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더욱 깊이 경험하고 확신하는 시간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느껴지는 형태로 전달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을 통해서 더욱 확인된다. 이번에 삿포로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거의 매일 매끼를 누군가 같이 했고, 밤 늦도록 누군가가 우리 옆에서 함께 있어 주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다. 중국인 형제, 자매들이 제일 많았지만, 국제교회 사역에 동참하면서 교제하게된 일본인, 한국인 형제, 자매들도 있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고향에 돌아온 가족을 맞이하듯이 우리를 대해 주었다. 서울에(아마도, 동경)서 내려온 가족 챙기듯이 우리를 챙겨 주었다. 그들과 만나 얼굴을 보면서 얘기를 하면서,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서 만난 존재라는 생각을 더욱하게 되었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행복한 육일간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우리에게 새 힘을 주었다. 그리고 용기를 주었다. 신뢰를 주었다. 우리와 아무 혈연적 관계가 없는 그들의 이런 사랑 한 가운데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곳에서 사역했었고, 그들도 그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기억해 주고, 2년이 지난 지금에도, 분에 넘치는 사랑으로 환대해 주었던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계시며, 그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더욱 신뢰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삿포로 중국인 사역을 떠나, 북경, 서울, 동경으로 이주하던 2년간 이런저런 소식이 가끔씩 들려오곤 했다. 항상 멀리까지 살아남어서 들려오는 소식은 무거운 소식이 많은 편이다. 우리에게도 그랬다. 그렇지만 직접 그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전후사정을 입체적으로 들어 보면서, 그 가운데 하나님이 계심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2년전과 비교해서 눈에 띄게 성장하고 변화한 형제, 자매들을 보면서 그들 가운데 계신 주님을 보았다. 이제 스스로 일어나 열심으로 주님과 사람을 섬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과연 그들 옆에서 붙어서 권면(잔소리?)했다면 저 정도 자력갱생이 되었을까?' 싶었다. 그렇다. 사람은 의지할 사람을 찾지 못할 때, 눈을 들어 하늘을 향한다. 그들 가운데 그런 역사가 두드러지게 보였다.
나는 그런 몇 몇 사람들으 보면서, 그들 속에 임재하시고 주재하시는 성령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신뢰하게 되었다. 그렇다. 선교사로서 내가 해야할 가장 큰 일은 그들 가운데 내가 큰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큰 일을 행하셨고, 또 행하실 그분을 깊이 신뢰하는 것이다. 그 신뢰를 깊고 견고히 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할 믿음의 싸움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그 신뢰만큼 양도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선택과 결정을 맡기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전진하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고통스러운 순간을 넘어서야 근육이 만들어지듯이 스스로 그것을 넘어서야 자립의 근육이 만들어진다.
좋은 예가 있다. 나는 사역으로 주일을 껴서 출장가게 되면, 이곳 닛포리 중국인교회의 예배전체를 우리 형제, 자매들이 스스로 준비하고, 진행하도록 맡겼다. 이제 겨우 6개월된 교회인데 말이다. 우선 중국어로 예배를 섬길 사역자를 찾을 길이 없어서 그랬다. 그리고 이들 스스로 예배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큰 물의가 생기지 않토록 기본적인 부분을 미리 알려주고, 준비해주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평소 예배 때는 오후 1시30분 예배시간에 겨우겨우 오던 사람들이, 내가 없을 때는 오전 10시부터 와서 음식을 준비한다. 오전 10시에 왔다. 내가 아무리 잔소리 한들 그들을 그 시간에 오게 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자신에게 책임감이라는 무게가 주어지면, 그 무게를 감당하려고 스스로 결정하여 부지런을 떨게 되고, 그 부지런을 떰은 단순히 행동면에서만은 아니다. 전인적인 부지럼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섬김, 리더쉽이라는 근육이 생겨난다. 나는 그런 자발적 변화를 통해, 섬김, 리더쉽이라는 근육으로 잘 다듬어진 형제, 자매들을 삿포로에서도 만났다. 그런데 그런 변화의 핵심은, 영향력 있는(원하든, 원하지 않든 영향력을 갖게 된) 내가, 그 자리에 없는 순간 일어났다는 것이다.
셋째, 사랑하는 이들에 관한 더욱 정확한 기도제목을 얻는 시간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참 행복했다.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더욱 그들을 알게 되었다. 이제 알게 된 만큼, 관심과 기도가 깊어질 것이다. 만나서 그들 가운데 계신 성령님,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님이 한 성령님이시라는 것, 그리고 함께 함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인생을 둘러싼 생노병사의 문제로 여전히 신음하고, 견디고, 그리고 그런 상황들을 돌파하려 하고 있었다. 그들의 나눔은 나의 기도를 더욱 힘 있게 한다. 좀더 마음을 담아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중 한 일본 자매님 가정과 만남은 더욱 의미가 있었다. 일년 전 장성한 아들을 잃고 고통 가운데 쇄약해져 가는 부부를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같이 기도했다.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아직도 그 고통과 슬픔은 이들을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그런 그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이 그 고통 가운데서도 우리를 사랑하고 있으며, 여전히 신뢰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 신뢰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원하시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기도했다. "하나님 자신의 아들을 잃으신 하나님 이들을 꼭 안아주십시오!".
넷째, 우리가 영육간에 새 힘을 얻는 시간이었다. 삿포로에서 누렸던 짧지만 귀한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 큰 힘과 위로, 격려를 주었다. 사람들과의 만남도 그러했고, 오랜만에 맛보는 북해도의 공기, 자연이 그랬다. 한 마디로 우리가 새 힘을 얻었다.
우리는 삿포로에서 귀한 손님으로 여김을 받았다. 동경에서는 우리를 그렇게 맞아주는 사람들이 없다. 삿포로에서 형제, 자매들은 우리와 만나고 싶어하고, 얘기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동경의 형제, 자매들은 우리가 먼저 얘기하고, 만나고 싶어하지 않으면 만나기 어렵다. 그로 인해서 동경에서는 우리가 사랑 받기 보다, 우리가 사랑해야할 사람들이 더욱 많다. 아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어서 더 복된 기회가 많다. 이는 감사한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섬기려고 부르심 받았기 때문이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적절한 때에 고향 같은 첫 사역지 다녀왔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고 계심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전한 우리 삶의 고통을 보았습니다. 이제 그들을 안고 기도할 때, 더욱 마음을 담아 기도하게 합소서! 그들의 따뜻한 섬김과 사랑을 기억하사 더욱 은혜 내려주시옵소서! 큰 하나님 나라 안에서 귀한 동역자들로 같이 서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앎과 사랑함이 그의 나라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도록 촉진하는 촉매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