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30일 금요일

2011年 Park's Family 10 大 News!

2011년은 우리가족에게 유난히도 길고 길었던 한 해였다. 어둡고 긴 터널을 정신없이 헤쳐나왔던 한 해였던 것 같다. 돌아보면, 다시 반복해서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별 처럼 빛나고 희망을 주던 일들도 있었다. 내 개인적으로 솔직한 말로 표현한다면, 2011년은 폭삭 늙은 한 해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2011년의 마침표를 찍는 이 시점에서 나의 마침표는 "감사, 감사, 감사"라 할 수 있다. 지난 한 해간 우리를 휩쓸고 지나가려던 재난과 위협에서 건지시고, 날마다 먹이시고, 입히시고, 양무리를 붙여주시고,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해주셨다. 그리고  주변에 좋은 동역자들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 무엇보다 그 하나님을 더 알게 하시고, 더 사랑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한다. 이분이 우리 가족 한 가운데 계시며 그 분의 열심으로 우리를 섬겨주셨던 한 해였다.

2011년 한 해간 우리가족에게 있었던 News! 10. 

News 1. 일본 동북 대지진 일어나다.


금년 3월11일 일본 동북지역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엄청난 쓰나미와 방사능 사고가 일어났다. 이 재난의 쇼크는 우리 가족의 삶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지진이후 한 달여간은 재난영화에서나 보던 삶을 살아야 했다. 여진으로 계속해서 흔들리는 땅위에서 불안정한 매일 매일의 생활을 버텨나갔다. 그때 내게 가장 큰 힘이 됐던 것은 새벽기도였다. 동경에 오면서부터 근처 한인교회 새벽교회에 나갔는데, 지진 가운데 다들 불안한 심정으로 모였다. 그런 마음을 가진 이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던지! 가서 기도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자체로 큰 힘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일상은 지속됐지만, 과연 일본이, 우리가 사는 동경이 일상적인 평범한 삶을 회복할 수 있을까? 확신이 안섰다. 그러다가 8개월이 지났다. 사람들은 일상을 회복했고, 이제는 다들 평범한 일상을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 처럼 보인다. 일상이 지진보다, 쓰나미 보다 무섭다. 반복되는 일상은 무섭게 사람들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았다. 상점에 필요한 물건들이 들어오고, 멀리 외국으로 피난갔던 사람들도 돌아오고, 각종 교통수단이 정상적으로 운행되고, 멈추었던 축제들도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외에서 손님들도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지진 이전의 일본가 그 이후의 일본은 같은 나라가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도 같은 마음이 아니다.

     우리가족은 지진이후, 몇 가지 변화를 겪었다. 우선 아이들 마음에 지진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흔들거리는 것에 예민해졌다. 또한 우리의 이곳에서의 생활이 늘 불안정한 토대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가족 먹거리에 변화가 생겼다. 지진 이후, 부서진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이 다량 유출됐다. 이 방사능은 동경을 포함한 동일본에 두루 퍼졌다. 어느정도 방사능이 오염된 식품들이 유통되기 시작했다. 먹거리 선택에 예민해졌다. 정부는 안전하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잘 믿지 않는다. 방사능은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아이들을 생각해 생수를 사먹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다던 일본 수도물이 외면받게 된 것이다. 원전에서 가까운 지역의 농수산품을 피하기 위해 간단한 일본지리를 다시 공부해야 했다. 지명을 알아야 뭐 피할래도 피하지!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이곳의 평범한 일본사람들이다. 그리고 함께 신앙생활하는 중국 형제, 자매들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동역자들이다. 이들이 있었기에, 이들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현현(顯現)하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이들과 함께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이 본래의 자리에 제대로 놓여진다.

News 2. 송수아 선교사 아프다. 그러나 그 아픔이 축복이되고 있다.

