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지난 글인데, 이제야 다시 자료 찾아 올립니다.
다 지난 일 같지만, 여전히 지나가지 않은 현실의 재난으로 남아 있는 동일본 대지진!
그 날이 재앙의 날들이 피해자들에게나 우리 모두에게 조속히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맘 담아 다시 올립니다. 일본 땅의 샬롬을 기다리며!
일본 아니 인간의 자신감이 무너진 날
우리는 무엇을 바탕으로 다시
설 수 있을까
박수민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지역에
리히터 규모 9.0의 강진이 발생했다. 그날 동경의 집에서
몇몇 지체들과 식사를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조금 흔들리다 그치곤 했는데, 이날은 달랐다. 흔들림이 멈추지 않았고 갈수록 심해졌다. 물건들이 떨어지고 집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다들 밖으로 뛰어나와 공터로 대피했다. 땅이
흔들리고, 건물과 전봇대, 전선들이 사방으로 출렁거렸다. 땅을 흔든 지진은 바다를 요동치게 했다. 최고 높이 40미터에 이르는 쓰나미가 동북부 태평양 연안을 강타했다. 지진보다
쓰나미 피해가 심했다. 여의도 면적의 48배에 이르는 지역(443km2)이 물에 잠겼다. 그리고 4월초인 현재까지 2만 700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피해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원자력발전소 파괴로 유출된 방사능이 하늘의 공기를 오염시켰다.
하늘 요동치자 사람들 마음에 공포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방사능에 대한 극도의 공포감으로
일본에 살던 외국인 18만 명 정도가 일본을 떠났고, 일부
일본인은 남쪽을 향해 피난길에 올랐다. 시내에서는 생필품이 동이 나서 살 수가 없었다(현재 동경에서는 생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물건을 살 수 있다). 대지진
이후 수 백 번의 여진이 왔고 지금도 오고 있다. 그리고 방사능 누출 문제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피해지역에서의 구조와
구호활동이 시작됐다. 기독교관련 단체들, 그리고 교회들이
구호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일본 교회는 각 교단 및 단체를 중심으로,
혹은 각 교회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피해지역 교회들을 돕기 시작했다. 한인 교회와 한인 선교사들, 그리고 단체들 역시 신속하게 움직여 현장에 구호품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난 3월 27일부터 3월 30일까지 일본인 교회인 요도바시교회의 AGAPE-CGN 팀에 합류해
토후쿠(동북) 대지진 피해 현장을 다녀왔다. 이번 구호활동의 주목적은 피해지역에 구호품을 전달하는 일이었지만 피해 현장을 직접 보고 들으면서 현장의 필요를
파악하고 일본교회의 구호 활동에 대한 이해와 협력을 몸소 경험한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곳에 닥친 총체적인 재난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번 구호활동을 통해서, 앞으로 어떻게 동북 재난지역을 도울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여러 곳의 쓰나미 재해지역을 방문해서, 현장을 보고,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파악했다. 시오가마, 센다이 항, 이시노마키, 오나가와, 히가시마츠시마, 후쿠시마
지역을 거치면서 (자세한 현장 기록과 사진은
diachinese.blogspot.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목격한 피해지역의 참담함은
내게 많은 것을 일러주었다.
무력한 인간 문명과 현실로 다가온
죽음
인간이라는 존재가, 우리가 만든 문명이 아무 것도 아닌, 모래위에 지은 성이라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다. 일본은 그 어떤 나라보다 지진과 쓰나미 대비에 철저했던 나라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인간의 생명, 인간이 가진 기술, 문명, 시스템, 자랑들이, 단 몇 분의 지진 앞에 모두 무너져 내렸다. 우리가 자랑하던 문명이, 한 순간에 흉측하고, 냄새 나고, 거추장스럽고, 무섭기까지
한 쓰레기더미가 되어버렸다. 나는 내가 누리고 즐거워하고 언제까지나 발전할 줄로 알았던 것들이 다 모래성임을
보았다.
그리고 죽음의 현재성을 보았다. 쓰나미 피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죽음이
단 몇 초 사이에 갈렸다. 든든하게 믿고 지냈던 일상의 삶이 한 순간에 죽음의 바다가 되었다. 우리 인간에게 죽음은 가장 정확한 현실이며,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림자다. 생명과 죽음은 그야말로 백지장 한 장 사이였다.
