 103세가 되신 재일동포 김00 할머님을 심방할 기회가 있었다. 우연치 않게 알게 된 한 권사님의 부탁으로 할머님이 머물고 계신 병원으로 심방을 갔다. 할머님은 오래전 길에서 넘어져 정신을 잃으신 뒤 기운을 못차리시고 병원에서 누워 지금까지 지내고 계셨다.

우리가 심방을 갔을 때, 할머님은 여전히 눈을 감고 누어계셨다. 옆에서 할머님의 손을 꼭 잡았다. 오랜 세월의 풍파를 맞고 서 있던 나무처럼, 바짝 마른 손으로 온기가 느껴졌다. "참 거칠고 오랜 세월을 견디어 오셨구나!"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 시편 23편을 읽어드렸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리고 할머님의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 놓으시고 평안 가운데 있으실 수 있도록 기도했다. 그리고 조용히 발걸음을 돌려 돌아왔다. 할머님의 얼굴이 맘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때부터 매일 이 할머님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오면서 권사님으로부터 김 할머님에 대한 얘기를 좀 더 들을 수 있었다. 한국, 중국을 거쳐 일본에 들어오셔 오래 사셨고, 그전에는 건강하셔서 교회에도 잘 오시고 여러 사람들에게 많은 호의를 베푸셨던 분이시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다리에 기운이 없어지고, 혼자서 교회에 갈 수 없게 되었고, 그러면서 사람들사이에서 점점 잊혀진 존재가 되셨다는 것이다. 그런 분을 권사님이 특별한 긍휼함이 있어서 찾아가 뵙곤 했던 것이다. 그나마 길에서 쓰러지시기 전까지는 집에서 계시면서 사람들도 만나고, 조금 기운을 차리시곤 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시고는 그냥 그대로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계셨던 것이다. 가족들이 있긴 하지만, 자녀들이 신앙이 없고, 일본사회의 특징이 가족 연대감이 약하니, 가족들이 가까운 이웃보다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권사님과의 얘기의 주제는 일본 땅에서 오랜 세월 살고 계신 재일동포 그리스도인 노인에 대한 얘기로 자연스럽게 확대되었다. 권사님에 의하면, 김 할머님 같은 연로하신 그리스인들이 많은데, 많은 분들이 이국 땅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노년들을 보내고 계시다는 것이다. 한번은 어떤 할머님을 찾아 뵙고 집에서 찬송가를 불러드렸는데, 그렇게 하염 없이 우셨다는 것이다. 할머님이 너무나 오랜만에 듣는 찬송이어서 크게 감동하셨다는 것이다. 교회에 가서 찬송도 부르고 싶고, 말씀도 듣고 싶은데, 혼자 힘으로 갈 수 없고, 데려다 줄 사람도 없고, 가까운데 교회도 없고, 그래서 그냥 집에 있게 되고, 그러다보니 사람들과의 교제도 사라지고, 성경 읽을 힘도, 찬양할 힘도 잃어가고, 결국에는 모두에게 잊혀진 존재가 되어 사라져 간다는 것이다.

가장 힘든 근세기의 역사를 살아오신 분들, 일제 식민지, 해방, 한국전쟁...... 그 험난한 세월을 견디어 오고, 예수님을 믿어 천국백성이 되었고, 장수의 축복도 누렸는데, 노년이 너무 외롭고 서글프다. 아무도 찾아 오는 이 없이 사라지고 잊혀지는 노년. 도대체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는 어디에 있는가?

이런 쓸쓸한 노년의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먼저는 이분들이 살고 있는 땅이 한국이 아니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한국같으면 가까운 교회에도 갈 수 있고, 교회 차량이 와서 모시고 갈 수 있고, 노인대학도 있고......그런데 일본에는 그런 것이 없다. 교회, 그것도 한인 교회를 찾아간다는 것은 도시에서도 산 넘고, 물 건너 가야하는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가난한 노인은 임대료가 싼 교회가 드문 지역으로 밀려나 살게 된다. 그리고 그런 분들을 돌아보기에는 다들 너무 바쁘다. 교회든 개인이든 여유가 없다. 일본에서 다들 생존 자체를 위해서 바둥바둥 거려야 한다. 그래서 이렇게 다리에 힘이 없어져 교회에 못 오는 노인들을 모실 힘이 없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2세에 대한 신앙교육의 실패다. 이분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이 자녀들을 신앙으로 키우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신앙적으로 잘 키운 분들도 있지만, 많은 분들이 그렇지 못했다. 자녀들이 신앙이 있으면 그들과 함께 한 교회에 갈 수 있는데, 그들이 신앙이 없으니 주일에 부모를 모시고 예배드릴 생각을 안한다. 그것이 가장 좋은 효도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노년은 온다. 장수한다는 것 자체는 축복이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도 오는 노년에 축복을 축복답게 누리려면, 쉽지 않은 숙제들이 놓여져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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