금년 초반부터(지진이전) 아내인 송수아선교사의 몸이 않좋았다. 병원에서 가슴에 혹이 발견됐다. 의사는 암이 의심된다면 조직검사를 하자고 했다. 의사는 우리에게 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암일 확율이 50%가 넘는다고 했다.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일주간 본인인 송수아 선교사보다 내가 더 죽을 것 같았다. 결혼하고 10년차, 지금까지 아내 때문에 이렇게 많이 울어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매일 새벽기도에 나가 회개하고 후회하고 울고 그랬다. 온갖 않좋은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한 주후 검진결과가 나왔다. 의사는 분명 암같은데 조직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다시한번 더 큰 범위를 검사 하자고 했다. 아내가 거절했다. 의사는 2차 진료때, 나름대로 공부를 해가지고 온듯, 병명을 알려주었다. "육아종성유선염", 이 병은 암과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여, 보통 암으로도 자주 오인되는데, 현재로는 원인불명, 치료법 부재의 병이다. 다행인 것은 목숨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의사는 스테로이드 처방을 주었다. 처음에는 염증이 줄어드는 효과를 보았다. 그렇지만 복용을 몇 달하면서 부작용이 나타났다. 얼굴이 부어오르고, 여러 이상증이 나타났다. 그러다 지진이 나서 병원에 못가게 되고, 자연스레 약을 끊게 되었다. 약을 끊고 나서는 심각한 금단 현상이 뒤따랐다. 아내는 몸의 관절마다 심한 통증이 나타났고, 산후의 산모처럼 기운을 잃고 일어나지 못하고 몇 주를 누워지내게 되었다. 그즘에 나도 몸살 감기로 누웠다. 이렇게 둘이 누워 몇 주를 보내니, 앞이 캄캄했다. 한심했다. 과연 우리가 선교를 계속할 수 있을까? 이런 몸상태로 외국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까? 나는 그때에 비로서 하용조 목사님이 예전에 자신과 아내의 몸이 약해서 그토록 원했던 선교사가 되지 못했다고 하신 말씀이 이해가 됐다. 그렇구나! 그런데 다행히 우리는 그렇게 부디끼며 가장 심한 상황을 넘어갔다. 우선 내가 기운을 차렸고 아내의 몸도 조금씩 호전되었다. 이 일을 겪으면서 우리는 교회와 집을 분리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 결심은 사실 우리를 약간 비참하게 만들었다. 교인이 늘어서 교회가 집에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 뒷감당을 못해서 분리되는 것이라, 일종의 실패감이 몰려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함, 육체적인 연약함을 통해서 일하심을 보게 되었다. 그 가운데 그 분의 뜻이 있음이, 선을 이루시는 역사가 있음을 보게 되었다. 교회는 우리 집엣 분리되면서 놀랍게 새로운 궤도로 진입하기 시작했다.(참고: 이사 그 과정과 놀라운 하나님의 인도하심 http://diachinese.blogspot.com/2011/11/blog-post.html ) 그리고 아내의 몸도 회복되기 시작했다. 아직 그 병이 다 나은 것은 아니지만, 몸은 약물 금단현상에서 거의 회복되었고 체력도 좋아졌다. 하나님이 아내의 병을 의도하시지는 않으셨지만, 그런 연약함을 선으로 바꾸어주셨다. 우리가 생각했던 속도, 방법, 방향을 뛰어넘어, 교회가 세워져 나갔던 것이다. 아픈 육체가 선을 이루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전혀없다. 아퍼서 누워있었던 것 밖에 없으니까.  

News 3. 하나님이 보내신 자, 하나님이 공급하신다.


동경에 온 후 우리는 동경의 높은 물가로 사방으로 압박당했다. 거기에 엔화가 높게 뛰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갔다. 전에 있던 사역지보다 두배로 비싼 주택렌트비, 전에 사역했던 시기보다 30% 뛰는 엔화...... 그렇게 2년을 버텼다. 삿포로에서 사역할때는 그래도 경제적으로 젖은 수건을 짜는 느낌(짜면-절약하면 뭔가 남는)이었는데, 동경은 완전히 마른 수건을 짜서(절약해도 남는게 아예 없는) 쓰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런 과정속에서 하나님이 공급해 주심을 경험케 해주셨다. 거의 아는 사람이 없는 동경 땅에 왔는데, 하나님이 은혜로 동역자들을 한 분, 한 분 붙여주셨다. 기쁨으로 중국인들, 그리고 우리를 섬기는 분들을 만났다. 그야말로 이분들을 길 가다가 만난 것처럼 만나게 되었다. 이 분들이 지속적으로 쌀도 보내고 김치도 보내주어서 기본 식사가 해결되었다.  그리고 때마다 약간 부족한듯 하지만, 정신차리고 지출을 통제하고, 생활할 정도를 여러 방법, 여러 길로 공급해주셨다. 때마다 이른 비, 늦은 비로 공급해주셨다. 우리를 섬기느라 사랑하는 선교동역자들, 후원교회, 후원자 분들이 애 많이 써주셨다. 자신들의 필요를 삭감하고 절제하고 지원해주신 분들 많이 많이 감사하다.