찢기고 상한 하나님 마음
하나님 마음은 쓰나미에 할퀴어진
대지처럼 할퀴어지고, 부서지고 두 동간 난 집들처럼 무너지고, 만신창이가
된 차들처럼 완전히 헝클어졌다. 이 땅과 이 백성을 보시며 하나님은 그런 마음으로 울고 계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아직 좌우를 분별할 수 없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서 고통하신다.(욘 4:11) 그들에 향해 타는 듯한 긍휼을 갖고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시는 아들을 주시지 않았던가? 대지진이 있은 지 며칠 지난 후 한 선교사
친구로부터 아주 일상적인 기도편지를 받았다. 친구는 지금 파푸아뉴기니에서 성경번역선교사로 일한다. 그의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얼마 전에 일본에서
큰 해일과 지진이 있던 날 저녁 밤, 그 여파로 이곳에서도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큰 비가 내렸습니다. 전기가 끊어지고 창을 때리는 천둥 번개소리에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다행이
아이들은 깊이 잠이 들었기에 무서움을 모르고 지나갔지만 다음 날, 마을의 몇몇 집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는 이 편지를 받고, 하나님이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마치 요셉이 형들을 피해서 운 것처럼) 울고
계셨음을 알았다. 아직 천국에 이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외침, 울음은 하늘을 가르고, 땅은 진동했던 것이다. 그분의 울음은 큰 비가 되어 지구 어딘가를 적시고 있었다. 그분의
울음은 들리는 자에게는 심장이 터질 듯하게 만드는 울음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곳에서 눈앞의 우리 자신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눈과 귀가 가려서 아무 것도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곳에서 울고 계셨다. 내가 본 동북지역의 지진과
쓰나미 재난 현장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 찢겨지고 상한 마음이 드러난 현장이었다.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새 일
하나님은 희망이시며, 하나님의 그 희망은 그분이 세운 사람들을 통해 드러난다. 위험한
곳이지만 몸 사리지 않고 달려온 중학생 야마우치와 요네이, 생업을 뒤로 하고 자신의 4톤
트럭을 몰고 온 트럭 운전사 아오야마 상, 트럭이라도 운전해주려고 달려온 유치원 원장님 카토상, 10일간이나 사업을 제쳐두고 저 먼 나고야에서 달려와 온 힘을 다해 섬긴 다케시 콘도상, 생명의 위협 가운데서 주변 사람들의 탈출을 돕고 정작 자신은 3일간
물 한가운데 갇혀 있다가 자위대 헬기로 구조된 미야기세이쇼우 교회의 다나카 목사님, 자기에게 온 구호품용
물 두 박스를 조용히 다른 피난민용으로 내놓고 자신과 가족은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있는 수돗물을 그냥 사용하시는 한 목사님…. 하나님은 이들 가운데 이미 계셨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일본 가운데, 일본의 교회 가운데, 일본의 형제,
자매들 가운데 피어나고 있는, 새 일에 대한 희망을 보게 하셨다. 이제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일이 일어날 것이다. 아멘!
그럼 이제 어떻게 이 땅과 이들을
도울 것인가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구력 있는 사랑의 실천"이다. 이번 지진의 피해는 넓고 깊게 이 땅 가운데 새겨졌다. 최소한 10년의 세월이 지나야 이 상처가 회복될 것이다. 바로 그 10년은 사랑을 나누고, 아픔을 보듬고 가야 할 시간이다. 우리 한국 교회와 선교사들은 매우 신속하게 지진피해 현장에 도움의 손길을 주고 있다. 이 순발력은 이제 지구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지구력을 가지고 함께
가야 한다. 추측컨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앞으로도 한 달에서 두 달은 구호품 전달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앞으로 이 일은 일본정부가 상당부분 담당할 것이다. 그리고 느리긴 하겠지만, 피해지역에 도로복구, 전기 ,수도, 가스복구가 이루어져 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지역이 구호품 보다는 "돕는 일손"을 필요로 할 것이다. 폐허더미를 치우고, 집을 짓고, 같이
땀을 흘려 일해 줄 사람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정신적인 문제를 돌볼 사람이 필요하다. 지금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느라 이미 받은 충격을 느끼지도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지진과 쓰나미의 쇼크, 골육친척 가족을 잃은 고통으로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날 것이다. 이들에게
새로운 가족들, 친구들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누리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이다. 그리고 그 새롭게 재건되는 지역에 사랑의
가족 공동체가 세워지도록 돕고 지원해야 한다. 이것이 일본을 새롭게 하는 풀뿌리가 될 것이다.
박수민은 일본 동경에서 중국인 디아스포라
사역(닛포리 화인교회)을 하고 있는 GP선교회 소속의 선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