     살인적인 물가와 엔고에도 살아남아 생활하고 사역하고 움직일 수 있던 것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 그리고 그 보내신자를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은혜다.

News 4. "동경 중국인 캠프"가 열리다.

2011년 8월에는 우리가 섬기는 동경닛포리화인교회를 중심으로 닛꼬에서 2박3일간 중국인 캠프가 열렸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만열 목사님을 모시고 있었던 이 캠프는 우리의 동경사역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 이다. 캠프에 대한 자세한 리뷰는 여기에 있다.
http://diachinese.blogspot.com/2011/09/2011.html

News 5. "동경 닛포리 화인교회" 새로운 예배장소를 찾다.

9월 중순 우리가 섬기는 닛포리 화인교회는 우리 집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예배장소를 찾았다. 하나님이 기막힌 위치에 예배장소를 주셨다. 바로 앞에 중국인들이 많이 다니는 두 개의 일본어학교가 있는, 한 한인교회의 예배장소를 주일 오후에 4시간 정도 함께 쓰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서 형제자매들, 그리고 우리가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다. 하나님이 좋은 장소를 주셨다. 전략적으로 교두보 같은 위치에 주셨다. 2012년 4월 혹은 5월부터는 우리가 이 장소를 Full로 쓸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News 6. 박수민 선교사 성경을 통전적으로 보고, 설교하게 되다.

올 한해 내 개인적으로는 성경연구와 설교에 새로운 장을 여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사실 그동안 중국어로 구약설교를 많이 하지 못했다. 성경을 부분적으로 설교하기를 주로 했다. 그런데 일련의 과정을 통해 깨달음이 왔고, 설교사역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아주 장기적으로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길어야 5,6년 정도, 짧게는 1년, 2년 정도의 시간을 같이 한다. 디아스포라 교회의 특징이다. 이런 이들에게 길어도 2년의 시간 정도에 성경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다 듣고, 배울 수 있도록 돕는 것, 이들이 전체성경의 뼈대를 잡고, 그 뼈대 위에 개인 통독으로 살을 붙이도록 돕는 것이 내 사명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도전한 한 해였다. 지난 한 해간, 너무나 부족하지만, 창세기부터 열왕기하, 그리고 이와 관련된 몇 몇 선지서부분까지 설교해 왔다. 중국어로 낯선 용어들과 씨름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너무 좋다. 감사하다. 2012년에는 계시록까지 다 달려가야 겠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 매 2년마다 중국어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설교할수 있게 되고, 해마다 내용이 더 견실해지리라 믿는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2011년은 그 출발의 한해였다.

News 7. 두 자녀 한국어로 모국어 정체성을 갖다.

우리에게는 사랑하는 희주, 희원 두 딸이 있다. 둘 다 선교지에 태어나서 선교지에서 자랐다. 그리고 디아스포라 사역의 특성상 여러 곳을 다니며 살았다. 희주는 지금 열살인데, 사이판에서 10개월, 말라이지아에서 10개월, 한국에서 1,2년, 중국에서 4개월, 삿포로에서 4년, 동경에서 2년 살았다. 그리고 앞으로 어디서 살지 우리도 잘 모르겠다.

    우리는 아이들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기를 원한다. 그래서 한국어가 자신의 모국어로 자리잡기 바랬다. 한국인이 한국어로 읽고, 쓰고, 얘기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우리 같이 떠도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감사하게도 두 아이 모두 한국어를 모국어로 느끼고, 한국어를 제일 편안해 생각하고, 기타 외국어를 외국어로 여기는 모국어 정체성이 생겼다. 감사한 한 해다.


News 8.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자라나다.

올 한해간 형제자매들이 부쩍자랐다. 우리 얘기가 아니라, 지난주 주일예배를 마치고 나눈 올 한해 마지막 sharing에서 나온 형제자매들 스스로의 고백이다. 서로가 상대방의 영적성장을 목격하고 간증했다. 그 얘기를 옆에서 들으면서 우리도 그랬구나! 하는 고백이 나왔다. 어려움을 겪었던 부부도 있었고, 직장과 학교에서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겨냈고 견뎌냈고, 자라났다. 감사하다.

News 9. 동아시아 기독청년캠프가 열리다. 

2011년 1월2일에 제1회 동아시아 청년캠프가 열렸다. 동아시아 삼국(한,중,일)의 청년들이 함께 모여 교제하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자리였다. 뜻 깊었다. 2012년 제2회가 열린다. 이 대회가 동아시아 공동체를 향한 생명의 씨앗으로 자라나기를 기도한다. 동아시아의 정의와 평화, 사랑의 공동체의 모판이 되기를 기도한다. 동아시아 기독청년캠프에 대한 자세한 소식.
http://diachinese.blogspot.com/2011_01_01_archive.html
http://diachinese.blogspot.com/2011/12/blog-post_26.html
http://diachinese.blogspot.com/2011/12/blog-post_28.html

News 10. 지진, 쓰나미 피해지역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다.

대지진 이후, 일본교회의 NGO와 함께 긴급구호에 동참했다. 당시의 자세한 리뷰는 이곳에,
http://diachinese.blogspot.com/2011/03/blog-post_3693.html. 그리고 그 후 간접적으로 지원할 기회가 있었고, 최근에 다시 지진지역을 방문해 사역에 동참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때에 이곳에 있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일본은 2차 대전 이후, 가장 큰 어려움을 만났다. 그리고 힘들게 그 어려운 숙제를 풀어가고 있다. 그 재난의 어려움은 민초들의 삶에 그대로 녹아들어갔다. 그런 그들과 함께 있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한 명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이들의 고통을 목도하며, 체험하며, 기도하고 나누고 섬길 수 있어서 감사하다. 좀 더 사랑할 기회, 함께할 기회가 주어진 것은 내게 주어진 특권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러분 감사합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들이 계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appy New Year!
新年蒙恩!あ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2011년 12월 28일 수요일

请为 “东亚洲基督青年大会”祷告

亲爱的弟兄姐妹!
请为 “东亚洲基督青年大会”祷告。1月1日-3日,在东京有中国,日本,韩国,这3个国家基督徒年轻人的大会。详细的内容写在下面的单张里。请参考单张。

祷告事项

第一,在大会期间要有从天上来的恩典
第二,3国的年轻人聚集在一起的时候,好叫参加的所有的人被圣灵充满起来
第三,为更多的日本年轻人来参加
第四,透过这大会,好叫3国的年轻人心灵有和平,正义,爱的种子会打开三国的新的未来

谢谢您的祷告,您的祷告是我们的 “力量,粮食,生命”。



从韩国来参加的韩国基督青年们的 PR Video(韩文版)
   



2011년 12월 26일 월요일

"동아시아 기독청년 대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사랑하는 동역자님들께 기도부탁드립니다.

11-13일까지 있게 되는 "동아시아 기독청년 대회"를 위한 기도입니다.

동아시아, 특히 한,,일 삼국은 이제 새로운 돋는 해가 나타날 역사적 시점이 되었습니다. 바로 돋는 해되신 예수님이십니다. 동아시아 삼국은 이제 더 이상 이런식의 관계로 으로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기독청년은 그 예수님을 가슴에 간직한 사람들입니다. 그 예수의 흔적을 가진 한,,일 삼국의 기독청년들이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교제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올해가 그 두번째 모임입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기도해주십시오


1. 대회 삼일간 하늘로 부터 오는 은혜
2. 함께 함으로 오는 성령의 충만함이 가득하도록.
3. 일본기독 청년들이 더 많이 함께 할 수 있도록
4. 이 대회를 통해서, 동아시아 삼국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평화, 정의, 사랑의 씨앗이 
   청년들 가슴 가슴마다 심겨지도록.


한국측에서 참여하는 예수마을 청년들의 PR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GlhAFOYgxdk

                                      ((동아시아 대회 포스터))


2011년 12월 7일 수요일

김 선교사님께 드리는 편지


한 선교 잡지에서 원고요청이 있어서, 
한 선배선교사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으로 써서 보낸 글을 올립니다.  여기에도 올립니다.

---------------------------------------------------------------------------------

안녕하세요

김 선교사님. 동경의 박수민 선교사입니다.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작년에 동경에서 있었던 선교대회에서 잠시 뵙고 나서, 그간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지는데 잘 지내시는지요?
저희는 지난 2011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잊혀지지 않는 일은 지난 311일에 일어났던 일본동북대지진입니다. 그날은 이제 저희 가족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습니다. 진원지는 일본 동북부였지만, 그 흔들림은 동경에까지 있었습니다. 저희는 그날 집에서 자매 두 명과 식사를 마치고, 기도하고 마치려 할 때 지진을 만났습니다. 늘 있던 지진이지만, 그 날은 특별했습니다. 잠시 왔다가는 지진이 아니었습니다. 흔들림이 달랐습니다. 계속 흔들리며 물건들이 떨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해졌습니다. 모두들 공포에 떨었습니다. 잠시 후 저희는 온갖 매체를 통해서 일본에 일어난 끔직한 일의 진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도 9의 대지진, 높이 10-30미터에 이르는 쓰나미, 원자력 발전소 사고, 그리고 23천여명의 사망, 실종자...... 일본은 전쟁터 같았습니다. 비상 식료품들이 상점에서 품귀가 되고, 주유소에 휘발유가 떨어졌습니다. 방사능 공포로 출국과 피난행렬이 이어졌습니다. 끝임 없이 오는 여진과 보이지 않는 방사능 위협 앞에, 하루 하루 긴장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현실이 아닌 재난영화에나 나오는 나날이 계속되는 것 같았습니다. 과연 계속해서 이곳에서 살아 갈 수 있을까?

그렇게 1개월이 지났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일상을 회복해갔고, 9개월이 지난 지금은 거의 정상을 회복했습니다. 밖에서 볼 때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대지진 이전의 삶을 회복한 것은 아닙니다. 대지진 그 이후의 날들은,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결코 대지진 이전의 날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여전히 지진이 발생하고, 또 올지도 모를 대지진에 대한 소문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갑니다. 방사능 오염 문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의 악화로 많은 외국인들이 일본을 떠났고, 새로 오는 외국인도 급속히 줄어들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곳에서 한인을 대상으로 목회하는 분들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지진과 방사능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에, 더욱 어려워진 목회적 환경, 여기에 최근에는 엔고라는 악재까지 겹쳤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환경가운데, 몇 가지 고무적인 일들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번 대재앙은 일본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일하는 우리 선교사들에게,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쓰나미로 집을 잃고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을 수많은 해외와 국내교회들이 직접 나서서 도왔습니다. 지금까지는 너무 가진 것이 많아서 뭐 도와줄 기회도 필요도 별로 없었는데, 드디어 도와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일본 교회, 그리스도인들, 선교사들, 해외의 교회들이 나서서 직접 물건을 사서 나르기도 하고, 피난시설을 찾아가 음식을 해서 나눠주기도 하고, 피난 온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기도 하고, 바닷물로 오염된 집들을 청소해주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섬김과 희생이 곧 복음의 진보라는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냥 쏟아 붓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긍휼, 사랑, 그리고 지속적인 사랑의 행동은 내리사랑처럼, 가랑비처럼 일본인들의 마음을 적시며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난주에 코오리야마(郡山市)라는 곳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방사능 누출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입니다. 도시 곳곳이 기준 방사능 허용치를 넘겨 생활환경이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동료선교사님들과 함께 이곳에서 사역하고 계신 한 한인선교사님을 방문하고 저희 단체를 통해 모금된 지진구호금을 전달했습니다. 저희는 그곳에서 선교사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이 어떻게 선교사들을 쓰셔서 재난가운데서 일하시는가? 볼 수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생활전체가 방사능 오염에 계속 노출되어 있는데도 이곳에 있는 이유는 함께 있는 교인들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교인들이 삶의 터전인 그 곳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한 자신도 남겠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님은 지금 교인들과 함께 지내며 이 시기를 지내 것이 자신을 이곳에 부르신 하나님의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 선교사님의 자리 지킴은 울림이 되어 함께 하는 교인들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성령의 역사가 있었고, 전도의 문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일을 다 마친 후 다시 동경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날의 만남을 되새겨 보며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그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내는 것입니다. 잠잠히 우리를 바라보며 사랑하셨던 주님처럼, 잠잠히 그들을 사랑하며 함께 지내는 것입니다. 그 임마누엘의 진리가 더욱 충만하게 이곳 가운데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주십시오!

급하게 드린 편지라 두서가 없었습니다. 잘 이해하시고 읽어주셨으리라 믿습니다.
언제 여유가 되실 때, 다시 동경에서 반갑게 만나 뵈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평안하소서!

2011 126일 동경에서 박수민 선교사 올림

코오리야마 郡山市


왼쪽에서 세번째, 네번째 분들이 郡山 선교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